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
잘 밤이 되면 곧잘 상념이 많아진다. 밤의 장난인가, 아니면 나이 먹었다는 신호인가? 굳이 전자라고 강변하는 건 난 예전부터도 밤만 되면 공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별로 나이와는 관계 없는 듯하다.
주변에서는 과거의 추억을 안주거리로 삼을만한 관계들끼리 모이고 섞이는 모습이 가끔 보인다. 그런 류의 인적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입장이다보니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게 상당히 흥미롭다. 저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고딩 때 불X 친구들을 만나기는 하는데, 그래봐야 별 옛날 얘기 할 일도 없고.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다보니 회고담이 주류를 이루는 노땅들의 자리에 어쩌다 끼게 되면 그 분위기를 감당하기 힘들다. 나는 예의가 바른데다가 분위기를 맞추는데는 또 일가견이 있으므로 최대한 잘 버티는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내가 겪지도 않은 일들이 범벅이 되어서 이야기가 될라치면 도통 따라잡기가 어려운 경지에 이를 때가 가끔 있다.
어찌어찌 자리는 잘 버텼을지라도, 그 이후에 오는 허탈함은 또 뭘까? 저 잘나가던 왕년들을 심중에 품고 있는 분들의 오늘날의 모습은 또 어쩌면 그리 처량한지. 아, 물론 먹고 사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분들보다 내가 훨씬 열악하다. 그렇게 보면 제일 불쌍한 건 나지 저분들이 아니지.
하지만 그분들이 쏟아내던 젊은 날의 그 열정과 야망들에 비추어보면 이들이 현재는 그냥 시궁창이다. 뭔가, 이게? 현실의 시궁창을 잊기 위해 때때로 추억 속으로 도피를 하고, 혼자서는 어려운 과거로의 탈주를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그리하여 그 안에서는 다시 영웅이 되고 청년이 되고...
총기 빠진 유시민이 주제를 모르고 진중권에게 나이 먹으니 총기가 떨어진다고 하자, 모두까기 인형 모드로 홱 돌아선 진중권이 유시민에게 너는 60 넘은 사람 다 골로 가야한다더니 네가 벌써 60대옄ㅋㅋ 이러고들 자빠졌다. 감자탕집에서 뼉다구를 입에 물고 발골을 하면서 과거의 추억을 녹여내던 사람들과 이들의 차이점은 없다.
전광훈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고 하자 김문수가 나서서 종교탄압이라고 목청을 돋운다. 아, 이런 ㅆㅂ 이래서 청년정치 청년정치 하는구나. 그 앞에서 태극기 흔들며 통성기도 하는 머리 허연 노인네들은 오늘도 유튜브 가짜뉴스에 꼬불쳐둔 용돈을 꽂아 넣고.
오늘 뉴스를 보다가 "조국 만세"라는 외침을 들었다. 연전에 박근혜 집앞에서 "마마"를 외치며 큰 절을 올리던 어떤 사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조국 만세를 외치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젊은 듯했으나, 대충 들어봐도 내 연배보다는 많을 것 같다는 굳은 심증이 생긴다. 왜들 이러는 걸까?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니, 아뿔사, 아니 저것도 저들처럼 저렇게 썩어가고 있는 거 아닌가? 아니, 진짜 그런겨? 이걸 우째? 이런 뉀장, ㅆㅂ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난 저렇게 늙어갈 수 없다니까!
한때 나이 든다는 것이 덜컥 두려울 때가 있었다. 서른 즈음이었던 듯하다. 그러다가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약간은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이 듦으로서 더 나아진 모습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이 밤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더니만 급기야 나이 듦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차라리 나이를 잊어버리면 모를까, 그런데 이런 건 어찌 그리 잘 기억되어 있는지. 오늘 도 별이 바람에 스칠텐데,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은 바람이 씻어가질 못하는구나. 에라,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