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의 의미
나의 화분 2008/12/08 21:27적린이 괜찮은 논문이 있다면서 피자매 보고 읽어보라고 복사를 해주었다.
그것이 몇 달 전이었는데, 틈틈히 읽어보다가 내용이 맘에 들어 결국 한국어로 번역을 해버리고는 아예 피자매 겨울 세미나를 이걸로 해보기로 했다.
지은이 마를린 주크는 '말린 죽'이라고 표기해야 원래 발음에 가까울 것 같은데, 말린 죽이라면 너무 딱딱할 것 같아서 그냥 마를린 주크로 가기로 했다.
피자매연대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월경의 의미에 대해 항상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국에서 월경과 관련해 활동을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월경 페스티벌 기획단이라든가 또는 다른 여성주의자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캐런 후퍼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끼게 된다.
즉 월경을 축복하거나, 일상적이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그 경험을 즐기고, 최소한 고통스럽거나 불편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그런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그런데, 마를린 주크에 의하면 일부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월경을 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성시하는 약간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근대 이전의 사회나 또는 원시 단계의 부족사회에서 월경을 하는 여성들이 월경움막에 들어가 지내면서 어머니 대지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월경을 이렇게 보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데올로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월경이 가진 진화적 적응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힘들어진다는 것이 마를린 주크의 견해 같다.
월경을 신성시하는 한 쪽의 경향 반대편에는 월경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면서 그 의미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또 하나의 극단이 있다고 마를린 주크는 이야기한다.
이런 경향은, 예를 들어, 뉴 에이지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하곤 하는 이야기, 즉 '일정 기간 완벽한 채식 식생활을 하면서 몸을 잘 돌보는 여성은 아예 월경이 멈추기도 하는데, 이렇게 생활하면 몸과 피가 맑아지므로 월경혈도 버릴 필요가 없이 몸이 다시 흡수해서 사용하게 된다'는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은 월경을 자연스러운 몸의 현상이 아니라, 깨끗하지 못한 식생활(예를 들면 육식) 덕분에 몸이 약해지고 피는 더러워지므로 그것이 배출되는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이들, 또 하나의 극단에 위치한 사람들은 무월경을 여성들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이상적인 상태로 받아들인다.
마를린 주크의 논문은 이렇게 월경을 둘러싼 두 가지 극단적이고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해석을 경계하면서, 진화생물학 또는 다윈의학에 의거해 진화 상에 있어서 월경이 가진 적응의 의미에 대해 과학적 고찰을 한다.
많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남성 성기나, 여성의 가슴 등에 대해서는 수많은 고찰과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월경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하지 않았다는 마를린 주크의 지적은 타당하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돈이 되지 않을 뿐더러, 남성지배권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적 매력이 없는, 철저히 여성들만이 경험하는 월경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되어왔음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같다.
가부장제를 깨뜨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월경의 의미에 대해 더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를 해야 한다.
* 이 글은 마를린 주크의 책 ‘성선택(sexual selections)’에서 제10장을 세미나용으로 저자의 허락 없이 번역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월경의 의미 - 신성한 것 혹은 세포분열
마를린 주크(Marlene Zuk) 지음/ 피자매연대 번역
인간 또는 남성이라는 의미를 갖는 명사 ‘man’을 잘못된 총칭으로 사용해 큰웃음을 준 콜린 핀Colin Finn의 월경의 기능에 대한 1987년 논문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월경이라는 현상은 태초부터 남성(man)에겐 수수께끼였음이 틀림없다.” 9년이 흐른 뒤에 수수께끼라는 단어는 좀 발전되어 간다. 1996년에 출판된 핀의 논문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월경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과장해도 부족하며, 그것이 어떤 기능을 갖는가 하는 물음은 태초부터 남성을 괴롭혀왔다.” 물론 남성 또는 남성들은 월경에 대해 관심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월경을 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핀 역시 뒤에 가면 세 번째 문단에서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여성에게 (그리고 일부 영장류에게) 있어서 월경이라는 고유한 특징은 초기 남성에게는 그리 명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여성은 영원히 월경을 하고 있겠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면 남성이 호기심을 보여야 한다는 식이다.
이 장은 바로 이 수수께끼에 대한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즉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있어서 월경이 갖는 진화적 중요성과 그 의미 그리고 젠더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해 다룬다. 월경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초경에서부터 완경을 하기까지 사실상 거의 모든 여성들이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기간을 제외하면 월경을 한다. 월경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기 위해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다. 월경의 기본적 양식은 (월경주기는 다르겠지만) 모든 문화의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며, 어떤 여성이든, 다른 여성이 월경하는 것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없거나 일회용 생리대 광고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월경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경은 사회적으로 놀랍도록 풍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정치적 해석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또 다른 주제가 되기도 한다.
