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아, 책임져라

잡기장
사람들 인솔하는 역할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술먹고 한참 기분좋을때 들어 응낙한지 4주.
그냥 혼자 가랬으면 한번쯤 갔을까 싶은 서해안을 내 적성에 맞는, 기분좋은 역할 덕에 계속 가고 있다.

3차부터는 섬에 들어가기 위해 시민구조단 규모를 축소하고, 금요일 저녁 11시에 모여 준비, 1시에 출발하는 일정이다. 비행기는 두번 타봤지만 한강의 오리배를 어릴때 탄것 말고는 배를 타본적이 없다. 육지, 특히 유명한 해수욕장은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가서 어느정도 나아졌다곤 하지만, 섬은 상황이 좋지 못하다. "라인업"에 방송된 후 문의전화가 폭주했다고 하는데, 대부분 노인분들이 제대로 안전장비도 없이 기름을 걷어내고 있다지. 그래서 기왕이면 섬에 갈 수 있으면 의미도 있고, 또 배도 탈 수 있으니 더욱 좋다.

그러나 나의 소박한 바램을 시기라도 한단 말인가! 지난번은 도착 후 한시간 동안 갑자기 바람이 심해져서 배를 못 띄우더니, 이번엔 우리가 타기로 한 배가 고장이 나버렸다. 그래서 두주 동안 다시 태안의 구름포로 가서 기름을 닦아냈다. 육지이고 해수욕장이지만 역시 그곳도 조금만 들어가보면 기름 천지다.

3차까지는 기름 제거하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삼성중공업, 허베이 스피리트호 측과 그걸 불러들인 현대오일뱅크. 그리고 안이한 판단과 늑장대처로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든 정부.. 분명 이 사고는 사람이 만든 재앙이다. 많은 생명이 스러져갔고, 살 터전을 잃었다.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동안 노력하고, 고통받아야 할지. 무고한 사람들이 이미 받고 있고, 앞으로 계속 나눠 받을 피해 또한 엄청나다. 걸려있는 보험금을 전액 타낸다해도 방제작업과 피해보상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

구름포로 들어가는 길에는 "선보상하라"는 플랭카드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진을 못찍어 아쉽다) 사고 이전에 낚아올린 수산물도 서해안에서 왔다하면 팔리지 않아 서해안 어민들의 생계는 이미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고, 환경 파괴와 오염물질로 건강을 해칠 위험도 가장 많이 안고 살고 살아갈 서해안 주민들이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민들이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하며 그 절차도 번거롭고 어렵다. 이래서야 보상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제대로 될까 걱정인데 삼성을 비롯해 이번 사고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성심껏 피해 복구와 보상에 나서고 있지 않고, 조용히 어떻게든 이번 사태를 넘어가고 자신들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일 궁리만 하고 있는 모냥이다. 심지어 사람을 보내 조사중인 해경을 협박하기까지 한다니.. 아놔 썩을 것들. 욕을 안할 수가 없다.

이제 오늘, 1월 7일은 사고가 난지 한달째다. 이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오늘 삼성 본사 앞에서 삼성의 책임을 묻는 퍼포먼스를 한다고 한다. 뜻있는 분들 모여주삼.


그리고 삼성은 내 피로도 책임져라. 이제 슬슬 지친다. -_- 다음주는 꼭 섬에 들어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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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7 03:28 2008/01/07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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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2008/01/07 15:12 | DEL
당신의 힘은 작지만 모이면 큰 힘이 됩니다. 비뚤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 그 힘은 바로 정의를 밝히는 '국민의 힘'입니다. 지금,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동참해주세요...
에밀리오 2008/01/07 05:32 URL EDIT REPLY
와! 지각생님 오랜만이에요~ (응?!) 반가워서요 ^^; // 와... 멋진 퍼포먼스에요 ^^
지각생 2008/01/08 20:12 URL EDIT REPLY
ㅎㅎ 에밀리오님 저도 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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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잡기장
요 몇달 동안 많은 걸 먹어치우고 있다. 밥도 많이 먹고 책도 영화도 노래도. 요즘은 살기가 어려워 밥은 다시 줄였다. 끼마다 두그릇 이상 먹었는데 요며칠은 한그릇으로 충분하다.

