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적이 없는 슬픈 예감
선거법이 비례성 강화의 방향으로 개정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이원구조에서 당선자를 확정하는 현행 시스템은 따라서 비례성이 두 방향에서 고루 담보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지역구 선거구 간 인구의 비례를 1:1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지지율에 부합하는 비례당선자의 확보와 의석배분이다. 이번 개정안은 누군가가 "비례향"이라고 비꼴만큼이나 비례성 강화를 흉내만 내고 만 느낌이 다분하다만, 어쨌거나 "비례향"일지라도 군소정당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대표적인 수혜케이스가 정의당일 거다. 정의당은 겉으로야 이번 선거법 개정의 한계를 운운하면서 짐짓 마땅찮은 듯 인상을 쓰겠지만 그거야 뭐 표정관리차원이고,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이번 개정으로 정의당은 10~11석의 비례의석을 확보하게 된다. 당장 정의당의 지지율이 선거시기에 이 수준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보니 예상 비례의석수는 이보다 더 많아진다. 현재 지역구 의석 2석을 포함하여 6석에 불과한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현재 지지율 기준으로 현재 의석의 두 배 이상을 바라보는 꿈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다.
그런데 이게 마냥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데 함정이 있다. 진작부터 우려하던 바는 비례의석의 증가가 현실로 다가올 경우 정의당 내부에서 비례의석을 두고 첨예한 다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거였다. 정의당은 일종의 정파연합당이다. 통합진보당을 만들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합류한 참여계와 노심조 등 진보신당 탈당파, 이후 통진당 분당사태로 인하여 정의당을 만들면서 합류하게 된 인천연합, 2016년 20대 총선 대응과정에서 정의당에 합류하게 된 노동당 탈당파, 박근혜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입당한 그룹 등 다양한 정치집단이 합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맨 마지막 그룹은 그룹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결합이지만 이들은 집합적으로는 다른 정파들과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껄끄러운 면이 있다.
정의당도 연륜이 쌓이면서 이들 정파조직 간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앞서 분류한 그대로 각 정파가 자기이해를 두고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심상정류는 인천연합과 일정하게 지분을 나누게 되었고, 그에 비해 오히려 노동당 탈당파와 진보신당 탈당파가 그다지 친화적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한편 노동당 탈당파는 당시 3자연합형태로 정의당에 투항했던 노동계와 알력이 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번에는 다시 연대전선을 펴는 양상도 보이고. 참여계는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지 않은데 인천연합은 나름대로 지분을 확장하려고 치밀하게 움직인다.
이들 정파조직들은 이번 선거법개정 이후 너도 나도 비례후보들을 내고 있다. 기존에 지역을 근간으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다수 보이고, 이와는 반대로 난데없는 '인재영입' 형식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물론 이들 영입인사들의 대부분은 심상정 등 당내 유력 인사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비례대표 선출도 느닷없이 개방형 경선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자기사람 심기, 개방형 경선 등의 잡음이 흘러 나온다. 특히 저어되는 것은 지역구 출마가 아니라 비례로 방향을 튼 몇몇 사람들의 행보다. 물론 이 사람들은 과거 지역에서 총알받이 하면서 개고생에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변혁을 그리던 숭고한 이념과 사력을 다한 헌신으로 진보정치의 싹을 키웠던 그들이 이제 어느 정도 지역기반 등에 유리한 고지를 마련했음에도 비례로 나오겠다고 하는 건 이제와서 본전생각이 나서일까?
비례후보경선을 빙자한 정파조직 간 세싸움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양상이다. 과연 정의당은 '원팀'의 칼라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21대 총선이 지나면 과거 통진당에서 그랬듯 머리끄댕이 잡아당기는 불상사로 치달으면서 정파연합의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인가? 양 극단의 어느 한 형태로 사태가 전개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더 크고, 이 두 극단의 사이에는 워낙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므로 어떻게 향후 정의당의 행보가 이어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비례의석확대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정파 간 다툼을 가속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마음은 진보신당 탈당파에 두고 진보신당에 남아 프락션을 하면서 지 당적과 같은 당적을 가진 당원들에게 허구한 날 '너거당' 운운하던 자가 결국 노동당 탈당파들과 정의당에 합류하더니만 이제와서 심상정이 당내 패권을 휘두르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던데, 솔까 웃기고 자빠졌다. 아니 그래 '너거당'에서 그렇게 될 지 몰라서 그 개수작을 하고 탈당해서 그리로 튀었더냐. 지가 무슨 장자방이나 한명회나 된 것처럼 설레발을 치던 자가 이제 와서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걸 보니 같잖아서. ㅎ
무튼 간에, 내 당도 아닌 정의당 걱정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이 현재 정치지형에서 그나마 제도권에 발 걸치고 있는 진보정당의 미래가 향후 진보정치세력의 재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좌파들도 꽤나 있는데 뭐 그건 니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정의당의 행보가 적절한지 여부에 따라 진보정치세력이 갈 길이 좀 더 효과적일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시궁창일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비례대표 뽑는 과정에서 정의당이 과연 향후에 진보정치세력의 규합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낼지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