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사는 티벳 난민들
희망을 노래하라 2010/02/13 15:04네팔은 토요일이 휴일이다.
어제까지는 비가 오면서 날이 흐렸다가 오늘 휴일을 맞이해 햇살이 좋다보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들 빨래를 하고 있다.
걸어놓은 빨래들은 색깔이 제각각 화려하다.
사람들 옷이 빨강색, 녹색, 연두색, 노란색 등 원색 위주로 화려하다보니 빨래도 화려하다.
네팔에는 티벳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대부분은 중국의 침공이 있었던 1959년에 내려온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이후 1980년대까지 줄곧 감옥에 갇혀 있다가 석방이 되자마자 살기 위하여 삼엄한 중국의 국경수비대를 뚫고 히말라야를 넘어 내려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달라이 라마를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다.
여행객들은 도시에서 빌린 방한용 고급 등산장비를 입고 무거운 장비를 포터에게 맡긴 채 가이드에 의지해 안나 푸르나 트렉킹을 열흘 가까이 하기도 한다.
그런데 트렉킹 루트도 제대로 짜여 있지 않은 7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의 험준한 고개를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걸고 내려온 가족 이야기를 읽고는 깜짝 놀랬다.
그들은 노스페이스 같은 방한복은 커녕 거의 맨발로 영하의 추위와 싸우며 설산을 넘어 23일간을 티벳과 네팔 국경을 헤매다 겨우 카트만두 보우다나트 부근에 마련된 티벳 난민촌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또 20살이 갓 넘은 한 젊은 남자도 티벳의 독립을 염원, 선동하는 포스터를 라싸 시내에 붙이다 중국 공안에게 적발되어 징역을 몇 년 살았고, 석방이 되자 탈출을 결심하고 국경을 넘다가 다시 국경수비대에 걸려 고문과 함께 징역살이를 하는 모진 고초를 겪었으며, 마침내 네팔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분리주의'를 선동하는 전단지를 붙이고 배포했다고 징역을 몇 년씩 살아야 한다니 정말 끔찍했다.
나는 티벳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좀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포카라에는 티벳 사람들이 모여 사는 캠프가 네군데에 있는데, 한 곳은 이른바 '데비스 폴' 근처에 있는 곳으로 관광지처럼 조성되어 잘 알려진 곳이다.
조금 친해진 티벳 아저씨가 나보고 진짜 티벳을 보고 싶거든 포카라 지역에서는 최대 난민촌인 헴자(Hemja)로 가보라고 전한다.
티벳 사원과 학교 그리고 마을이 제법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포카라 북쪽 산길을 털털거리며 약 1시간 정도 달리니 헴자가 나온다.
마을 한 쪽 구석에 승려가 되기 위한 아이들이 공부하는 기숙학교가 서있다.
그 학교에도 마침 휴일을 맞아 아이들은 빨래를 하거나 축구를 하고 있고, 교실은 텅 비어 있다.
젊은 시절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교내 한 곳에 걸려 있고, 티벳의 독립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사천성 출신의 티벳 승려 두 분의 석방을 탄원하는 호소문이 붙어 있다.
티벳어와 네팔어로 각각 씌여 있고, 가끔은 나같은 외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로 설명이 붙어 있다.
분위기로만 보면 이곳은 마치 티벳의 어느 마을 같다.
설산 마차푸차레가 저멀리 보이고, 사람들은 수유차(대나무통에 차를 가득 넣고 야크 버터를 듬뿍 넣고 백번 이상 저어서 만든 차)를 마신다.
뭔가 숭고한 분위기.
늙은 티벳인 하나가 나를 불러 세운다.
직접 티벳 기념품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끔씩 찾아오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티벳 이야기를 들려주며 판매도 하는 분이다.
자신도 1959년에 내려온 뒤 쭉 헴자 마음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지배자들의 억압을 무슨 힘으로 싸워나가고 있는 것일까.
무슨 희망으로 버텨나가고 있는 것일까.
1959년 이전이라고 이들의 생활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체제든 풀뿌리들은 언제나 수탈과 억압을 버티며, 극복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티벳인들의 삶 속에 비폭력의 가치는 얼마나 뿌리내려 있는가.
궁금한 것이 많았다.
티벳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티벳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거의 대부분 네팔에서 태어나 네팔에서 살아온 이들의 눈에 나는 긴머리와 코걸이로 인해 남자도 여자도 아닌 희한한 존재로 비친다.
젊은 사람들은 나를 보고 수군거리고,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건다.
질문은 대부분 똑같다.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보러 왔느냐.
나는 티벳의 문화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한 나이든 여성이 "당신은 매우 운이 좋다. 티벳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은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는 말을 해주었다.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당당하고 꿋꿋하다.
나는 그냥 멀리서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바라보며 그 장엄함을 느끼는데, 이곳 사람들은 마음 속에 당당하고 꿋꿋하게 서있는 포탈라 궁을 다 그려놓고 살고 있는 것일까?
오후가 간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좀더 머물로 있고 싶지만,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다.
젊은이들과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요리를 잘해서 요리사가 되려는 친구와 한국 드라마와 방송을 아리랑Tv 방송을 통해 챙겨보고 있다는 또다른 친구.
저들은 모두 다시 저 가파른 설산 고개를 넘어 티벳 고원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삶에는 얼마나 만족할까.
누구나 아련한 추억을 찾아 돌아가고픈 마음의 고향을 묻어두고 있을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짐작해본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