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나의 화분 2009/07/26 17:12안녕.
당신에게 편지를 써보려고 해.
종이에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쉽게 손이 떨어지지 않아.
아예 작정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종이에 글을 쓰게 되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고, 또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을 하나를 시작했으면 그것을 끝내고, 또 다음 일을 시작해서 끝내고 그렇게 하고 싶어져.
왜냐하면 일을 하다가 중간에 끝을 내지 못하고 또 다른 일로 넘어가게 되면, 지금과 같은 상황처럼 여러 가지 일들이 계속 끝나지 않은채로 엉키고 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나중에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냥 이메일로 쓰기로 했어.
지금은 그냥그냥 참으면서 지내고 있어.
상도 3일 치르면 나중에 3일이 지나서 다 끝나고 나면 사람이 얼마나 지치니.
그런 장례를 벌써 몇 백일간 못치르고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 뭐랄까 커다란 눈덩이 같은 것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야.
이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도 하지 못하겠는 그런 느낌.
허우적대면서도 먼저 이것을 어떻게든 해치우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에도 손을 댈 수 없는 그런 느낌이야.
그래서 나를 용산에 빼앗긴 그런 심정 나도 이해하는데, 나도 어쩔수가 없어서, 미안하면서도 그냥 이렇게 끌려가고 있는거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나도 모르겠어.
당신의 지금 상황, 많은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알아.
내가 가까이서 도울 수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당신을 지지하고 있어.
마음만 받아주길 바래.
난 아직도 용산 미디어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어.
지금이 새벽 3시가 거의 다되었는데,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바깥에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야.
오늘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작가 모임'인가 하는 곳에서 용산에서 1박2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음악 공연도 있었고, 영화 상영도 있었고 그래서 내가 음향을 보고 모든 프로그램이 끝날때까지 있어야 했거든.
사실 그게 없었으면 이미 집에 가서 두유, 우쥬와 놀고 있었거나 아니면 집에서 자고 있었겠지.
비가 내려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어서 지금 여기 레아 1층에서 아침까지 기다리고 있어.
새벽이 되고 버스나 지하철이 다니는 시간이 되면 차를 타고 들어갈 생각이야.
택시를 타고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기다리기로 했어.
비가 내리면 일단 걱정이 많아.
집에도 비가 새고, 여기 레아도 비가 새거든.
그래서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고민이 되기도 해.
집에 있으면 집에서 비가 떨어지는 소리르 들으면서 있었겠는데, 지금은 레아에서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어.
오늘은 용산 현장에 사람들이 무척 많이 몰려왔어.
이게 말야,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아야 하잖아.
맨날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더많은 사람들이 용산현장으로 와야 한다고 말을 하잖아.
그런데 막상 이 공간에 사람들이 수십명 들어차 있으면 답답한거야.
오늘은 레아에 미술가들도 오고, 작가들도 오고, 학생들도 오고, 진보넷 블로거들 5주년 생일잔치 한다고 오고, 음악하는 사람들도 오고, 신부님들 수녀님들 카톨릭 신자들도 오고, 밤새는 사람들, 여기서 밤늦게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많아.
같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들, 같이 해야 할 프로그램들은 많은데 그런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왠지 쉽지가 않아.
사람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많아서 그런가봐.
특히 내가 레아 1층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내게 이것저것을 묻고, 또 이런 것들을 해달라고 하고 그러다보면 나중엔 거의 지쳐서 정신이 없어져.
오늘도 그랬어.
레아에 오자마자 피자매연대 일에, 행동하는 텃밭 돌보는 일에, 음향이랑 공연 관리하고 준비하고 사람들 연락하고 하는 일들에 신경을 쏟다 보니까 벌써 이렇게 늦어버렸어.
오늘도 용산 현장에서 12시간 이상을 보내고 있어.
매일 매일 용산에서 12시간 이상을 보내고 있는데, 일주일이면 그게 거의 80시간이 되거든.
아, 난 일주일에 40시간 노동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20시간 이하로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난 그 네 배를 노동하고 있어.
난 어떻게 된 것일까.
난 정말 누구 말대로 일중독일까.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일까.
사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체제가 유지되는 한은 난 이런 식으로 계속 보내게 될텐데 그러면 난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일을 하면서 보내게 될까?
모르겠어.
난 항상 쉬고 싶고, 놀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일주일에 80시간을 노동하고, 또 노동하지 않는 시간조차도 그 노동을 위해서 보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지금이 내 현실이야.
나에게 이 현실을 바꿀 힘이 있을까?
난 항상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해왔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기만 하면 일을 그만두고 언제든 놀 수 있다는 생각말야.
아마 어느 순간, 정말 내가 지쳤다고 생각이 들면 그만두거나 아니면 잠시 쉴 수도 있겠지.
그렇게 하고 싶어.
정말 지쳤다는 생각이 들면 잠시 쉬고 오고 싶어.
당신이 없으면 난 앞으로 10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정말 모르겟어.
정말 모르겠어.
버티든 견디든 지나가든 흘러가든 보내든 즐기든 싸우든 시간은 가겠지.
어떻게든 가긴 할텐데 그 과정에서 난 어떻게 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견뎌야 할까.
버텨야 할까.
흘려보내야 할까.
즐겨야 할까.
싸워야 할까.
정말 모르겠어.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있어.
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