언뜻 번뜻 떠오르고 스쳐가는 생각들, 뭐 사실 대단한게 아니지만 뭔가 생각을 더 뻗어나가보면 좋을 듯한 것들이 언제나 많았고 요즘도 몇가지 있는데
거 마치 주문에 걸린 테나처럼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고, 나중에 떠올려지지 않고, 저 깊은 곳에 아스라히 있는 다른 기억과 씨앗들과 연결이 되어주질 않는다.

어제는 올해 첫 일정이랄까 그런게 있었는데
도무지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 만나는게 꺼려졌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곳이 없을까. 집은 너무 익숙한데다 따뜻하고 먹을것도 바로 옆에 있고, 컴퓨터와 볼거리들이 날 땡기고 있으니 곤란하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면 요즘은 너무 추워 어디론가 들어가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사람 냄새나는 곳은 별로 없다. 그래서 밤 9시에 집을 나와서 또 미문동에 갔다.
역시 바깥문이 잠겨 있지만 지난번 기타 갖다 놓을 때 발견한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해킹이다. -_-V
(어이 홍, 이거 보거던 열쇠 꼭 구해달라고)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왔다간 흔적이 보인다.
개굴은 폰을 놓고 간 듯 하고 (바보 -_-)
차를 끓여 마신 듯한 흔적. (좋아)
양초 세개가 놓인 테이블. 쇼파엔 충사 1권.

오면서 추위에 떨은데다 저녁을 안 먹어 배가 고프다. 그 두 가지 기본적 욕구는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반쯤 잊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다가 사온 라면을 날로 씹어 먹으며 난로를 켜고 쇼파에 앉아 있자니 점점 아무 생각도 안난다. 옆에 있는 만화책을 집어들었다. 전에는 1권이 안보이길래 나중에 보려고 했는데 오늘은 2권이 없다. 조금 보다 보면 몸이 녹겠지 싶어 1권을 보기 시작했다. 음음 흥미롭군 꽤 괜찮은데. 그러나 1권을 다 봤지만 몸은 녹지 않았다. 난로가 부실하다. -_- 끊임없는 감각의 홍수는, TV와 컴퓨터, 책, 음악, 배고픔, 외로움, 추움, 길가의 간판, 지하철의 광고와 안내메시지, 가로등, 신발의 모래, 어는 손, 만성비염으로 반쯤 막힌 코... 잠깐보다 더 긴 시간동안 내 스스로와 차분히 대면하는 걸 방해한다. 그리고 그걸 필터링하는 능력은 떨어져 있다. 오히려 특정 감각은 전보다 더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되는데로 지껄이기" 시작하는 것 뿐이다.
말하고, 쓰고 내뱉는 그 순간 어디선가 생각들이 떠오르고 이어진다. 언제나 그렇다. 난 입력-처리-출력의 과정을 밟는 순차적 프로세서가 아니라 출력과 처리가 동시에 이뤄지는 (입력과는 분명 떨어져 있지만) "사람"임에 틀림없다. 내 블로그에 내가 만들어온 컨셉, 이미지를(그런게 있다면)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출력을 뒤로 미루는 한, 머리 속의 생각은 계속 뱅뱅 돌 수 밖에 없다. "조용히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게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되는대로 이걸 화제로 삼아 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보고 있는 책은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
전에 본 "에코 페미니즘"과 함께 과학-기술-논리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갈아엎어준다.
두 책 모두 현대 한국의 똑똑한 남자들이 꼭 한번 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앞의 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책에 더 흥미를 느낄 거지만, 뒤의 책을 먼저 아니면 그거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특히 10장 "백인남성의 딜레마 : 자기가 파괴한 것에 대한 추구"가 확 다가왔는데, 이 책은 각 장과 장이 순차적으로 꼭 연결되는 건 아니므로 이 장부터(혹은 "만") 봐도 좋겠다. 백인남성만이 아닌 한국의 잘난 남성들도 한번쯤 보고 얘기해봤으면.

