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인간이 먼저(humain d‘abord) / 경향신문, 2012-02-03 20:27:56

바야흐로 프랑스는 선거철이다.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섰다. 사상 최초로 신용등급이 강등당한 프랑스로선, 이젠 모두에게 명백해진, 잘못 들어선 길을 서둘러 나오게 해줄 혜안을 가진 선장을 찾는 게 절실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아마존 사이트 정치·사회 분야를 어슬렁거리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정치·사회 분야 3위(종합순위 13위)에 올라있는 책은, 차마 책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좌파전선(Front Gauche·프랑스공산당과 좌파당의 연합)의 대선후보 장 뤽 멜랑숑의 공약집!

단돈 2유로. 95쪽. 저렴한 가격이지만, 선거철에 쏟아지는 홍보물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바쁜 이 시절에 간 크게도 공약집을 돈 받고 팔고 있는 멜랑숑의 지지율은 고작 7%이다. 녹색당과 더불어 5, 6위를 달린다. 그럼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사회당의 후보 올랑드는? 멜랑숑의 공약집이 지난해 10월 출간된 것과 달리, 올랑드는 지난 주말에야 공약의 골격을 처음 발표했다. 출간된 공약집 따위는 없고, 올랑드의 자서전만 100위 바깥에 간신히 얼굴을 들이민다. 지지율 23%로 2위인 사르코지는? 오로지 사르코지 정부의 무지막지한 실정을 폭로하는 책들만 드글거릴 뿐.

‘물론 가능하다.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재앙을 극복해 왔다. 우리 앞에 지금 펼쳐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이면에는 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우린 바로 그 가능성을 포착해야 한다…생태적 재앙, 불평등, 고용 불안정, 빈곤의 폭발, 반복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유린, 연대와 협력에 기반하는 인간관계의 거부. 이 모든 것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의 독재라는 공통 원인을 토대로 이뤄진 결과들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지배는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허약한 구조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뒤바뀔 수 있는 정치적 결단에 좌우되는 구조이기 때문. 금융자본 지배의 장벽을 넘어선다면, 우리는 신속하게 우리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이 먼저>(재뤼출판사)는 모두가 처해 있는 이 괴로운 시대의 핵심원인을 명쾌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넘치는 부, 그러나 한 곳에 치우쳤던 부를 분배하고, 사회적 불안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최저임금 250만원, 모든 기업에 대한 급여 상한제, 공공분야 80만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 임대료 상한제, 향후 5년간 연 20만 임대주택 건설. 은행과 금융시장이 점한 무소불위의 위험한 권력을 빼앗아 오는 것도 공약의 중요한 부분이다. 시중은행의 투기 통제, 부자 감세를 위해 설치했던 세금상한제 폐지, 금융천국에서 벌어지는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 통제, 기업의 금융소득에 세금 부과. 전기·가스·원자력·석유 등 환경과 에너지 산업을 국유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한 치의 모순없이 견고하고 아름답게 들어맞는 진단과 대안에 독자들은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이뤄야 할 유토피아를 위한 과제의 목록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르코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는 제1 야당 사회당의 후보 올랑드가 지난 주말 선보인 공약들에는 멜랑숑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단박에 뛰어넘는 진보. 그걸 우린 혁명이라 부른다. 멜랑숑은 이 책에서 선거를 통한 시민혁명을 호소한다. 그리고, 이 빛나는 생각들로 이 가벼운 책자를 통해 하나둘씩 사람들을 설득해낸다. 이미 그렇게 혁명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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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8 16:40 2012/07/08 16:40

가끔 주위 동료들이 제게 묻습니다. 도대체 녹색당에 들어간 이유가 뭐냐? 남이사 녹색당에 가입을 하든 새누리당에 가입을 하든 나의 정치적 결정권에 대해 웬 말이 많냐? 이렇게 되받아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진 않습니다. 혼자 살면서 차를 몰고 다니고 밥 퍼면서 양 조절을 못해 음식을 남기고 여름에는 더위를 참을 수 없어 매일 선풍기 틀어 놓고 하니 제 꼴에 녹색당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소련이 무너졌는데 당시 공부하든 책들이 대부분 동독이나 소련에서 나온 책들이라 다들 충격을 받았지요. 누구는 학생운동을 떠나고, 소위 운동판에 있던 선배들은 '이것이 아닌가벼'라며 다 접고 고시공부하던 그런 시기가 있었지요. 뭐 다들 잘 먹고 잘 살겠지만 당시에는 안타까운 상황들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갔지요.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는 단지 하나뿐이었습니다. 왜 맑스주의가 문제일까? 맑스의 철학이 소련이 망한 것과 독일이 망한 것과 전혀 관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저는 맑스주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정식으로 공부를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지요. 그 때 한 선생님은 제게 '시대착오주의자'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아, 제가 녹색당에 가입한 이유는 학부학생 시절 막연하게 한국에 '사회주의노동자당'과 '녹색당' 중에 먼저 생기는 당에 가입하겠다고 스스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뭐 단순하지요?

