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지난 여름, 난 내 그동안의 삶이 부정당했다는 자괴감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의 과거가 송두리째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인가를 모르겠거니와,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나 자신과 내 주변 모두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러다가 베트남을 갔고, 그곳의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시간이 흘렀고, 짧은 시간이나마 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들여다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교직에 응시했을 때, 난 나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에 실망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내 착각이었을 뿐이다. 그동안 나는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아왔던가? 나는 그동안 학교에 적을 두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난 학교에 적을 둘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의 삶이라는 것이 생활인으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런 삶에 미련이 없었다. 아니 아예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한 불신이 있었기에 그곳에 자리를 잡겠다는 마음을 먹질 않았더랬다.
그러다가 평소 가지고 있었던 바람직한 교육의 형태와 가장 흡사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 학교에서 구인을 하였고, 주변의 부추김도 있고 해서 응시를 했었다. 다른 대학과는 다르게 그곳에는 지금도 미련이 있다. 어쨌건 거기서 나는 인정받지 못했고, 채용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당연한 결과다. 나는 그 학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지난 시간 동안 대학에서 자리잡고자 하는 노력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그 학교의 입장에서는 내가 그 학교에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생각과는 관계없이 그 학교가 필요로 하는 경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였고, 또한 당연히 오늘의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다. 처음부터 내가 학교에 자리를 잡고자 했고, 이를 위한 방향의 노력을 경주하여 관련된 경력을 쌓았으면 어땠을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 때에야 비로서 나의 낙방에 아쉬움을 느낄 자격이 있었을 거다. 한 마디로, 나는 그러한 자격을 갖추지 않았던 거고.
다른 지방기관에 응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는 연구원으로 응시를 했고, 그동안 연구자로서, 특히 국가나 지방의 정책과 관련하여 제도화하는 측면의 연구자로서는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경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곳에서 찾는 사람도 연구자였고, 따라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이것도 돌이켜보면, 그곳에서 원하는 전문분야가 광범위하게는 나의 전문분야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원했던 것과 나의 경력은 상당부분 맞질 않는다. 연구자로 있었던 시간의 다소나 내가 만든 연구성과물의 다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러한 결과물들을 그들이 원했는지 아니었는지가 문제였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경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고, 내 연구물들은 그들에겐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즉, 베트남에서 들었던 친구의 고언처럼, 응시를 했던 그곳들의 입장에서 나는 아예 경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거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심한 거부감을 느꼈고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볼멘 소리로 그런 게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나는 자아에 갇힌 채 자만하고 있었을 뿐 상대방이 원하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자가 되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선택될 수 없었던 거다.
사실 이제와서 이런 반성을 한다는 것도 쑥스럽고 낯뜨거운 일이긴 하다. 나이가 몇 개인데 이제야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되다니. 이런 수준이면서 그동안 어딜 가면 아는 척하고 그랬던 거다. 부끄럽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고로, 이 반성이 단지 방구석에 틀어박혀 쥐어 짜낸 패배주의적 자포자기로 끝나지 않으려면, 다시금 내가 뭘 하고자 하는 건지를 살펴보아야겠다. 엊그제도 리스트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는데, 이제 정리 중인 이 목록들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겠다.
반성을 하는 의미는 그와 같은 반성을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가?
이제 철 좀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