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을 살리는 삼천원평화가 무엇이냐 2005/02/02 11:20
요즘 가슴에 '지율스님을 살려주세요'라고 적힌 조그만 연두색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등에 매는 기타가방에도 달고 그래서 앞뒤로 모두 이 조그만 리본에 달려있는 셈이네요.
매일같이 열리는 촛불 문화제에 가보면 모두들 이런 리본을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한 발자국만 걸음을 옮기면 또다시 익명의 대중들 속에 파묻혀 버리게 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됩니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어제는 지하철을 타고 촛불 문화제에 가다가 광화문 역 근처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연두색 리본을 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참 반가웠지요.
그 반가움이란 보통의 반가움과는 약간 성질이 다른 반가움 같았어요.
우리는 서로 눈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아가 촛불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활짝 웃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스님의 단식 98일째 되는 날이었지요.
이제는 저녁 9시 뉴스에도 지율스님의 이야기가 크게 다뤄지는 모양인가 봅니다.
촛불 문화제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늦은 시각.
약간 술에 취한 것 같은 50대 아저씨 두 명이 경로석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저는 도롱뇽을 접으며 그들 앞에 서있는데, 언뜻 들리는 단어들로 미뤄보아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아저씨들 같아 보였습니다.
술 냄새도 약간 풍기고 그래서 저는 다른 곳으로 갈까 그러다가 그냥 서서 도롱뇽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아저씨 한 명이 날 보더니
"어, 지율스님 나도 알아. 요즘 어디서 계속 단식하고 계신다지?"
하고 말을 걸었는데,
저는 일부러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하철 같은 곳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거는 아저씨들은 대부분 내게 시비를 걸려는 의도가 있거나 아니면 '철없는 아이'에게 현실 정치란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 한 수 가르쳐 주려는 심정으로 말을 걸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파병철회', '자이툰 부대 철수'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 등의 정치적 구호들을 몸에 붙이고 다녀왔는데, 그렇기에 그런 아저씨들은 가끔씩 제게 말을 걸면서 실은 뭐라고 한 자리 해주고 싶어지나 봅니다.
특히 약간 술을 자신 어르신들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지요.
술의 힘이 이런 것인가 봐요.
하여간 내가 대꾸를 하지 않고 그냥 서서 도롱뇽을 접고 있으니 그 아저씨가 재차 내게 말을 겁니다.
"어이, 나도 지율스님 신문에서 보고 안다니까 그러네..."
그러면서 갑자기 이 아저씨가 지갑을 꺼내는 것입니다.
천 원짜리 지폐 3장을 움켜 쥔 아저씨가 그 돈을 내게 건넵니다.
저는 그 아저씨에게
"아저씨, 고맙지만요 매일 저녁에 광화문에서 촛불 문화제가 열리니까 직접 오셔서..."
라고 말을 했는데,
그 아저씨는 내 말을 끊으면서
"난 촛불 집회 같은 데는 안가. 하지만 지율스님은 꼭 살렸으면 좋겠어."
이러면서 제게 그 구겨진 삼천원을 건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정중히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마침 내가 내릴 역에 지하철이 정차하고 있어서 내렸습니다.
지율스님의 절절한 호소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50대 아저씨의 마음이 이렇게 움직인 것처럼
노무현의 마음도 이렇게 움직이기를,
저는 오늘도 도롱뇽을 접으면서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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