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te is Horse?

"나 때는 말이야~!"를 요새 저렇게 표현한단다. 문법적으로도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영문의 이두식 표현이라고나 할까. 이런 걸 따라잡기도 힘든 걸 보면 내가 요즘 세대가 아닌 건 분명하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내가 왕년에는~!"이라는 표현이 더 착착 감긴다.

아침 신문을 읽다보니 재밌는 칼럼이 하나 보인다.

경향신문: [기자칼럼] 여자는 근육

링크는 온라인판으로 걸었지만 확실히 지면으로 읽는 것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구먼. 어쨌거나 간에, 이 칼럼을 읽다보니 불현듯 옛 생각이 난다. 다음 구절때문에 그랬다.

"세상에는 전 국가대표 선수를 앞에 놓고 축구의 기본기에 대해 논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정말로 있다", "혹시 선출이세요? (중략) 근데 선출들 중에 너무 멋 부리면서 축구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그냥 한 번만 꺾어도 될 건데, 왜 굳이 두 번 세 번 꺾어?"

세상은 많고 한남은 널렸다. "나 때는 말이야~!"는 그냥 시대적 연대기의 소환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그냥 지 잘난 척 하고 싶은 자들은 언제든 이렇게 왕년을 긁어 오기도 하고 제 주제를 모른 채 타인, 특히 여성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의 허세가 그저 허세일 뿐이라는 것과 그 허세가 상대방을 모욕한다는 것이다. 기실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나만 해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다. 

어릴 적 열광하던 스포츠 중계방송 중 하나는 바로 권투였다. 권투를 보고 있는 동안, 모니터 안쪽에서 벌어지는 선수들의 필사적인 움직임은 너무 느려보였고, 그들의 반응은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왜 저기서 피하질 못하냐, 왜 저 순간 펀치를 날리지 못하는가, 벌써 지쳤나, 이런 생각들은 여지없이 입에서 말로 표현되어 튀어나왔다.

그러다가 머리가 조금 굵은 후, 권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권투체육관에 갔다. 당시만해도 고전적인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주로 가르쳤던 때문인지 관장은 한 달이 넘도록 뭐 주먹 드는 거 하나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이 줄넘기만 시켰더랬다. 짜증이 났다. 하루는 관장 몰래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몇 번 치고 있었는데, 그걸 그만 관장에게 들켰다. 관장이 "너 권투 잘해?" 그러길래 권투는 못해도 샌드백은 칠 줄 안다고 했더니만 스파링을 시켰다. 다른 격투기를 좀 해봤다는 자만감에, 게다가 스파링상대의 체격이 키는 컸지만 몸이 훨씬 얇았던 탓에 나는 까짓거 뭐 어려울 것 없다는 생각도 했나보다. 하지만 공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이후 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쓰러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 앞에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 뭐에 맞아 자빠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실 나는 샌드백 치는 방법도 몰랐던 거다. 그리고 쪽팔려서 체육관을 관뒀고.

그로부터 약 사반세기가 지난 후, 어깨가 너무 아픈데 줄넘기가 최고라는 말을 듣고 다시 권투체육관을 찾았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한 두 차례 체육관을 옮겼는데, 젊은 코치들은 입관하자마자 줄넘기 몇 번 시키더니 바로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글러브를 끼고 스탭을 밟고 원투 원투... 그 옛날 아무 말도 없이 줄넘기나 하라고 하던 관장하고는 천양지차.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다가 자세가 제법 나온다는 둥 샌드백 치는 게 예사롭지 않다는 둥 칭찬을 얼마간 하더니 스파링을 하란다. 코치와 스파링을 했다. 코치는 사정을 봐가며 세개 치지는 않고 펀치를 유도했다. 그렇게 2라운드를 뛰었다. 그리고 나서 뒈지는 줄 알았다. 숨이 턱에 걸리고, 설날 먹은 떡국이 넘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사각의 링이 빙빙 돌며 마치 각이 사라진 원처럼 보인다. 링 위에서 2라운드를 뛴다는 건 상대방이 그렇게 봐주는데도 거의 온 몸에 진이 다 빠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번 경험을 제대로 하고 나면, 링 위에서 3라운드 이상 뛰는 사람들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며, 10라운드를 뛰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품게 되고, 15라운드를 뛰는 사람들을 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티비 중계방송을 보더라도 함부로 평가를 하지 않게 되며 오로지 아쉬움과 감동에 겨워 찬탄만을 뱉어내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게 다 마찬가지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간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감히 내 기준에서 얼토당토 않은 평가를 할 수 없게 된다. 마라톤을 뛰어보면 2시간 대에 백리길을 넘게 달릴 수 있느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축구를 해보면 마라도나를 신으로 섬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끔은 부작용도 있는데, 예를 들어 야구 같은 경우는 아예 흥미가 사라진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야알못이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내겐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불멸의 야구 스타로 남겠지만, 야구에 대해서는 일절 아는 척도 못할 정도니.

그래서 호되게 한 번 당해봐야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 예전에 실업팀 여자축구 선수들이 뛰는 걸 봤는데, 조기축구회 수준의 팀과 몇 번 붙어봤던 내 수준에서는 그들은 어마어마한 실력의 외계인 같았다. 그런데 위 칼럼에서처럼 감히 국대를 앞에 놓고 축구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냥 여자니까 깔보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남자들은 좀 더 조신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아, "Latte is Hourse" 같은 개소리가 쑥 들어가게 하지 말고 미리 미리 각성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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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09:28 2019/12/3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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