사회와 병원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고대와 근대의 많은 문화권에서 월경하는 여성들은 ‘불결하다’고 하며,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부터 어느 정도 고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이 가족들과 떨어진 채 월경움막으로 가서 자고 먹고 하기도 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월경중인 여성들은 식사준비(최소한 남성을 위한 식사라면)를 해서는 안 되며, 월경을 하는 여성의 존재가 사냥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금기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내가 등산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신화와도 연결이 된다. 그 신화란 월경중인 여성은 곰의 주의를 끈다는 것인데, 왜 곰이라는 동물이, 그것도 잡식성이며 애초에 인간은 먹이로 삼지 않는 곰이 몇 방울의 혈액과 세포 몇 조각에 그리도 큰 관심을 기울이는지, 설령 곰이 후각으로 그 냄새를 탐지할 수 있다고 해도, 내게는 커다란 의문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임야관리국에서는 이런 주장을 실제로 검사해보기까지 했는데(내가 보증 컨데, 이런 주장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꺼리다), 아무런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월경에 관련된 또 다른 금기로는 월경을 하지 않는 여성이 불을 붙이는데 쓰는 장작과 석탄을, 월경중인 여성이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이라든가 월경 중에는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 또는 죽은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 있다. 마지막의 금기는 아프리카 아이보리코스트의 벵족(Beng)에게서 나타나는데, 이는 망자의 영혼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시체와 접촉했을 경우 월경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푸아 뉴기니의 동부 고원지대에 사는 기미족(Gimi)에 따르면 월경중인 여성은 물건과 접촉을 할 경우 보통 파멸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런 물건은 망가지거나 고장이 나기 마련이고, 땅의 경우에는 월경중인 여성이 밟을 경우 황폐해지기 때문에 작물을 키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월경의 파괴적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꽤 강경하게 적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면서도 가장 살펴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여성이 매달 흘리는 월경혈이다. 그것과 접촉을 하게 되면 새 포도주는 금세 시큼해지고, 농작물은 수확할 수 없게 되고, 접가지를 붙여도 죽어버리며, 텃밭에 뿌려놓은 씨는 메말라버리고, 나무의 과일은 낙과하며, 거울의 밝은 면은 월경혈을 비추기만 해도 침침해지고, 강철의 모서리나 반짝이던 상아도 무뎌지며, 벌집의 벌들도 죽어버리고, 청동이나 철기도 즉시 녹슬어버리고 말며, 역겨운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진다.”
월경 기간에는 성적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도 널리 퍼져있다. 이는 주로 성교를 금지하는 것인데,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은 월경중일 때 임신이 가능하다고 믿기도 했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이런 식의 의식과 금기가 가진 의미를 설명하는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논쟁에 참여했고, 달의 상징성 및 피와 불의 관계 그리고 주술사나 무당 등에 대한 복합적 모델을 통해 설명하려하기도 했다.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바는 월경은 많은 문화권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에, ‘그래, 그거 문제긴 문제야’라는 식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기성 의학계에서 월경에 대해 보인 관심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7세기 초반에 저술을 했던 이시도루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월경혈은 여성에게는 불필요한 혈액이다... 이런 피에 닿게 되면 농작물은 발아하지 못하고, 포도주는 시큼해지고, 풀들은 죽어버리며, 나무는 열매를 잃고, 철은 녹이 슬어버리며, 구리는 검게 변한다. 만일 개가 조금이라도 월경혈을 먹게 되면 미쳐버린다. 철이나 어떤 용액에서도 녹지 않는 역청질의 풀도 이 피에 오염이 되면 스스로 녹아버린다.”
나는 도대체 개가 먹을 만큼의 충분한 월경혈을 어디서 구하는지도 궁금한데, 그것은 논외로 친다고 해도, 플리니우스와의 유사성은 분명하다. 물론 플리니우스는 역청질의 풀에 대해서는 무시해버린 것 같지만 말이다. 후대의 의사들 역시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미국산부인과협회 회장은 1900년에 음울한 어투로 이렇게 지적했다. “많은 어린 생명이 사춘기라는 암초를 만나 학대받고 영구적으로 장애를 갖는다. 만약 사춘기를 무사통과하고, 출산이라는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월경이라는 그물에 걸려 좌초하게 된다(에런라이크Ehrenreich와 잉글리쉬English가 지은 책 ‘For Her Own Good’ 110쪽에서 인용).”
