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현상황에 대한 가장 적절한 글
프레시안에 올라온 베네수엘라 관련 기사가 눈에 띈다. 그동안 베네수엘라의 현 상황에 대하여 들여다본 글 중에서 가장 적실한 글이라고 생각된다.
관련기사: 프레시안 - 베네수엘라 국민은 '족장의 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과거 차베스의 '혁명'이 입길에 오를 때,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에서는 차베스를 어떤 영웅의 모델처럼 숭앙하는 분위기까지 일부 있었다. 특히 묘하게도 NL진영쪽에서 그런 경향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솔직하게 나는 그러한 경향을 북조선에서 잃어버린 수령을 남미에서 찾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에 동의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인민들이 지향했던 발리바르 혁명의 의지를 경시하려는 건 아니다. 미 제국주의를 향한 투쟁의 의지와 매판자본에 대한 저항,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의 강고한 힘을 보여준 그들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나? 그리고 더불어 공공연하게 사회주의를 언급하던 그들의 이념 또한 나의 의지를 격동시킨 바도 있었고.
하지만, 당시 거의 차베스 따라배우기 수준으로 베네수엘라를 띄우던 사람들의 견해에 별로 공감하지 못했던 건 차베스가 추진했던 경제/사회/문화/정치의 대안체제가 과연 대안체제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가장 의문이었던 건 지속 가능성이라는 지점이었는데, 왜냐하면 당시 베네수엘라의 동력은 내 짧은 견해에서 볼 때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차베스라는 한 인물의 얼굴에서만 가능했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베네수엘라의 혼란상을 보면서 도대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적잖이 곤란해서 이곳 저곳 사람들이 뭔 말을 하고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 그런데 역시나 예전에 차베스를 띄우던 쪽의 사람들은 현재 베네수엘라의 문제를 미국의 경제제재와 내정간섭으로부터 연원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긴 예전에 한 마디 하던 사람들 중 이런 이야기라도 하는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은 입 닥치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만.
아무튼 그 견해에는 일정부분 그런 원인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걸로 지금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편적이고 수박 겉핥기 수준이지만, 여러 경로로 주워 들은 바로는, 베네수엘라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정부패다. 그리고 그 부정부패는 집권세력과 여기에 결합하여 떡고물을 주워먹는 정치세력, 군부, 사회조직의 네트워크를 통해 강화되고 확장된다. 이 네트워크 안에 결합되어 있는 주체는 그나마라도 뭔가 먹을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인민들은 소외의 악순환에 허덕이게 되고.
프레시안에 글을 올린 최명호 교수에 따르면, 예컨대 베네수엘라 외환통제위원회의 부정부패와 관련하여 "현 집권세력의 대부분이 공범관계였다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베네수엘라 사태의 중심에는 포퓰리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족벌체제, 정실자본주의 그리고 부정부패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사익을 챙긴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덧붙이자면, 트럼프가 과이도를 공공연하게 지지하면서 베네수엘라 군부에게 마두로로부터 떠날 것을 종용함에도 베네수엘라 군부는 마두로에 대한 충성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현 집권세력과 더불어 군부가 이 부패 커넥션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기실 이런 식의 부패 커넥션은 예를 들면 브라질에서도 발견되는데, 브라질의 PT가 내부적인 부패스캔들 때문에 주기적으로 홍역을 겪고 있는 건 정치자금이 투명하게 오가기 어려운 그들의 제도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빌미로 내부에서 음성적인 정치자금 거래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마두로는 부정선거는 물론이고 정치적 반대파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면서 독재자라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기실 이러한 현상은 차베스 당시에도 일부 경향이 있었는데 차베스 사후 여러 정치일정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차베스만큼의 카리스마를 갖지 못한 마두로가 차베스만큼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려다보니 무리수를 두게 된 것도 영향이 있다.
최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대 베네수엘라 압박만 강조하게 되면 이런 모든 내부 문제를 지워버린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세계 제일의 제국이 베네수엘라를 압박하고 정권을 빼앗으로 한다는 냉전적 이미지와 더불어 현 집권세력을 피해자처럼 보이게 한다. 또한 베네수엘라의 현 사태가 미국의 경제제재에서 기인했다는 오해를 낳게 하며 현 집권세력의 무능과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를 은폐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여기 더하여, 베네수엘라 문제를 미국의 압박때문이라고 강변하는 입장은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사회주의의 한계를 운운하는 세력들에게 적절한 반박이 될 수 없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공화당을 중심으로 이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한국 역시 자유한국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베네수엘라의 문제는 사회주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빙자한 채 부정부패를 저지른 자들에 의하여 발생한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사회주의에 대한 근거없는 공세에 적극 대항할 수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정부패한 권력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패퇴하게 되는 것이고, 그 틈을 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외세의 개입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견고한 민주주의에 의하여 지탱되는 사회주의라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바로 부정부패의 척결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독재정권이 암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소거한 채, 사회주의정권의 사회주의정책이 국가를 파탄시켰다는 식으로 강변하는 자들에게 명확한 반박을 하긴 어렵다. 미국 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베네수엘라의 현 상태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나타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 교수가 표현했던 '족장'들로 상징되는 부정부패와 독재는 사회주의를 좀먹는 암적 존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