공화국과 성정체성
공화국은 시민의 덕성(virtu)를 필요로 한다. 요샛말로 하면 시민의식(civic awareness)이라고 해야 할까. 공화주의를 이야기할 때 가장 곤란한 부분이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여러 문헌을 들여다봐도 이걸 한 문장으로 일목요연하게 정의함으로써 누구나 그 정의를 보면, 아, 그렇군, 이게 시민의 덕성이라고 하는 것이군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 일쑤가 된다. 예를 들자면 공화국 시민의 의무. 공화국 시민의 의무가 왕정의 신민이 지는 의무와 전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자발성과 자율성이라는 것이다. '지배자 없이 지배하는 것'이라는 공화국 특유의 정치형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시민이 스스로 자신을 지배한다는 대원칙이 관철되는 것 뿐이다. 이 원칙이 관철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공화국에 대한 시민적 의무를 스스로 형성하고 걸머 지는 것이고.
그 의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화국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 다른 하나는 공화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 공화국의 시민은 자신과 다른 시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공화국을 위협하는 반공화국 세력에 대항한다. 이것이 공화국 시민이 지는 안전의무의 의의다. 공화국 시민은 자신과 다른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공화국이 운영되기 위한 물적 부담을 진다. 이게 공화국 시민이 지는 안정의무다. 이 의무들은 현대의 공화국 체제에서는 보통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로 구현된다.
이 중 국방의 의무를 살펴보자. 통상 국방의 의무는 병역으로 이행된다. 적과 대치하는 현장에서 직접 의무를 수행하게 되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공화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국민개병제를 지지하였다. 칸트는 모병제가 공화국의 이념과 맞지 않음을 피력한바 있다. 여기서 칸트가 강조한 건 공화국의 안전이 공화국 시민의 손에 맡겨져 있지 않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폭력기관에 대한 제어불능이다. 공화국 시민의 덕성, 즉 공화국의 안전을 스스로의 책무로 진 시민들이 군대를 구성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공화국과 군대가 분리되어 운영될 때 군대의 호전성과 모험주의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이다.
몇 해 전 마이클 센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논의되었던 여러 주제 중의 하나다. 간략히 줄이자면 모병제냐 징병제냐를 두고 벌어지는 철학적 담론이 새삼 한국사회를 소란케 했던 거다. 물론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이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당혹스러워 했던 부분은, 공화주의자가 공화국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어떤 원리가 인권적 가치와 충돌하는 일이 발생할 때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었는데, 만일 공화주의적 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자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공화국의 안전을 지켜야한다는 시민으로서의 자발적 의무를 부정하는 사람들인가? 만일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공화국을 떠나거나 시민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개병제를 기본으로 하되 비전시에는 자원입대자를 중심으로 군을 조직하고 대신 공화국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자발적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공화국 시민들이 연대와 존경의 의사를 담아 그 처우를 윤택하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안이 제기된다. 얼핏 보면 중재적 차원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 듯 하지만 이건 본원적 해결책은 안 된다. 이 대안은 결론적으로는 모병제일 뿐이고, 전시에 징병을 한다고 한들 그 징병은 말 그대로 죽으라고 전장으로 시민들을 내모는 것인데, 징병대상이 아닌 시민들이 이를 허용하는 것이 공화국 시민의 덕성으로 적합한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시민들이 합의하는 선에서 공화국의 안전을 지키는 다른 방식을 도모함으로써 해결해야만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륜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을 범죄시한다는 건 결국 공화국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인륜의 가치를 그보다 하위에 둔다는 논리가 발생하게 되는 건데, 오히려 이것은 공화국이 존재하는 이유, 즉 공화국 시민(더 나가서는 세계시민)의 인륜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공화국 시민의 이해와 연대라는 차원에서 당사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공화국의 안전을 지키는 스스로의 책무를 수행하되 그것이 군복무를 하는 시민들과 형평에 맞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한다.
이와는 별개로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논란에 대한 정책적 대안은 케바케일 수밖에 없으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고. 갑자기 이 논의가 생각난 이유는 한 성전환 하사관이 자의에 반하여 강제 전역당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행동을 했으며, 그 행동과는 별개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겠다고 나섰다. 만일 한국사회의 군제도 상 그가 사병이었다면 의무복무대상이 남성으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남성으로 입대했으나 중간에 여성이 된 그가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어려울 수는 있겠다. 물론 인권적 차원에서 논의할 때 현행제도의 문제는 극복의 대상이겠지만, 일단은 현행 제도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그는 하사관이었고, 하사관은 어차피 자원입대 내지 자원복무다. 그렇다면 병역의무대상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이미 논의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제도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또는 제도가 미처 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인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면 서둘러 제도를 보완하여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제도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가장 원칙적 차원에서 당사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다름 아니라 공화국 시민의 덕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관철되어야 할 연대의 원리이다. 더구나 당사자가 공화국 시민의 의무를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있다면 이를 마다해서는 안 되는 거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군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않다. 공화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최전방에 서 있는 군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우는 솔직히 말하면 바닥 수준이다. 심지어 군인은 인간이 아니라 '군바리'에 불과할 지경이니. 이런 상황까지 가게 된 건 공화국의 안전을 지키라고 총을 쥐어줬더니 공화국을 말아먹어버린 과거 쿠데타 세력들의 범죄행위 때문이다. 공화국 파괴자들은 버젓이 살아서 천수를 누리거나 그 자식이 권좌에 오르기까지 하는 지경에서 군대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썩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아픔이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걸 언제까지 원래 군대가 그렇다는 식으로 놔두어 할까?
군이 명예를 회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군이 바로 공화국 시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공화국을 전복하고 폭력과 독재로 지배하려는 세력은 공화국 시민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그 인권을 짓밟는 세력일 것이기에 이를 방어하는 것이 공화국 군의 사명이 된다. 그렇다면 군은 그 내부에서부터 인권이 충만하게 보장되는 곳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반면 인권을 개차반으로 만드는 자들을 그 내부로부터 축출하고 공화국 시민의 자격을 박탈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성전환 하사관은 당연히 군에 있어야만 하는 소중한 인재고, 전두환은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야만 하는 공화국의 적이 된다.
성정체성은 공화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공화국의 안전은 오직 인권과 연대에서만 지켜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