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들의 이야기
어제는 간만에 동네사람들과 1잔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더랬다. 그제 어떤 모임에서 회의를 빙자하여 막걸리타임을 진하게 가졌는데, 숙취가 이젠 너무 오래간다. 그래도 저녁때 되어 술모임을 갈 때 되니 언제 그랬냐는듯 몸이 성성해지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걸 보면 알콜릭이 아니라고 우길 재간이 없다.
암튼 그렇게 모여서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째 다들 힘알머리들이 없네. 삶이 퍽퍽한 게지. 뭐 하나 재미난 일이라곤 없고, 맨 들리는 이야기가 망한 동네 이야기며 떠난 자들 이야기며 나와바리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뭐 이런 이야기들밖에 없으니. 돈이 잘 벌리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그나마 지난번보다 숫자가 줄어서 꼴랑 넷이 모여 읹았는데 마치 처음 만나 사람들끼리 모여 눈치보는 것 같은 서먹한 분위기에서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왜 이렇게 된거여? 기분 좋게 왔는데.
그나마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보니 또 마음이 풀리고 얼굴이 펴지고 그런다. 그래, 뭐 있나? 서로 이야기하면서 사는 거지. 꼬인 거 있음 풀고 좋은 일 있음 나누고.
모임은 동네사람들 모임이지만, 기실은 과거 정당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인 거다. 나처럼 이젠 잠시 다른 방법을 모색하자고 당적을 뺀 사람도 있고, 아직 미련을 못 버리고 망해가는 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이당 저당 멤버십을 두루 가지고 있으면서 죄다 까는 사람도 있다.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이지만 정당운동에 대한 희망까지 놔버리진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술자리를 한다.
어찌 보면 정치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들끼리 모인 모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그 술자리에 흐르는 말은 죄다 3인칭. 내가 주체가 되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개인사에 국한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이 아쉬워서 이렇게 또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걸까.
이제는 주름들이 보이는 얼굴에 흰머리들 희꿋희끗한 나이들이 되었다. 다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인데 명예도 없고 이름도 없는 사람들로 남아있다. 어차피 그러고자 했으니 원한 바 얻은 거라고 봐도 될런지. 그렇게 망자들의 이야기가 테이블에 잔뜩 쌓일 때쯤 자리는 파했다. 다들 건강하게 다음달에 보기로 하고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