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곡하는 법나의 화분 2005/02/06 04:20
요즘 몇몇 사람들이 내게 '약골님은 어떻게 작곡해요?' 라고 묻습니다.
어떻게 작곡을 하느냐.
이에 대해서는 저는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노래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방법이 정해져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 역시 자신에게 편한 방법, 맞는 방법으로 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노래를 만들 때는 서너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참을 수 없는 선율(멜로디)이 터져나오는 경우입니다.
어떤 경우에 주체할 수 없는 멜로디가 내 몸을 휘감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주 멜로디가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계속 다른 멜로디가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하여간 마치 핏줄을 타고 전류가 흐르듯 멜로디들이 살아서 흐른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멜로디들을 저는 그냥 놔두기도 합니다.
그냥 편하게 그런 상태를 즐기는 것이죠.
'그런 멜로디를 그냥 흘려보내다니 아깝지 않느냐?'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텐데요.
이렇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 흐르는 멜로디를 마치 내 개인의 것으로 사유해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겸손한 공경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서 저는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중에서 어떤 멜로디는 내가 잡아채오기도 합니다.
그런 멜로디를 기반으로 곡의 기초적인 구조를 잡고, 거기에 살을 붙여서 하나의 곡이 완성되기도 합니다.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도 좋지만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것도 좋으니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야겠네요.
제가 만든 많은 노래들이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습니다.
한밤중에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멜로디가 흘러서 이것을 조금이라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타를 집어 들고 바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죠.
'평화가 무엇이냐' 같은 곡이 대표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에요.
길을 걷다가 보면 이렇게 멜로디에 휩싸이는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저는 명상을 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저 터벅터벅 혼자 걷고 있구나' 같은 고독한 순례의 느낌만을 오롯이 전달받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걸을 때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걸으면서 멜로디가 나오고 기분이 나쁠 때도 걸으면서 멜로디가 나옵니다.
아마 몸의 리듬이 걸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걷는 것이 제게는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 같은 곡이 대표적으로 걸을 때 만든 곡입니다.
이밖에 가사를 미리 써놓고 멋대로 흥얼거리며 곡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멜로디보다 가사로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미리 가사를 완성시켜놓고서 기타를 퉁기면서 이렇게도 불러보고 저렇게도 불러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맘에 드는 선율이 나오면 그에 맞게 가사를 수정하기도 하죠.
'나이키? 아나키!' 같은 곡이 먼저 가사를 써놓고 곡을 붙인 경우네요.
저는 절대음감이 없어서 곡을 만들어 완성시키려면 악기가 필요한데요, 제가 주로 사용하는 악기는 기타입니다.
노래를 만들 때 보통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악기 하나가 있으면 좋습니다.
피아노든 하모니카든 퉁소든 그 악기와 친해지는 것이 중요해요.
그냥 습관적으로 악기를 갖고 놀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멜로디란 것은 떠오르기 마련이거든요.
기타를 맘대로 치면서 이런저런 멜로디가 떠오르면 리듬과 화성 진행을 생각해서 발전시키고, 다시 몇 번이고 고쳐 부르면서 선율과 리듬을 다듬어서 노래로 만들어내게 됩니다.
'나의 화분' 같은 곡이 이렇게 해서 완성되었던 것 같아요.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제게 즐거운 작업이고요, 그리고 언제까지 몇 곡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도 없기 때문에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아,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런 스트레스는 뭐 치명적인 것이 아니어서 금방 없어집니다.
나중엔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제게는 쉽고 흥겨운 일이에요.
내가 음악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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