이런 식으로 제가 약간 아는 걸 마치 많이 아는 것처럼 거들먹거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군요. 앞서 거창하게 강령의 해석을 한 번 시도하자고 시작했는데, 결국 맑스의 [자본]을 강의하듯 설명하는 꼴이 되었습니다만 강령에서 제시하고 있는 물신주의 극복이 녹색당의 강령에 없었다면 저는 아마 녹색당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녹색당의 이념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녹색의 의미를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에서 물신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만용을 부려봅니다.

화폐의 본질

맑스는 자본주의 상품경제체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상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화폐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상품이 가치로서 교환되기 때문이고 가치는 모든 상품의 내재적인 화폐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품이 내재적인 화폐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상품이 곧 화폐라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천원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쭉 늘어 놓았을 때,

"1000원 = 컵 하나 = 볼펜 1자루 = 가위 하나 = 새우깡 한봉지 = 소주 한병 = ....."

이런 식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상품을 나열할 수 있겠지요. 결국 컵 하나의 가치와 볼펜 1자루의 가치가 같으니 두 상품은 서로 교환될 수 있습니다.

결국 화폐는 보편적 교환의 매개물인 셈이지요. 모든 상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속성은 화폐라는 양적 단위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상품의 사용가치가 상품의 유용성을 나타낸다면 상품의 가치는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비율의 지수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화폐란 바로 상품의 가치를 화폐라는 형태로, 상품 내부에서 상품 바깥으로 꺼집에 내어 화폐형태를 부여한 거지요.

뭐 사실 맑스의 [자본]을 이해하는 데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들 합니다. 상품에서 화폐로 나아가는 이 과정을 분석하는 부분이 [자본]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고 또 [자본]의 나머지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인 셈이고요. 그래서 방법론과 관련하여 아직도 많은 논문이 생산되고 있답니다.

여하튼 맑스는 개별적인 상품들의 가치를 화폐라는 보편자의 형태로 상품의 외부에 이끌어 냅니다. 이것을 우리는 상품이 자신의 가치를 보편자인 화폐를 통해 실현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맑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품은 화폐 속에서 “동족의 아름다운 가치의 혼”을 알아보는 것이지요. 화폐가 모든 상품의 신이 된 비결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화폐는 상품 교환의 과정에서 교환의 편리를 위한 매개 수단에 불과한데도 화폐는 모든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짐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든 상품의 신, 눈에 보이는 신'처럼' 군림하게 된 거지요. 여기서 조사 '처럼'이 가지는 의미가 상당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신성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물들 간의 관계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물신주의의 본질은 사실 이러한 전도된 관계를 일반적인 관계로 만드는 근원을 파헤치지 않으면 이 후 제기되는 문제, 사실 우리 삶의 실제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어떻게 화폐가 모든 상품의 신이 되었는가?" 라는 물음은 곧 "개인들의 사적 노동이 어떻게 사회적 노동으로 전환되는가?"라는 물음의 답이고 이 물음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사적 부(富)가 어떻게 사회적 부(富)로 전환되는가" 라는 물음의 답을 제공하는 셈이지요. 이 말은 곧 개인의 사적 권력이 어떻게 공적 권력이 되는가 라는 문제와 같은 거지요. 정몽준이나 이건희가 그저 한국에서 돈이 좀 많은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결국 물신주의에 대한 이해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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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8 15:28 2012/07/08 15:28

동대구에서

사진 2 2012/07/04 19:07

어제 모처럼 대구에 갔다. 동대구 역사를 빠져 나오면서 하늘을 보니 하늘은 뿌옇게 흐린 구름 사이로 강한 햇살을 쏟아낸다. 지난 번 동대구 역에 내렸을 때는 비가 줄줄 내리고 있었는데 7월의 대구는 너무 더워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고 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줄만큼은 아니었는데 하늘을 보니 겹겹히 쌓인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뿌옇게 햇빛을 반사하는 구름. 뿌옇게 번들거리는 도시. 매캐한 공기. 지루하게 늘어서 있는 택시들.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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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19:07 2012/07/04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