기본적으로 의사들 역시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월경을 하나의 질병이나 결함으로 보았다. 이는 손상된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월경을 하는 여성에게는 고통과 위험이 수반되는 것이다. 초기 모든 저작들이 월경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월경에 대해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여성 신체 내부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길이라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을 경멸하는 의학계의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월경의 과정을 단순히 서술한 글들에서도 놀랄 만큼 부정적인 용어들이 사용됐는데, ‘수태가 실패한 것’ ‘흐느끼는 자궁’ 등을 들 수 있다. 1913년에 나온 의학교과서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강렬하고 끔찍하며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으로서, 조직은 너덜너덜하게 파괴되고, 분비선은 산산조각 나고, 혈관은 찢어지며, 혈구의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변하고, 혈액은 덩어리째 뭉치게 되어 외과수술을 하지 않고서 만족스럽게 아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비록 이런 견해는 시일이 지나면서 약간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월경의 이미지 하면 여전히 ‘중단’ ‘사망’ ‘손실’ 또는 ‘박탈’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캐럴 태브리스Carol Tavris는 자신의 저서 ‘여성에 대한 잘못된 측정’에서, 그리고 이 책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분석글인 ‘신체에서의 여성성’을 쓴 에밀리 마틴Emily Martin은, 부정적이지 않게 월경을 기술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주기적으로 위나 장의 내벽이 떨어져나오는 ‘위내벽탈각증’ 같은 월경과 비슷한 증상을 기술하는 용어들은 어감이 상당히 다르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 사용되는 단어들은 ‘성장’ ‘재생’ ‘재활’ 등이고, 이런 언어로 인해 비슷한 신체작용을 훨씬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신체의 땀배출 작용을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벌이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사람을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땀은 좀 불쾌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땀샘은 인간이 다양한 기후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잘 조율된 적응체계의 일부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발한작용에 대해 혐오를 나타내는 생리학 서적은 없다.
1999년에 출간된 ‘저주’라는 책에서 언론인 캐런 후퍼트Karen Houppert는 왜 현대 미국사회가 월경을 감추는데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지 궁금해 한다. 월경중인 여성들마저 그것을 감추려든다. 월경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생애 최대의 치욕이 되는 것처럼 마치 우리들은 극단적으로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는데, 그는 바로 이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일회용 생리대와 탐폰의 광고는 이 제품이 감쪽같이 비밀을 지켜준다고 강조하며, 흰옷을 입은 모델이 등장한다. 또한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은 여성이 탐폰을 사와 달라고 부탁을 하면 마치 하드코어 포르노를 본 것처럼 민망해할 것이다. 광고나 제품의 포장지에서 ‘월경’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우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도 자랑스러워할 만큼 완곡한 어법의 달인인 셈이다. 여성들은 피를 흘리거나 월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을 맞이할 뿐이고, 그래서 슈퍼마켓에 ‘여성용 위생용품’들이 진열된 곳에서 제품을 구매해 자신을 ‘지킨다.’ 후퍼트는 여름캠프에 온 사춘기 이전 소녀들과 인터뷰를 하며 월경에 대해 물었다. 소녀들은 ‘생리’ 또는 ‘월경혈’ 같은 단어들을 입 밖으로 크게 소리 내어 말하면서 약간 켕기는 듯한 쾌감을 경험했다. 이들은 상당수가 월경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느끼게 되기 시작한 것에 대한 지식을 갈망하고 있었다. 후퍼트의 책에는 월경박물관이라는 독특한 장소를 매우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월경박물관은 인터넷 사이트이기도 하고 실제 박물관이기도 한데, 미국 메릴랜드 주 뉴캐롤튼의 해리 핀리가 창조해냈다. 이 박물관은 1955년에 개발된 ‘위생팬티’ 같은 월경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것들과 월경에 대한 진실과 허구에 관한 기사들도 보관해두고 있다.
시대의 문제
어쩌면 이 문제는 미국의 과거사와 현재의 문화가 가진 이상한 문제일 수도 있다. 튀긴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나 십대 밴드가 이름을 희한하게 짓는 것이라든가 썰렁한 농담 같은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는 우리가 어떤 것도 사적으로 남겨두지 말고 공개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무좀치료제 광고가 잡지에 나왔는데 무좀이 걸린 발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나는 속이 메스꺼웠다. 또한 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장실 관련 농담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월경을 드러내놓고 토론하는 것이나 의학잡지에서 월경을 재생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변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꺼리인가?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비밀을 만들어내면서 병리학을 구성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차원에서 후퍼트는 월경이나 생리용품을 떳떳하게 말할 수 없어 하는 것 때문에 탐폰제조사들이 탐폰에 대한 논쟁이나 탐폰이 가진 잠재적 위험성을 더 쉽게 무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전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탐폰에 다이옥신이 들어있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위험한데도 말이다. 후퍼트의 주장에 따르면 “소비자는 샴푸에 무슨 성분이 들어있는지 쭉 읽어볼 수 있는데, 탐폰에는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읽어볼 수 없고, 탐폰은 여성의 몸에서 가장 흡수력이 좋은 신체부위에 몇 시간 동안이나 고정된다는 점에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월경이란 단어는 소비자들을 소비자 운동으로 이끄는데 있어서 자주 사용되거나 효과 있는 단어는 아니다.
