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속도 그리고 폭력에 대하여
평화가 무엇이냐 2008/11/26 23:58자전거와 속도 그리고 폭력에 대하여
조약골
내가 자전거를 적극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은 한 10년 전부터인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중교통은 자정이 넘으면 끊어지는데, 택시를 타고 귀가할 경제적 여건은 되지 않으니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기 위해선 자전거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할 때 요금이 할인되지만, 그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엔 잠깐 버스에서 내려서 일을 볼 때도 승차요금을 또 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사실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내가 자전거를 내 삶의 가까운 동반자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원할 때마다 갈 수 있다는 ‘자립성’이 자전거를 타는 가장 커다란 이유라고 생각한다.
자립성이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자신의 신체가 만들어낸 동력을 통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자동차를 타고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지만, 그것은 어쨌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전거와 함께 내 삶을 재구성하면서부터 1년에 300일 이상 안장에 몸을 올리고 다닌다. 몸이 아프거나, 또는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내가 일하는 곳으로 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에 내가 달리는 거리는 약 30km 정도이니, 매년 약 9천km 정도를 자전거로 이동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래저래 나는 지금까지 약 십만km 정도를 자전거로 이동한 셈이다. 부산과 서울(또는 서울과 목포)을 자전거로 움직일 때의 거리를 약 500km로 계산한다면, 지금까지 약 200번 정도 왕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은 보통 걸을 때 속도가 시속 5km다. 자전거는 평상시에 15-20km로 다니고, ‘자출’을 할 때 등 좀 빨리 갈 필요가 있을 때는 평균 25km 정도로 이동한다. 걷는 것보다 자전거가 약 5배 정도 빠른 것이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할 때 보통 시속 100km가 나온다면 보통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약 5배 정도 빠르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과연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그렇게 빠른 것일까? 서울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때 나는 보통 버스나 지하철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 택시와 견주어 볼 때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내 자전거가 빨라서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도로에 차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차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자주 하는 이유가 어찌 보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있으면 당연히 자전거보다 빨라야 하고 도로에서는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자전거보다 빠르지도 않고 도로는 항상 차들로 북적인다. 개념과 현실의 괴리인 것이다. 빨리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는데, 지하철을 타고 온 사람보다 더 늦게 도착했을 경우 느끼는 허탈감 같은 것이 대도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한 구석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차선 하나에서 자동차와 엇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내 자전거 뒤에 대고 미친 듯 경적을 울리는 사람의 심성을, 양심에 따라 운전면허를 거부하며 살고 있는 나는 그런 식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보면 버스와 택시 등 자동차들이 얼마나 난폭하게 운전을 하는지 생생하게 체험한다. 갑자기 차가 우회전을 하기 위해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경우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일어난다. 욕설을 뱉으면서 도로에 왜 자전거를 끌고 나왔냐고 소리치는 운전자들도 많다. 그들은 가정에서도 그렇게 폭력적일까? 아닐 것이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사람들은 긴장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차에 오르는 순간 인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속도보다 최소 열 배 이상 빠르게 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 ‘비정상성’을 우리의 신체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일단 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각종 방어체계를 가동시킬 것이다. 충돌이라도 일어날 경우 목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난 그것이 인간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자칫하다간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자신이 서있어야 하는 것만큼 인간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도 없다. 게다가 그런 상황이 일상이 되면 인간은 폭력에 둔감해지게 된다. 폭력에 둔감해지지 않고 항상 긴장을 하면서 일상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자연히 적응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동차 문명이란 실은 인간이 건설한 가장 폭력적인 문명이다. 최소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것은 넌더리나는 진실이다. 일인 당 보유한 자동차 수가 2대나 되고, 자동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된 미국 같은 나라가 왜 가장 폭력적인가 하는 물음에 내가 내린 답이 이것이다. 총기류가 많다거나, 선주민들을 말살시키고 자연을 정복하면서 세운 나라라거나 하는 등의 다른 원인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동차가 일상이 되면 그만큼 폭력에 둔감해진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하다.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면 나 이외의 사물은 의미가 없어진다. 내 주변에서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온갖 생명들도 시속 50km 이상으로 이동할 때는 나에게서 완전히 차단되어버리고 만다. 걸을 때 우리는 자연 속에 있음을 느낀다. 때로는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에 부딪히기도 하고,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을 손으로 줍기도 한다. 바닥을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에도 신경이 쓰인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 그 감도가 약간 줄어든다. 나무나 고양이나 사람 등은 눈에 보이지만 쪼그만 지렁이가 꿈틀대는 모습은 보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며 속도가 40km가 넘어가면 이제 나와 세상은 서서히 단절되기 시작한다. 휙휙 스쳐가는 것들에 신경을 쓸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당장 그 이동속도에서 살아남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에 나는 스스로를 차단시켜 버린다.
그런 차단은 자동차에 타서 문을 닫는 순간 시작된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 길거리에 동물이 나타나도 무단횡단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은 원래 동물이 사는 보금자리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가 사는 세상인데도, 자동차에 들어간 사람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물질적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든 만물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사는 생태계라는 따위의 개념은 조용히 사라져야만 비로소 시속 50km 이상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닫힌 나의 자신을 여는 것이고,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지구가 건강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나 역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매순간 인식하는 것이다. 폭력이란 별 게 아니다. 나 이외의 다른 존재가 가진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나와 동등하며, 나름의 가치를 지닌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폭력은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 자전거를 타는 것은 평화로운 세상으로 천천히 가는 훌륭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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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속도는 폭력인가
돕님의 [자전거와 속도 그리고 폭력에 대하여 ] 에 관련된 글. 자동차도 시속 30키로로 간다면?속도가 분명 사람을 불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폭력적으로 만드는 건가? 돕이 말한 자립성에 공감하고, 그 효율성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다.자전거를 타고 도로주행을 해본 후,(물론 텐덤 타고 그랬지만)자전거가 속도가 좀더 늦을 뿐,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일단 자전거 잘 타는 분들은 그만한 속도를 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