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먹튀인가?
한 전직의 폭로 “국회의원 특권이라고 들어봤나?”
지난 연말, 케이블 방송 tvN의 한 프로그램이 국회의원의 특권을 까발리는 내용을 방송했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현직 엔터테이너(?)인 모 인사가 과감하게 국회의원 특권의 속살을 드러냈던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상당한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국회의원 특권’이라는 키워드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하면, 속칭 ‘세비’라고 일컬어지는 국회의원 수당만 연봉으로 따져 1억 5천만원에 육박하고, 기타 부가적인 수입까지 포함하면 2억 3천만원 정도의 연봉, 거기다가 각종 특권의 종류가 200가지가 넘고, 이러한 수준에서 1명의 국회의원 앞으로 들어가는 돈이 4년 동안 35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에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분노가 작렬한다. 하는 일도 없는데 세금만 축낸다는 것이 그 분노의 요지. 이해할 수 없는 수당항목으로 상당한 금액을 받아가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수당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이 놀라운 행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노여움이 꽤 오래 이어졌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국회의원 특권축소가 논의되고 있다. 세비 30% 삭감, 겸직제한 강화 등이 그 내용이다. 이러한 의제가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결과를 산출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녕 국회의원은 놀고 먹는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국회의원들은 제대로 하는 일 없이 4년 동안 ‘세비’만 삼키고 있는가? 간혹 의사당에서 각종 격투기의 비술을 시전함으로써 이종격투기 매니아들의 갈증을 달래주는 정도가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의 전부였던가?
다음으로,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특권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주었는가? 주권자인 국민인가, 지역구 유권자들인가? 그 기준은 무엇이며 효용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은 국회의원의 권한에 대하여 그것을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지의 판단을 위해 우선 필요하다. 또한 만일 그것이 특권이라면, 그 특권을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먼저, 국회의원이 과연 놀고 먹는 신의 직장인지부터 확인해보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계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3권 분립임은 설명이 필요 없다. 입법, 사법, 행정이 그 세 축이고 국회의원은 이 중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헌법기관이다. 이러한 지위로부터 국회의원의 의무가 도출된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또한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주 책무로 한다. 국회의원의 업무는 따라서 법을 만드는 것과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다. 결국 국회의원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혹은 놀고 먹는지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입법활동과 정부감시활동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제18대 국회 임기였던 2008년~2012년까지 4년 간 국회에 접수된 의안은 14,762건이었고, 이 중 법률안은 13,913건에 이른다. 법률안만으로 계산을 해도 정수기준 평균으로 국회의원 1인당 46건이 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고, 1인당 매월 1건에 육박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나타난다. 임기를 1년여 넘긴 제19대 국회에서 지난달까지 발의된 법률안은 5천 건이 넘고, 이 수치는 국회의원 1인당 매월 1~2건의 법안을 발의한 결과이다.
법안의 질에 높고 낮음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법안의 구성과정과 발의과정 등에 상당한 인적, 물적 및 시간적 노력이 필요하며, 법안 발의 이후에도 법안의 통과 등을 위해 일정한 작업이 진행됨을 감안하면 국회의원 1인이 월 1~2건의 법안을 입안하여 발의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국회의원도 바쁘다, 그것도 많이 …
한편, 정부의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는 것 역시 현황을 분석하면 그리 간단치 않다.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을 합쳐 무려 100만의 공무원이 움직이고 있는 행정부를 300명의 의원이 감시 견제한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행정부는 각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관료들의 견고한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조직적 관행과 결속이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어렵게 한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면, 국회의원이 행정부와의 긴장을 극복하면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관료들만큼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고 그들의 빈틈을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특권’에 대한 거부감과는 별개로, 국회의원들이 말 그대로 날로 먹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단지 국회의원들이 생각보다 많이 수당을 받는 것을 두고 ‘특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놓칠 수 없는 문제점은 이러한 오해가 발생하도록 만든 원인은 여전히 국회의원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할 만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세비 30% 삭감”을 비롯해 ‘특권 내려놓기’ 운운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뭘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자신들에게 돌려진 그 혜택의 근거와 기준이 무엇인지 자신들조차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근거와 기준으로 인해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환언하자면 국민은 그들이 일하는 과정과 내용을 알 수 없는 동시에 그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에게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내 월급은 내가 정한다”는 직장의 신들
결국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수행하고 있는 일과 비교해 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인지 여부이다. 합리성의 기준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최저임금이 4,860원에 머물러 있는 2013년 6월 현재, 국회의원의 월 수당이 1천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것에 유권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제 “내 월급은 내가 정한다”는 패기가 돋보이는 국회의원의 세계를 좀 더 깊이 탐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