보다 심층적 차원에서 보자면, 모든 여성들이 경험하는 것을 비밀스럽게 취급하는 것은 또 다른 효과가 있다. 만약 어떤 것을 문제라거나 정신적 상처만을 남기는 질 나쁜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그것을 감추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성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면 여성들은 마치 정신건강에 관한 브로버만Broverman의 실험에서처럼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정신적으로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거나 또는 여성적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는 있지만 정상이면서 동시에 여성적이 될 수는 없는 상태가 돼버리고 만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월경을 어떻게 설명해왔는가에 관한 논문을 보면 초기 자연사가들에게는 “월경혈이 정상적인 혈액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월경혈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면 여성들은 월경기 내내 매달 비정상적인 어떤 것을 배출하는 것이 되는가? 추측컨대 저자는 순환계를 도는 혈액과 월경혈을 구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지만, 단어의 사용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후퍼트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소녀가 또는 여성이 ‘이런 일이 내게 생겼어’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또는 한 사회가 ‘아니오. 그런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경험하는 현실이 이 세상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될 때 심리적으로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9쪽)
월경에 대한 이런 편향된 시각이 갖는 두 번째 문제는 영장류로서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위대한 신비라는 측면에서 월경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생리학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월경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지금의 형태가 선택되도록 이끈 중요한 영향력은 무엇이 있었을까?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그 자체로 적응의 산물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진행과정을 위한 자연선택의 부산물이었을까? 다른 동물들도 월경을 하는가? 그 과정에 있어서 변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들이 불쾌해하는 월경의 여러 변이체들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진화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
나는 극히 최근이 되기 전까지는 단 한 사람도 월경에 대한 궁극적인 (즉 진화적인 관점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고 생각한다. 의학계를 살펴보면 음경의 크기나 정자의 길이, 유방의 비대칭성 그리고 (혹시나 당신이 내가 성적인 것에만 집착한다고 생각할지 몰라 덧붙이는데) 소화기 계통의 여러 부위들의 길이의 차이나 소금의 체내 흡수에 관련된 혈압의 변화 등이 가진 진화적 적응의 의미에 관한 논문들은 넘쳐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월경은 여성들이 그저 불편하게 여기며 같이 살아야할 불행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자신들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많이 쏟아내는지’ 떠벌릴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한 과학 논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월경은 ‘자궁에 수정란이 착상되는, 보다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여성이 치러야 할 형벌과도 같은 것(강조는 저자)’이라는 데 일반적인 의견의 접근이 이뤄져 있다. 형벌에 담긴 자연선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연구할 필요를 누가 느끼겠는가?
프로펫(예언자)이 나타나다
그러는 가운데, 1993년 과학자인 마지 프로펫Margie Prophet이 ‘월경 - 정액을 통해 전염되는 병원균을 막기 위한 방어체계’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인간과 일부 영장류 동물은 월경혈의 양이 매우 많은데, 이는 박테리아 및 성교를 통해 전염될 수 있는 미생물과 싸워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그 역시 월경이 진화적으로 볼 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설명된 적이 없었던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명했다. 그는 자궁내막과 월경혈의 성분이 적응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적응적 설계라고 이름붙인 개념에 대해 자세한 분석을 시도했다. 월경혈의 성분 가운데는 면역학적으로 매우 활동적인 세포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추론에 따르면 철분이 풍부한 혈액과 기타 물질들이 매달 손실되고 그에 따라 체내에서 매 주기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면 이는 매우 큰 비용이 드는 것이기에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면 자연선택에 의해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그리고서 저자는 포유류 가운데 월경혈이 보다 많다고 볼 수 있는 종들에 대해 비교분석을 한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성적 파트너가 많은 암컷일수록 정액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병원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가 더 크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현재 알려져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종들 사이에서 어떤 종류의 월경혈이 발견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현재 많은 영장류가 월경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모든 원숭이류나 유인원류가 월경을 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뾰족뒤쥐는 월경을 한다) 결국, 이 논문이 고찰하고 있는 것은, 만약 월경이 감염을 일으키는 요인을 체내에서 제거하기 위함이라면 피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약을 먹거나 또는 다른 처방을 하는 것은 아마도 많은 경우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언론의 많은 조명을 받았는데, 그 자체로는 고무적이라는 것이 내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금기로 치부되며 불쾌한 과정이었던 체내 작용이 실은 가치 있는 것이고 아주 효용이 좋다는 이 주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이 논문의 주장을 혐오한 사람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사람들이 부수적 효과의 하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효능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 무모한 생각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월경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분리된 과정이라고 봐야 하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월경을 착상의 과정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수정과 착상이 그 자체로는 단순히 임신의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이는 희한한 해석이다. 또한 어떤 생리적인 현상도 하나의 독립된 과정으로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런 비평에 암시되어 있다. 이는 패배주의적 태도이며, 의학계의 엄청난 연구들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더욱이, 수정란의 착상을 월경과 한 덩어리로 취급하게 되면 왜 인간이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봐도 풍부한 양의 월경혈을 배출하는지, 그리고 왜 영장류와 뾰족뒤쥐들만 월경혈이 바깥으로 뚜렷하게 드러나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못하게 된다. 다른 과학자는 프로펫이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생각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월경에 대한 부정적 금기에 저항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과도하게 주장했다고 그를 대놓고 비난했다. 기성 과학계와 의학계에서 제기된 다른 비판들 가운데는 이보다 더욱 사려 깊은 것들도 있다. 이제부터 이런 것들에 대해 다뤄보자.
