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 故 윤장호 씨 추모 광화문 촛불집회에 갔다.
날씨가 추웠다.
끝나고 보리언니와 고철을 만나서 밥도 먹고 인사동에 가서 차도 마시고,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보리언니와 고철은 천성산 살리기 운동을 하던 2005년 1, 2월의 추운 겨울을 바로 그 광화문 길바닥에서 매일매일 같이 보낸 사이다.
추운 날씨에 여전히 우리들은 같은 공간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불현듯, 이런 생활(살을 에는 듯한 추위, 광화문 그리고 촛불)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란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막걸리를 먹고, 나는 채식으로 주문한 순두부 찌게에 밥 두 공기를 먹고 함께 어느 인사동 찻집에 갔다.
그 찻집에서 알바하는 친구가, 날 보더니 '어디에서 활동하세요? FTA 반대 집회 다녀오셨어요?' 하고 관심있게 물어보았다.
내 가방에 FTA 반대와 평택 관련 스티커와 선전물이 붙어 있던 것을 유심히 본 모양이다.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며 친근하게 물어보는 그 알바 친구에게 나는 대추리에서 살고 있으며, 노래를 하고, 한미 FTA를 막기 위한 행동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쭈욱 읊었다.
얼마 전에는 직접 레이블을 차려서 음반도 냈고, 이래저래 했더니, 자기도 대추리에 한 두번 가봤다면서 내용을 소상하게는 아니지만 대충은 알고 있다고 반색을 했다.
그는 우리들의 활동을 너무나 지지한다면서,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오는 표정을 지으며 '평화가 무엇이냐' 음반을 한 장 샀다.
기분이 참, 좋았다.
역시 평택의 힘이랄까 그런 것이 장난이 아니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하면서 싸운 것이 다 평화의 밑거름이 되는 법이구나 느낀다.
지율스님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백일 넘게 단식을 하며 이 무감각한 사회에 울리고자 했던 경종을 사람들은 지금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외치고자 했던 그 울림이, 70살이 넘은 대추리, 도두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절규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절실한 호소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그리고 기억은 차츰 옅어져 가는 법이지만, 그렇게 남아 있던 생명평화의 간절함은 또다시 되살아나 우리의 뇌리에 굳게 박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