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엄살, 6.2%의 의미

19대 대선에서 정의당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성과를 남겼다. 하나는 소위 원내 ‘진보정당’의 후보가 사표론에 굴하지 않고 대선을 관통했다는 두 번째 사례를 남겼다는 점, 다른 하나는 87년 현행 헌법 이래 최초로 진보정당 후보의 득표율이 6%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의당 관계자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심상정이 확보한 6.2%의 득표율이 더민당의 공포마켓팅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화를 내고 있다. 이 분노에는 더민당이 작전만 쓰지 않고 페어플레이를 했다면 두 자릿수 득표가 가능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최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심상정 지지율이 10% 턱밑에 다다랐는데, 막상 투표함을 까고 보니 6%에 겨우 턱걸이 하게 된 건 더민당의 더티플레이때문이었다는 거다.

물론 이번 선거 과정에서 예의 사표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만큼 진보정당 후보가 사표론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대선은 일찍이 없었다. 87년 선거에서는 양김단일화를 주장하며 백기완 후보가 사퇴했고, 92년 선거에서는 백기완 후보가 재출마해서 대선을 관통했지만 사표론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나왔는데, 이 때는 국승 내부에서조차 프락션을 하면서 통 큰 단결을 위해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02년 대선에서는 박빙의 상태가 되다보니 한 표가 아쉬웠기에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은 노무현 후보측으로부터 엄청난 압박과 비난을 받았다. 후보사퇴의 요구가 아마도 가장 극심했던 대선이 아니었나 싶다. 02년 대선은 민주노동당 자체도 김빠진 후보선출이었던데다가, 워낙 판이 한쪽으로 쏠리다보니 02년만큼 진보후보 사퇴요구가 강하진 않았다. 07년 대선은 아예 원내 정당의 진보후보들은 알아서 구획정리를 해줬다. 이정희와 심상정은 그렇게 대선레이스에서 빠졌다. 김소연, 김순자라는 진보후보가 있었으나, 이들은 대선후보로서는 거의 존재감을 가지지 못했다.(물론 이러한 현상을 만든 원인과 책임은 진보진영에 있다. 선거를 선거로 보질 않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기 정도로 착각하는 진보가 있는 한 선거는 영원히 남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러한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정당의 후보에 대해 02년 대선에서처럼 극한적인 사퇴요구가 발생하진 않았다. 일부 더민당 지지자들이 진보정당 후보 사퇴를 공공연히 요구하면서 망발을 일삼는 통에 정의당 관계자들이나 지지자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일이 있으나, 그것이 02년과 비교했을 때는 새 발의 피 정도나 되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정의당 관계자들이 민주당의 더티플레이를 탓하면서 지지율이 낫게 나왔다고 하는 것이 근거 있는 태도라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이미 패가 기운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자들이 마음 놓고 진보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았던 점을 본다면, 6.2%에 대한 정의당의 반응은 엄살이거나 주제파악이 안 된 것일 수도 있다.

 

과거 권영길 후보가 3.98%의 지지율을 받았던 대선 직전 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8.13%의 정당지지율을 얻었다. 이번 대선을 보면 심상정 후보는 6.2%를 받았는데, 직전 총선에서 정의당은 7.23%의 정당지지율을 얻었다. 이 상관관계를 보면 정의당은 이번 대선에서 남는 장사를 하면 했지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아주 단순하게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따라서 정의당 지지자 일부가 더민당을 까면서 지지율 빼먹고 튄 것에 사과하라고 하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번 대선에서, 주목할 것은 진보후보에 대한 사퇴여론이 높지도 않았고, 정의당이 분발하고 심상정이 부각된 선거판임에도 지지율이 6.2%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그토록 괜찮은 지형에서, 유래 없이 진보후보가 미디어의 상당한 지원을 받았던 선거에서, 6.2%는 뭘 말하는 것일까? 이 득표율은 비관적인 것인가 낙관적인 것인가? 이 득표율은 남한 사회의 진보정치가 가지고 있는 지반의 최대치일 수도 있고 반대로 가능성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대선이라는 특유한 선거과정, 즉 총선이나 지선과는 성격과 양상이 판이하게 다른 선거판이라는 점을 감안할지라도 진보정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득표율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수치다.

정의당의 약진이 가능한 수치인지, 아니면 진보정치 전반이 재구성되지 않으면 안 됨을 보여주는 수치인지 보다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정의당만으로 진보정치의 재도약이 가능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차피 진보정치 전반의 지형은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정의당의 역할이 어떻게 될지, 또는 진보정치세력이 정의당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6.2%의 의미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해석해 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해석이 좀 진척되면 또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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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11:22 2017/05/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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