저주가 아니라면 필시 축복이겠지
월경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한 많은 이들은 후퍼트가 ‘우리의 월경을 축복하자’라고 부른 바 있었던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월경의 노래’, ‘붉은 꽃’, ‘피의 축복’, ‘월경이라는 용대(龍代)의 마술과 미스터리’ 등의 제목이 붙어있는 책들을 보면 월경은 여성성이 영적인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전 장에서 나와 토론을 나누었던 에코페미니트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위 책들의 저자들은 사회에서 월경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편향에 대해 대응을 하면서 월경이라는 과정을 전적으로 축복했다. 라라 오웬Lara Owen은 ‘그의 피는 황금색’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성이 배출하는 혈액에 대한 남성들의 선망 때문에 월경을 둘러싼 많은 부정적인 금기들이 증폭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8쪽).” 그는 여가장제 사회에서 월경중인 여성들은 권력을 가진 여신으로 대접받던 시절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싶어 한다. 다른 저자들은 초경을 맞이한 소녀들을 위한 파티라든가 월경중인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엠티 같은 모임에서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 토론하고, 제단을 만든다든가 또는 예쁘게 장식한 ‘월경관’을 쓰고 땅(이끼로 충분히 덮여있는 노지)에 그대로 월경을 하는 행사들을 지지한다. 또 다른 글에서는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월경움막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월경움막은 여성들은 따돌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고 다시 원기를 회복해 새로운 무늬의 직물을 짤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로서, 산업사회 이전의 건강온천탕 같은 것이었다. 월경의 기능에 대한 프로펫의 이론은, 당신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모임의 참석자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왜냐하면 월경은 여성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연적 작용이라는 생각이 프로펫의 이론으로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억압’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오웬은 여성들이 삽입식 일회용 생리대인 탐폰이 아니라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해서 자신의 월경혈을 경험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특히 면생리대를 사용한 뒤 담겨둬 피가 빠진 물을 텃밭의 식물에 뿌려주면 더욱 좋다), 진통제나 외음부 방취제 등을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월경을 통해 나타나는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현상들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자고 촉구했던 것이다. 오웬은 자신의 삶에서 월경주기와 분명한 조화를 추구했다. “어쩌면 내 삶과 내 의식에서 월경은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생리가 주말에 시작되면 나는 운전을 멈추고 집에 머무르면서 텃밭에서 휴식을 취했다.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어느 날 햇볕에 누워있었고, 생리가 터지는 것을 느꼈다. 매우 흥미로운 순간이었는데, 나는 누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더욱더 기분이 좋아졌다(62쪽).”
이에 대한 내 반응이 무엇이냐면, 우리 모두 그렇지 않냐는 것이다. 자신의 월경혈로 텃밭에 물을 주고 싶다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 말을 믿고 대담무쌍하게 실천에 옮긴 한 친구는 엄청난 양의 토마토를 수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소녀들이 초경을 매력적인 것이라고, 또는 최소한 끔찍한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이게끔 하는 의견에 찬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껏 주장해왔던 것처럼 이에 대한 나의 반대입장은 마찬가지 지점에 있다. 즉 결국 과학을 이데올로기를 위한 도구로 보게 한다는 점이다. 당신이 젠더 전쟁에서 어떤 쪽을 지지하든 간에 과학을 하나의 무기로 여기게 만들 뿐이다.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긍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차단되어 왔기 때문에 프로펫의 견해는 반드시 옳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월경은 항상 무시되어온 주제라는 점을 프로펫이 싫어하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반드시 틀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둔한 주장이다. 프로펫의 견해를 지지하든 또는 보다 정확한 이론이 제출되든 간에 두 가지 주장 모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무시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입장을 받아들이면 처음 제기된 질문보다 더욱 흥미로운 질문은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결과를 불러올 질문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없게 만들고 만다.
