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100일과 200일, 달라진 점
꼬뮨 현장에서 2010/07/15 13:42힘을 가진 놈들, 즉 지배계급은 참 치사하다.
먼저 돈으로 일을 해결하려 든다. 마치 세상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다 안되면 완력으로 일을 푼다. 어차피 완력 또한 재력으로 사는 것이기에 이것도 돈으로 해결하는 모양새이지만 이 단계에서는 모양이 좋아보이게 할 가식 따윈 찾지 않는다. 그저 싹쓸이 하는 것이다.
완력으로도 완전히 해결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질기게, 끈질기게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지배계급은 거짓과 날조와 회유와 협박을 총동원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력, 권력 등 힘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싸움은 어느덧 막장으로 접어든다.
두리반도 마찬가지 모양새다.
돈으로 세입자들을 내쫓으려고 하다가 그게 안되니 강제철거를 했고, 그래도 버티니 이제는 언론과 구청 그리고 한전 등을 동원해 거짓선전을 일삼고, 전기까지 끊어버리려고 한다.
애초부터 우리는 벼랑 끝에 서서 시작했다.
전기가 없어도, 수도가 없어도 나는 질기게 버티는 법을 알고 있다.
저들이 힘을 총동원한다면 나 역시 모든 힘을 총동원할 작정이다.
한 번의 강제철거에도 굴하지 않고 두리반에서 다시 시작한 농성이 200일이 넘었다.
저들은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들어오고 있다.
온갖 치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보안등을 끊어버려서 두리반 주변을 어둡게 만든다든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법에 호소하며, 용역깡패들을 보내 간을 떠보게 하고, 새벽에 찔끔찔끔 찔러본다든가, 두리반 뒤 한옥집 아리랑을 멋대로 쓰게 하는 식으로 우리들을 괴롭힌다.
두리반 100일 농성과 200일 농성 때 우리는 잔치를 했다.
서로 위로하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유채림 선생은 농성 100일 때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지만 솔직히 불안했었다고, 농성 200일이 되는 날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었는데 이제는 불안하지 않다고 술회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
나부터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일주일에 몇 번씩 두리반을 들르는 사람에서 어느새 두리반의 운동을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고립되고 파편화된 운동을 씨실과 날실로 얼기설기 엮어내어 치열한 저항의 근거지로 만들어내고, 그 근거지를 바탕으로 다른 저항의 근거지들과 수평적으로 연대하며 현실에서의 촘촘한 힘으로 전화하는 것.
나는 그런 그물을 만들면서 동시에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글을 쓰고 물건을 나르고 연락하고 소통하고 만들어내고 이동하고 요리하고 함께 울기도 하고 등을 토닥여주기도 하고 기뻐한다
희망은 이곳에 있다.
두리반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