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셨어요?- 김경수 구속에 대한 더민당 반응
와, 이건 뭐 아무리 당황했다지만 대놓고 저리 막 쏴 부치는 건 뭔 배짱인가? 아니, 니들이 우릴 건드려? 이 적폐분자들이? 하, 이것들 봐라. 오냐 어디 당해봐라, 니들 똥줄이 탈 때까지 함 두들겨 줄게, 견뎌봐. 뭐 이런 거야?
김경수 법정구속 이후 나온 더민당의 반응은 솔직히 좀 놀라울 지경이다. 특히 나를 기함하게 만든 건 박주민인데, 박주민은 사건이 터진 후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사법적폐세력인 양승태류의 잔당들이 벌인 반격의 시발처럼 묘사했다. 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주민이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와, 박주민이 정치인 다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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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관점이 단지 박주민만의 것은 아닌 듯하고, 더민당의 수뇌부들은 대충 이런 방향을 잡고 향후 대응을 하려는 듯 보인다. 더민당은 이번 사건은 궁지에 몰린 적폐세력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 참에 아예 전면전을 감행해서 사법부 적폐세력들을 발본색원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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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역시 법정구속되는 와중에 재판장과 양승태의 불순한 관계를 언급하면서 실형선고와 법정구속이라는 결과가 법적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 내부의 정치논리가 작동한 것인듯 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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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선고공판 전부터 주변에서 담당판사인 성창호가 과거에 양승태 대법원에서 양승태와 특수관계가 있어 재판에 불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정의당 전의원이었던 서기호는 성창호가 자신이 연루된 법원블랙리스트를 들여다본 행적이 있다면서 김경수 등의 심증에 합리적 이유가 있음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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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까지 언론에 노출된 재판부의 판시사항을 보면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건 좀 뜬금없다. 주장의 내용에서 재판부가 사실관계로 판단한 바에 대해 어떤 반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는 특검주장을 복붙한 것이고, 증거 없는 심증 뿐이고 결정적으로는 적폐세력의 준동, 이런 식의 논지를 끌고간다. 아무리 당황했기로서니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류의 도식이 출발했을까?
기실, 이번 재판부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다는 이야기는 이전에 기사화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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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따르면, 법원 내부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법농단사태의 수사에 대한 불만, 그리고 이에 대해 이도저도 아닌 무능력한 대응을 보이고 있는 대법원장에 대한 반발이 엮이면서 적폐청산이라는 어떤 양상에 대하여 저항하고자 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단의 전조가 바로 우병우의 구속기한연장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런 기사들이 이전에 나오고, 법원 내부의 기류에 이상이 있다는 내부자들의 전언도 돌았을 터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 터지자 더민당에서 나온 반응에서는 "역시 그렇군!"이라는 취지도 보인다. 그런데 사전에 이정도로 우려가 있었다면 왜 그렇게들 당황하는가? 경우의 수라는 것에서 김경수가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라는 걸 생각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우왕좌왕하면서 사법부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발언을 그것도 아주 강력한 표현을 동원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법원 내에 어떤 기류가 있다손 치더라도, 저 한겨레 기사는 좀 격하게 말하자면 '카더라통신'에 불과하고, 우병우 건이던 노건평 건이던 간에 갖다 붙이면 다 되는 사건에 불과하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건 사실이지만, 이 한겨레 기사가 그 불신을 증폭시키는 역할 외에 어떤 의미가 있었나? 더구나 그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더민당이 지금까지 미적거리다가 이제와선 뭐 세상을 뒤집을 것처럼 설레발 치는 것도 어이가 없다.
작년에 사법농단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때부터 법관탄핵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니 그럼 지난 10개월 가까이를 더민당은 탱자거리다가 이제와서 뭐 사법적폐를 어쩌구 한단 말인가? 차라리 지속적으로 사법부 견제의 역할과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노력을 다 하다가 이런 사건 터지면 "흔들리지 않고 사법부 견제라는 본연의 의무를 계속하겠다" 정도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텐데. 멋지잖아, 이렇게 하면.
난 입장을 바꿔놓고, 만일 이전에 홍준표가 성완종리스트 건과 관련하여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그가 법정구속되었더라면 더민당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판사의 전력따윈 전혀언급하지 않고 역사적 심판 운운하지 않았을지.
솔직히 말해, 법원이 사실관계의 판단을 소홀히 했다고는 하지만, 아닌 말로 사건의 흐름 속에서 김경수의 위치를 보자면 법원이 누구 말을 더 듣겠나? 관련성이 분명한 건에 대해서도 몰랐다 안 갔다 아니다로 일관하는 김경수와 그 관련성의 직접적인 증명은 아니더라도 객관적으로 관련성을 인정할만한 각종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고, 드루킹 등이 계속 이에 대해 일관된 증언을 하는 판에.
그렇다면, 이러한 와중에도 김경수가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하거나, 또는 관련법리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해야 대응이 되는 거지, 여기다 대고 양승태 키드 운운하는 건 도대체 뭔 짓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당장 야당으로부터 삼권분립의 헌법원리를 파괴하고 있다고 힐난을 받는다.
그렇게 서러우면 김성태가 밥 좀 굶는다고 특검 덜컥 받은 걸 우선 탓해야지. 홍영표가 원내대표 되자마자 실적 한 번 내볼려고 우는 성태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인심 썼다가 결국 이지경 된 거 아닌가? 하긴 뭐 그런 전적이 있다보니 제발저린 홍영표가 사법부 조까라고 저리 언성을 높이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암튼 더민당, 많이 당황한 듯 하다. 박주민까지 저리 될 정도면 이건 거의 패닉상태인듯 한데. 오히려 이렇게 일이 되면 사법적폐청산은 더욱 꼬이게 된다. 이 틈에 적폐세력 잔당들은 오히려 원군을 만나게 되고 여론의 힘까지 받게 된다. 참 잘들 하는 짓이다. 판결을 음모론으로 몰아가면 종국에 남는 건 허망함 뿐이다.
이따위 수준의 세력들이 20년 정권을 운운하고 있다는 게 웃기고, 진짜 20년 정권 잡을까봐 겁이 덜컥 나고, 여기에 대해 어떤 힘도 쓰지 못하는 진보세력들의 무능함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