대안적 이론 한 가지와 실체가 폭로된 신화들
언론의 호들갑과 비평뿐만 아니라 프로펫의 이론은 또 다른 과학자인 미시간 대학의 베벌리 스트라스만Beverly Strassman에게도 영감을 주어, 월경이라는 주제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프로펫의 논문이 게재된 지 3년 후 스트라스만은 같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는데, 제목은 ‘자궁 내벽 주기의 진화와 월경’이었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프로펫의 예측과 가설을 검증해보았다. 프로펫이 월경이라는 주제를 분석할 때 보여준 통찰을 인정하는 것으로 논문을 시작한 저자는 프로펫이 제시한 몇 가지 주장들에 대해 반박을 해나갔다.
스트라스만은 프로펫이 아마도 잘못된 퍼즐을 맞추는데 집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만약 월경이 많은 비용이 든다면, 애초에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가 아니라, 월경을 하지 않을 때, 즉 자궁내벽이 언제든 수정란이 착상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가 되어 있도록 유지할 때의 비용은 얼마일까 하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자궁의 내벽은 졸린 고양이가 언제든 와서 누울 수 있는 베개처럼 수정란을 기다리는 상태로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관다발이 풍부하며, 원기 왕성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생화학적 절차가 뒤따르게 된다. 이런 복잡한 절차 때문에 월경의 한 주기에서 각각의 시기마다 물질대사율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스트라스만은 생리적으로 활발한 작용을 하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정해보았다. 난포 단계에서 난자의 배란이 이뤄질 때 물질대사율은 자궁내벽이 정점에 이리는 황체형성 단계보다 평균 7퍼센트가 낮았다. 여성이 매일 섭취해야 하는 음식물의 양으로 변환해본다면,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자궁내벽이 떨어져나감으로써 여성은 네 번의 월경주기 동안 약 6일치에 해당하는 영양분을 손실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스트라스만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월경주기는 재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을 경제적으로 사용하면서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이것은 월경이 우리 몸에 좋다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피를 흘리지 않는 것, 즉 자궁내벽을 그대로 보존한채 영구적으로 항상 착상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최소한 에너지 지출의 측면에서 볼 때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스트라스만과 다른 이들은 또한 월경혈의 감염균 저항 효과의 의학적 증거에 대해 검증해보았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월경혈의 여러 측면을 놓고 찬양을 하거나 비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자체로는 박테리아를 제거하기보다는 배양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한 종에서 일반적인 짝이나 성적 파트너의 숫자와 월경이 겉으로 드러나는 가능성 사이에는 어떤 바람직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많은 포유류들은 수정란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궁내벽을 몸에서 다시 흡수한다. 하지만 인간과 일부 종에서는 자궁내벽이 너무나 풍부해서 재흡수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자궁내벽의 ⅔는 방출되지 않고 몸으로 다시 흡수되긴 하지만 말이다. 결국 월경을 통해 손실되는 철분은 최소량일 것이고, 여성이 적절한 식단을 유지한다면 비교적 쉽게 섭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스트라스만은 잘못된 사실로 밝혀질 수도 있는 또 다른 월경에 관한 상식을 문제삼았다. 그것은 바로 월경공시성이라고 하는 것인데, 서로 가까운 곳에서 사는 여성들의 월경이 같은 주기로 모아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저명한 심리학자 마사 맥클린톡Martha McClintock이 처음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가 대학 4학년 때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던 방짝들을 연구하면서였다. 그는 우등상을 받은 이 논문을 1971년 세계유수의 과학지인 네이쳐Nature 지에 게재했다. 이 개념은 엄청난 호소력이 있었으며, 자매들 또는 여성집단이 감정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생리학적으로도 유대를 이뤄간다는 견해는 과학자들과 비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통념이 되었다. 몇몇 진화생물학자들은 산업사회 이전 시기의 사회에서 월경공시성이 왜 적응의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런 사회에서 한 부족이나 집단의 여성들은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공시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 맥클린톡의 연구와 이후 그의 발견을 입증해온 몇몇 논문들은 통계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한 확률만으로 여성의 주기가 일치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바로잡지 못한 실수도 있었다. (두 여성이 우연히 월경주기가 같은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50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이 중 두 사람의 생일이 같을 확률은 무려 97퍼센트나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더욱이, 이 연구들에서 피실험자들은 자연적인 임신 패턴을 보이는 인구집단 가운데 선정되지 않았으며, 또한 피임약에 의한 월경주기 변화의 영향도 연구에 반영되지 않았다.
