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 이야기 - 연로하신 선생님과 이야기하다
원로 헌법학자이신 선생님은 이제 은퇴하여 경기도 광주 어느 곳에 개인 연구실을 만드셨다. 오랜만에 뵙고싶고 새해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뵈었다. 가다보니 이곳은 장천익 형님이 쉬고 있는 추모공원 바로 아래다. 천익이 형님, 보고싶다. 살아계셨으면 오늘 같은 날 따끈한 오뎅에 정종 한꼬뿌씩 빨고 있었을텐데. 바람은 쌀쌀하게 불어도 오는 봄은 어쩔 수가 없는지 그리 차갑게 느껴지질 않는다. 눈 온 뒤끝에 깊은 산은 아니더라도 언덕배기 해 안 드는 곳에는 아직 눈이 소복하다. 골목을 잠깐 돌아 선생님의 연구실에 당도했다.
3층짜리 전원주택이다. 벨을 누르자 바로 나와 문을 열으셨다. 널찍한 현관을 지나자 바로 거실이다. 거실은 따뜻했다. 우리가 온다는 연락에 혹시라도 추울까봐 보일러 온도를 높여놓으셨다고 한다. 어서 오시라. 오느라 힘들지는 않았는가? 여전히 온화한 얼굴이시다. 못 뵙던 동안 주름은 좀 더 깊어진 듯 하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 미소는 다시금 꼭 흉내내고픈 얼굴이다. 난 어째 그런 얼굴이 안 되는지, 조금만 굳으면 인상 쓰는 듯 하고, 조금만 풀면 정줄 놔버린듯 하단 말여...
튼실한 책꽂이가 거실을 둘러 조밀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가득가득 책이 들어 찼다. 소파와 차탁이 있는 공간을 빼고는 책이 점령하고 있는 전형적인 학자의 연구실. 거실이 좁아보이긴 했지만, 커다란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작은 정원 덕분에 시야가 트이면서 거실이 좁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훌륭한 공간이다. 역시 돈을 벌어야... 아,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정원 한 쪽엔 조그만 오두막 창고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장작을 쌓아놓는 공간이 있다. 날 좋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불 지피고 굽고 먹고 마시고 떠들고 할만하다. 좋구나.
장작은 이쁘게 잘려 있었다. 생각건데, 아마도 이걸 선생님께서 직접 쪼개놓으시진 않았을 것이고, 쪼개진 상태와 쌓여 있는 모습은 물론이고 그 위에 솔가지를 꺾어 잘 덮어놓은 걸 보면 꽤나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진다. 누군가가 와서 해놓고 갔던지 아니면 뭐 이걸 업으로 하는 사람을 썼던지 했을 수도 있다. 오두막은 작은 규모인데 왠지 어릴 때 꼭 갖고 싶었던 아지트처럼 여겨진다. 물론 창고처럼 쓰이고 있겠지만, 저런 오두막 하나 어디 깊은 산 속에 숨겨두고 몰래 갔다가 몰래 왔다가 하고 싶은 어릴 때 욕심이 다시 솟구치게 만든다. 남자의 로망이란 뭐 나이를 먹거나 말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일단 추운 밖에 있다 왔으니 몸을 녹이자며 차를 권하셨다. 어딘가에서 선물을 받으셨다는 어떤 명인이 만든 차 세트였는데, 티백으로 된 여러 종류의 차가 있었다. 선생님께선 물을 끓여 내주셨고, 나는 그 중에 도라지차를 꺼내 물에 담궜다. 왠지 목이 좀 깔깔한 듯해서 선택한 도라지차였는데 다른 걸 마실 걸 그랬다는 후회가... 별 맛이 없다. 물이 좀 식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만. 아무튼 차 한 잔 하면서 새해 인사도 드리고 이런 저런 덕담도 나누었다. 일행을 인솔하고 간 선배 교수께서 선생님과 일상 지난 이야기를 하는데, 정겨움이 넘쳐난다.
애초 점심약속이었으나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그냥 안에서 먹자고 하신다. 식사준비를 위해 뭔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 싶어 여쭸다. 내가 이래뵈도 백수 몇 년에 늘은 건 칼질과 웍질 아니겠나. 하지만 선생님께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신다. 당신이 다 준비해 놓았으니 손 댈 것이 없다고 하셨다. 민망한 마음이지만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그리곤 한아름을 들고 차탁으로 와 내려놓으신다.
준비하셨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근처 마트에서 사셨을 것 같은 회 몇 점과 김밥이 주종목이었다. 본인이 직접 손을 대신 건 오이를 대강 툭툭 썰은 것과 상추와 통마늘을 씻어 올리신 것이었다. 잠깐이라도 뭔가 직접 조리를 한 음식을 기대했던 낭만은 그냥 한 순간에 사라졌지만, 소박한 식사에 곁들이라고 내주신 훌륭한 와인에 이내 기분이 상쾌해졌다는...
한 잔 두 잔 마시는 동안 약간 취기가 오른다. 얼굴이 불콰해진 선생님께서 이제 말씀이 많아지고 길어지신다. 자식얘기며 정년퇴직한 후 했던 여행 얘기를 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했던 말건 직업병이라는 건 어쩔수가 없는 건지 결국 헌법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귀담아 들어야 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말씀 중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있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도 이 자리가 학술토론회 자리도 아닌지라 여유로운 마음으로 듣다보니 앞으로 생각해야 할 거리가 계속 쏟아진다.
특히 공화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몇 년 간 내 관심사이기도 했기에 참작할 소재가 많았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관계, 한국사회에서 공화주의의 퇴행현상, 공화주의가 퇴색한 사회의 현실, 이를 극복할 방안, 향후 공부하고픈 주제까지, 선생님의 말씀은 천변만화하며 내 머리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선생님은 이미 다른 학자들과 공화주의를 논의하는 그룹을 만들고 거기서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하신다. 법학자는 물론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게중에는 아는 이름들도 있었다. 뭐 썩 좋은 멤버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거야 내 생각일 뿐이고.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언젠가 제대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중인데, 향후 선생님과 이야기를 좀 더 깊이 해봐야겠다. 몸과 마음이 이완된 상태에서 게다가 와인 몇 잔으로 기분이 풀어진 때에 한 이야기다보니 정선되지 않는 이야기, 논리정합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왔다갔다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좋은 채찍질이 되었다. 이렇게 비슷한 주제로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꽤나 짜릿한 자극이다.
선생님께서 좀 더 건강하시고, 다시 기회를 잡아 공화주의에 대하여 말씀을 청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