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하다는 것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8/01/20 02:00'래디컬'하다는 것을 한국어로 번역해야 할 때마다 고민이 많았다.
거의 대부분 형용사로 쓰일 때는 '급진적'으로 번역을 하는 것 같다.
급진적 여성주의라거나 급진적 에콜로지라거나 하는 단어들이 그래서 쓰인다.
그리고 이 단어는 가끔 명사로도 쓰이는데, 즉 래디컬한 사람을 뜻할 때도 그냥 '래디컬'이라고 한다.
이럴 경우엔 '급진주의자'라는 번역어를 쓰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radical'이라는 단어에는 '발본적인' 그리고 '급진적인'이라는 뜻이 동시에 들어 있다.
즉 어떤 문제에 대해 뿌리까지 파고들기 때문에 비로소 급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뜻이 오롯하게 담긴 번역어가 없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수학에서 '라디칼'이라고 하면 근호(根號). 근수(根數)라고 번역하고, 화학에서는 기(基)라고 번역하며, 언어학에서는 라디칼을 어간(語幹)이라고 번역해서 쓴다.
물론 진보적 지향을 나타낼 때의 그 래디컬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그 뜻을 저런 식으로 살려보려고 한 것 같다.
반면 진보적 지향을 나타낼 때의 래디컬은 한국어에서 급진적이라고만 번역이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냥 수박겉핥기식이 아니라 '완전하고, 철저하고, 격렬하게 파고들어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제대로, 모두 나타낼 수 있는 번역어는 없을까?
중국어에서 radical을 어떻게 번역하는가 찾아보았다. 하나의 단어로 번역을 하지 않고, 뜻에 따라 完全的(완전한), 徹底的(철저한), 激進的(격진적) 등으로 각각 나눠쓰고 있었다.
명사일 경우에도 激進分子(격진분자)라고 한다고 했다.
여기서 철저하다는 것은 '밑바닥까지 뚫는다'는 뜻이고, 격진적이라는 것은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고민끝에, 나는 형용사 래디컬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진본적(進本的)이라고 쓰기로 했다.
물론 -적은 우리말에 잘 맞지 않으니 가능하면 빼고 쓸 생각이다.
'진본적'이라는 것은 뿌리부터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소망한다). 즉 뿌리까지 철저하게 되돌아보며 앞길로 간다는 말이다.
또한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의 뿌리를 든든하게 지킨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를 들면 래디컬 페미니즘을 '진본여성주의'로 부를 수 있겠고, 래디컬 에콜로지를 '진본생태주의'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명사일 경우엔 진본인(進本人) 등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지금 한국에서 '진보적'이라는 말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노무현 같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갖다 쓰면서 거의 퇴색해버렸다.
또한 기존의 진보진영이라는 사람들 가운데,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그들의 구체적인 이름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그런 점에서 진보진영은 이제 스스로를 새롭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진보라는 것에서 자신을 새롭게 구별하고자 하는 진보는 래디컬한 진보일테고, 그렇다면 진보에서 한 발 더 나간다는 뜻에서 '진본'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진보 대신 이제부터 진본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