스트라스만은 서아프리카 말리의 농경부족인 도곤(Dogon)족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이들의 재생산 주기를 현지인 정보제공자와 2년간 백 명이 넘는 현지 여성들의 소변 샘플을 수집해 얻은 자료를 통해 추적했다. 그는 월경공시성에 대한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으며, 나아가 월경을 축복해온 사람들과 다른 이들이 오랫동안 널리 알려온 견해 즉 월경주기는 달의 주기에 좌우된다는 견해도 아무런 증거가 없음을 발견했다. 도곤족에게는 전기불빛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달이 생체리듬에 끼치는 영향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트라스만은 이를 지지하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는 생체시계와 24시간 주기리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처럼 달이 여성에게 끼친다는 효과가 기껏해야 의아해 보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월경공시성이 어떤 경우에는 존재하고, 다른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지의 여부는 아직 배심원들의 평결이 내려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요점은 하나의 견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잘 맞는다고 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점이다.
월경과 갈등
월경의 문화적 기호 가운데 스트라스만이 검증해본 또 하나가 바로 월경움막이다. 산업사회 이전 사회 가운데 12퍼센트에서 월경중인 여성들이 따로 마련된 지역이나 구조물에서 격리되어 생활한다. 도곤족에서는 여성들이 월경 기간에 5일 밤을 움막에서 지내며, 마을의 거리를 활보하거나 남편에게 요리를 만들어줄 수 없다. 성교 역시 금지된다. 도곤족 사회에는 여성이 월경 직후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스트라스만은 월경움막이 일상의 노동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도피처라든가 지구와 다시 하나가 되는 장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월경움막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재생산 상태를 감시해볼 수 있는 장소로서, 여성들이 임신이 가능한 기간이 언제인지 남성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간통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성교를 한 것으로 의심이 될 때 실제 월경주기를 통해 임신이 한 달 늦게 이뤄졌는지 또는 한 달 먼저 이뤄져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로부터 얻은 소변 샘플에서 채취한 호르몬 수치 분석을 통해 스트라스만은 부족 여성들이 거의 대부분 월경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더욱이 월경움막은 휴양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 현지인 정보제공자들은 여성들이 움막에 가길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휴양소로서의 월경움막설이 사실이 아님은 부족 여성들이 가는 여부는 남편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여성의 소망과는 관련이 없다는 발견에 의해서도 드러났다. 목석같은 것에도 영혼이 있다는 물활론을 믿는 남편의 부인들은 월경움막에 가지만 물활론을 믿지 않는 남편의 부인들은 움막에 가지 않는다. 이는 여성의 재생산 상태가 드러나면 남성들의 이해가 충족되지만, 여성들의 이해는 임신이 가능하다는 표시를 지움으로써 충족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회적으로 또한 초자연적으로 제재를 당할 수도 있다는 위협 때문에 도곤족 여성들은 이와 같은 금기를 깨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활론 신앙을 가진 남편과 결혼한 여성이 월경 기간에 움막에 가지 않으면 양 한 마리를 벌금으로 내야 하는데, 남성 연장자들이 이 양을 제물로 바치고 먹어치운다. 월경움막에서의 생활은 알려진 것처럼 감금된 삶이며 지루하다. 또한 여성들은 월경을 하는 중에도 들과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재생산을 둘러싸고 남성과 여성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일은 내가 반복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흔하게 발생한다. 남성이 아이를 돌볼 때 여성은 더 잘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은 자신과 유전적으로 연결된 아이를 돌볼 때만 이득을 본다. 물론 배란은 월경 직후 발생하지 않고, 월경주기의 중간쯤에 이뤄진다. 그러므로 여성의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을 때에 대해 도곤족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월경이 언제인가 안다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월경에 대한 금기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인류학자와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배란이 언제 일어나는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많은 이론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진화론적으로 보자면 가장 임신 가능성이 높은 시기인 배란의 은둔적인 성질은 아마도 도곤족이 - 그리고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 최후의 미소를 짓는 방식일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월경움막은 도곤족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월경에 대한 금기 역시 도곤족 말고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스트라스만이 그들의 문화를 분석한 결과 내가 보기에는 보다 생산적인 탐구가 가능해진다. 월경의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채 오로지 생리학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거나 또는 월경이라는 과정을 그 생물학적 의미로부터 분리시킨 채 월경과 관련된 사회적 금기 때문에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와 그 기능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실제로 이런 효과나 나타날 수 있지만, 인간의 행동양식이 진화하는 맥락은 이것이 아니다)은 생산적인 탐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탈?