이런 책들, 영화, 만화 등을 보며 내 "머뭇거림"이 더해지는데, 내가 다루고 있는 분야가 -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사회운동 -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성과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남성적 논리 과학기술의 정점으로도 보이는 IT. 그 생산과정에 눈을 돌릴때 역시 이대로 둬선 안된다는 조바심이 막 생기면서도 지금까지 내가 해왔거나 말하려던 것을 다시금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성이 느껴지니까. 근데 여기서 갑자기 연의 줄을 놓쳐 버린 것처럼 그 "뒤집어 생각"을 실제로 진전시키진 못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났다.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그 생각을 완성하고 빈 곳을 메꾸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히 내 던지는 것과,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이겠지. 어쨌든 나는 "관계속의 한 접점"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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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13:07 2008/01/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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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달 2008/01/03 13:34 URL EDIT REPLY
어제 기다렸다오..하지만 나름 좋은 시간을 보냈구랴
지각생 2008/01/03 14:28 URL EDIT REPLY
ㅎㅎ 먄요. 나야 언제나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 새해 첫 덧글 감사. 복 받으삼 ㅋ
디디 2008/01/04 13:27 URL EDIT REPLY
옆방가면 부르스타도 있는데 라면은 끓여먹으라공~
지각생 2008/01/07 03:30 URL EDIT REPLY
귀찮았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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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토끼

잡기장
연말연시가 와도 별 감흥이 없다. 그냥 어제와 다름없는 백수의 나날들. "몬스터" 포스팅 했을때와 크게 다르진 않다.


다운받다가 무심코 같이 클릭을 했는지, 어느틈에 내컴 하드에 들어있던 영화, "노리코의 식탁".


영화평은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 영화를 다운 받아 보던, 평을 검색해서 보면 되고.


한 대사를 떠올리니 문득 다른 쪽으로 생각이 샌다. (병이다)
"모두가 편해지려고만 해. 모두가 사자로 보여. 토끼로 돌아가자." 대강 이런 대사.
여기서 사자와 토끼는 역할을 말한다. 먹이사슬에서 먹는자와 먹히는자.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곳에서 차라리 적극적으로 거짓을 택하는 것이 마음 편할 수도 있기에
현실을 연극처럼, 스스로 뭔가 역할을 맡아 그걸 수행한다. 사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본다. 영화속 화자들은.
그리고 모두가, 자신에게 편한 역할, 사자의 역할을 원한다. 아무도 토끼가 되려고 하진 않는다.
이런 배경이고, 저 대사는 슬프기보단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저 말을 하는 사람이 자살하는게 아닌가 싶은 상황에서 하는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모두가 토끼인데,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먹히는 자에서 출발했으면서
그 세상 자체를 평화와 공존의 세상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사자의 시체를 먹는 토끼, 사자를 흉내내는 토끼로 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아니면 토끼 무리에 섞인 사자가 토끼인 양하는 경우도 보이고.

정글이 사실은 가짜라는 걸 드러내고, 사자와 토끼 역할 어느것도 맡지않아도 되게끔 하려는데
그러기 위해선 토끼의 역할이 중요하다 말하면서도
정작 토끼의 목소리보단 진짜 사자와 가짜 사자의 경쟁하는 목소리만 넘쳐난다.
토끼의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한 토끼에겐 알아들리지 않을텐데.


사자가 되려는 토끼, 토끼 무리에 섞인 사자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 활동가와 주사파들.


쩝. 뭐든지 끄적거리고 싶은데 도무지 뻣뻣하다.
올해 목표는, 매일 하나의 포스팅.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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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03:04 2008/01/0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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