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
'인권변호사'라는 말이 요샌 쑥 들어갔다. 이게 정상이다. 애초부터 변호사라는 직업은 '인권'을 보호하는 걸 업으로 삼는 직업인데, 여기다가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쓰면 보기엔 그럴듯해보여도 실은 그게 동어반복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권변호사'라는 말이 많이 돌았다. 워낙 인권이라는 게 무슨 개가 물고 다니던 뼈다구 같이 취급된데다가 법조인들이 인권보다는 이권에 더 천착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겠다.
그 '인권변호사'로 이름 높았던 사람들 중에 노무현도 있었고 문재인도 있었다. 솔직히 이들이 맡았던 사건들의 전력을 훑어보면 과연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붙는 게 적절한지 고개가 갸우뚱 해지기도 한다만 뭐 다들 그렇게 불러대고 본인들도 그걸 부정하지 않으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 '인권변호사'들이 대통령을 수행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다행일 수 있다. 국정 전반에 '인권'의 가치가 근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인권변호사' 출신인데 대통령 되더니 인권을 개뼉다구 취급하는 행태를 보이게 되면 인권은 말 그대로 개뼉다구로 전락한다. 사람들이 원래 인권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착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빠'들이 나서서 이런 몰지각한 작태를 당연한 것이라고 강변하게 되면서 일이 커진다는 거다. 조국 사태 관련하여 조국 가족의 인권이 침해되었으니 이걸 국가인권위가 판단하게 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한 사건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청와대가 무슨 임금 사는 궁궐도 아니고, 청원 게시판이 조선시대 신문고도 아닌데, 이 청와대 게시판을 둘러싼 역학관계를 보면 이건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가 21세기에 진입하지 못한 채 신민들이 왕을 우러르고 사는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 왕과 신민, 조정과 백성의 역관계가 오늘날 개코메디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조국 가족의 인권까지 온 국민이 걱정하다못해 이걸 국가인권위원회가 받아 안아야만 되는 상황이 발생한 건 전적으로 청와대의 덜 떨어진 업무처리 때문이다. 인권위를 청와대 시다발이 정도로 만든 걸 두고 이명박근혜 정권만도 못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다만, 이명박근혜 정권에서조차 하지 않았던 짓을 한 건 분명하다. 그런데 안 하던 짓을 하면 손발이 헛돈다고, 이 덜 떨어진 짓이 그나마도 거의 생각 없이 저질러진 것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더 기가 막히는 건 이 사달이 소위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있는 오늘날 벌어졌다는 거다. 이짓들을 하면서도 그 스탭들이 이번 총선에 나간다고 죄다 청와대를 그만 뒀다. 잘들 한다.
이건 어떻게 보더라도 인권위를 사조직처럼 생각한 것이고, 인권위의 고유권능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일이다. 청와대의 행위는 공적 기관의 행위라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청와대 자체가 지금 통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국 사태에서부터 인권위 무력화 시도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는 스텝들의 행위에 일관성이 없고, 공적사고능력을 상실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비서실장 등 책임을 져야 할 관리자들이 정신머리들이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 짓들을 하면서 박근혜가 7시간 동안 뭘 했느냐고 지적질 할 자격이 있는가?
며칠 전에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 와중에 "마음의 빚"을 운운하면서 공무와 사적관계를 혼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구성원 전부가 이런 심성을 공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인권위 무력화 시도는 그냥 슬쩍 덮는 선에서 마무리될 사항이 아니다. 이번만큼은 대통령이 직접 사태에 관하여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고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켜줄 것을 선언해야 한다. 만일 이 사태가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면, 나중에 다시 정신 나간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아예 인권위라는 기관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