만약 월경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얼마나 자주 월경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보기보단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근대 서구사회에서는 여성이 초경 무렵이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으며, 피임을 하지 않은 때보다 가족의 수가 일반적으로 적게 유지되는데, 그런 사회에서 여성은 일생동안 훨씬 많은 월경을 한다. 다른 사회에서는 임신과 수유기의 무월경증 (즉 여성이 수유를 하는 동안 배란과 월경이 중단되는 것) 때문에 월경을 하는 횟수가 크게 줄어들기도 하지만 서구의 여성들은 자주 임신을 하지 않으며, 출산 후 몇 개월이 지나면 수유를 중단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월경의 횟수를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험적인 방법으로 측정한 경우는 놀랍게도 거의 없었다. 즉 실제 여성이 월경을 경험하는 횟수를 그저 그대로 세는 방법 말이다. 어느 미국 의사가 자신의 월경을 이런 방식으로 잰 적이 있는데, 3명의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월경을 잠시 중단한 것을 합쳐 평생 도합 355번 월경을 했다고 한다. 그는 32년간 생식이 가능했는데, 보통 전형적인 미국 여성의 생식가능 연수가 38년인 것을 보면 이 숫자는 실제보다 적게 어림잡은 것 같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월경 횟수가 450번에 이르는데, 이는 많은 편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355번이나 450번 모두 피임을 하지 않는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 비하면 매우 높은 횟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언제나 인내심이 강한 도곤족 여성들이 실험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었다. 스트라스만의 계산에 따르면 그들의 일생 동안 평균 월경 횟수는 128회였는데, 이는 산업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⅓ 또는 ¼에 해당하는 수치다.
다른 요인들 예를 들면 유년기의 영양공급이라든가 질병의 발병 등이 갱년기가 언제 올지에 영향을 끼치므로 이와 같은 월경 횟수가 나온 것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월경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서양 여성들처럼 그렇게 자주 월경을 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 이전 사회에 사는 여성들보다 산업사회에 사는 여성들에게서 생식기 질환과 생식기 암이 보다 높은 수치로 발견된다는 증거들이 계속 축적되고 있다. 산업 사회 이전 단계의 여성들이 생식기 질환이 적은 것은 임신과 수유기간에 분비되는 특정 호르몬 수치가 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는 암의 예방책으로서 임신을 옹호한다는 말이 아니다. 피임약이라든가 또는 여성이 살아가면서 월경 횟수를 줄어들게 만드는 기타 여러 가지 작용들로 인해서 부인과 질병이 줄어드는 부수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성이 하게끔 되어 있는 것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기보다는 우리가 진짜로 그것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들이 의학적 권고를 할 수 있도록 적절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분명히 아직은 이르다. 하지만 진화가 여성의 몸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고찰해보는 것은 의학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다 폭넓은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다윈의학에 관한 저작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내게 있어서 월경을 삶의 일부로 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월경을 고작 성가신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무리 나빠도 병리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는 월경을 통해 매달 정신적 자매애를 느낀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것보다는 이편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내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월경이 뭔가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비밀로 받아들여지고 특히 남성들 앞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면전에 들이대는, 그런 여성들의 반항을 좋아한다. 나중에 책이 되어 출간된 후퍼트의 그 논문은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 지에 게재되었었는데, 그 표지에는 후퍼트의 책표지에 실린 것과 같은 사진이 실려 있다. 후퍼트의 표현에 따르면 그 사진은 “스킨로션이나 향수나 헬스클럽의 여러 도발적인 광고를 연상시킨다. 여성의 섹시한 상반신이 측면에서 보이고, 부드러운 허벅지와 빵빵한 엉덩이가 매혹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여성의 허벅지 사이로 훔쳐보는 가운데 탐폰의 손잡이끈이 시선에 들어온다(8쪽).”
이 사진에 대한 반응은 신랄했다. 하드코어 포르노를 보여준 것 같았다. 솜뭉치에 불과한 탐폰이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잡지 편집자에게 항의편지가 쇄도했고, 뜨거운 논란이 터져 나왔으며, 역겹다며 분노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게는 우리 사회가 신체작용에 대해 약간 비이성적인 모습을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전 빅토리아 시대에는 피아노를 받치는 기둥을 감히 ‘다리(leg)’라고 표현하지 못하고 주저했던 것처럼, 앞으로 십 년 또는 이십 년이 흐른 뒤 우리가 보인 공포가 우스운 것이 되리라고 나는 소망한다. 하지만 월경의 의미에 대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한 가지 해석을 취사선택하고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월경의 과정을 알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월경의 생리적, 진화적 의미를 모두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