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으로 저항을 하는 사람들
떠남과 돌아옴 2010/02/21 23:28오늘은 일요일이라 약간 더 두꺼운 신문을 사서 갠지즈강 가트에 앉아 읽고 있다.
한국에선 신문을 사서 읽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여기선 주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려면 아무래도 신문을 사서 읽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일요일에 신문이 발행되는지 궁금하다.
인도에선 일요일자 신문이 특집이 첨가되어서 더 두껍고 가격도 평일치 신문이 3루피인데 비해 일요일치 신문은 5루피로 약간 더 비싼 편이다.
사람들을 만나도 좋은데, 오늘처럼 한가한 날 일이 없으면 그저 편하게 앉아서 신문을 읽는 것도 좋다.
그런데 내가 집어든 신문엔 테러 이야기, 사람들이 죽는 이야기, 부정부패 스캔들과 복수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뿌네에서 폭탄테러를 저지른 집단의 실체에 관한 추측성 기사며, 달릿 계급의 10대 여성이 분신을 해서 자신의 억울함을 널리 알리려고 한 기사, 자기 지역이 자치주로 분리독립 되어야 한다며 분신을 한 젊은 대학생의 이야기, 복수를 하기 위해 어떤 유력 인사를 죽이려 한 이야기 등등이 내 속에 채워졌다.
아무리 죽음이 넘쳐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론지라는 신문의 1-2-3면이 모두 테러와 죽음과 자살과 폭력에 관련된 이야기들 뿐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약 열흘 전 천민 취급을 받는 최하계층인 달릿 계급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고, 그는 곧 지역 경찰서에 신고를 해 강간범을 붙잡아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를 해보겠다고 달릿 여성에게 말한다.
며칠 뒤 경찰은 무혐의로 사건 자체를 종결해버린다.
너무도 억울한 이 여성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가 달릿 계급이기 때문인지 또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아무도 그의 호소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당한 끔찍한 폭력과 억울함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분신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달릿 여성이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그 여성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한 많았던 생을 마감하고 만다.
신문에 나온 기사에서는 그 후에 내려진 조치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언급을 하고 있다.
달릿 여성의 분신 사망 사건으로 그 지역이 발칵 뒤집혔으며, 주정부에서는 해당 지역 경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어떤 연유로 강간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되었는지 밝혀 내겠다는 해명을 했다는 것이다.
분신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자신의 억울함을 알릴 통로조차 갖지 못한 사회에 나는 지금 와 있는 것이다.
신문 기사 몇 줄에 담을 수 없는 전율과 충격이 혈관을 타고 전해내려 온다.
카스트 제도가 가진 폐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했고, 네팔에서 만난 미누도 절망을 하면서 "네팔에도 아직 카스트 제도의 잔재가 남아 있어요. 정말 사람 미칠 노릇이에요" 라고 토로를 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존엄성이라는 것이나 보편적 인권이라는 개념은, 인도와 네팔에 잔존하며 일상생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카스트 제도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만약 그 여성이 천민 계급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역 경찰은 신속하게 나서서 범인을 잡기 위한 조치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신문에 또 다른 분신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인도에서는 요즘 어떤 지역이 자치권이 보장된 독립된 주로 승격을 시켜달라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그 지역 대학생들이 같은 요구를 벌이며 시위를 벌이던 중 한 명이 분신을 했다는 것이다.
바라나시를 흐르는 강가를 둘러보면 화장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죽은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신을 사람들이 매고 가트에 내려와 의식을 치른 뒤 화장을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가트에 앉아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보았었다.
죽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바로 하루 전까지 숨을 쉬던 육신이 불에 타는 모습도 생생하다.
그을리며 타들어가 조금씩 재가 되는 뼈와 살들, 그리고 그것이 타는 냄새.
나는 한국 사회에서 저항을 위해 분신을 했던 열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멀게는 1991년 5월에서 가깝게는 2007년 4월 한미 FTA를 반대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바로 2009년 내내 나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았던, 남일당 옥상 파란 망루 안에서 순식간에 치솟은 불길에 휩싸여 목숨을 잃은 사람들까지.
인도에서는 분신이라는 방법으로 저항을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생기는 것 같다.
나는 혹시 힌두교도들이 치르는 화장과 분신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화장을 하면서 인도인들은 항상 육신이 불타는 모습을 본다.
이것은 나 같은 사람에겐 충격적인 모습이지만, 인도인들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윤회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이곳 사람들은 저항을 위한 하나의 옵션, 물론 최후에 선택할 선택지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허세욱 열사의 죽음을 서양의 활동가들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서양문화권에서는 분신을 통한 저항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생소해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단식 투쟁 역시 마찬가지로 받아들이던데, 그들은 저항을 한다는 개인이 왜 자신의 육체에 스스로 고통을 가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저항의 대상에게 타격을 가해야지 왜 자신의 몸에 타격을 가하고 피해를 입히느냐고 되물었을 때 나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신문엔 이렇듯 분신과 죽음과 테러와 폭발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고, 그것을 읽는 나 역시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그 시간에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 참신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을텐데.
은영이 그랬다.
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고.
여기는 여행지이고,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 내일은 좀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자.
좀더 편하게 말이다.
거부당할 염려도, 두려움도 잠시 내려놓자.
나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이냐고 은영은 내게 물었다.
"나는 항상 자유로우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매순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힘이 솟는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다.
은영은 사랑이 충만할 때 힘이 나온다고 한다.
나는 고통과 슬픔과 연민과 분노가 나를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면서, 몇 년간 나를 지탱해주었던 '죽음'이라는 짐은 잠시만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바라나시에서 나는 다시 그 죽음에 대해 마주 대하게 된다.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