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에서의 풍성한 수확

꼬뮨 현장에서 2006/10/10 20:59
가을이란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도시에서 뿌리를 뽑힌 채 생애 대부분을 보내왔던 나는 가을이 와도 '도대체 무슨 수확?' 이러면서 보냈었다. 내가 본 가을의 결실과 수확이란 길거리 은행나무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후두둑 떨어지는 냄새 구린 은행들과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그것을 줍는 나이 든 사람들뿐이었다. 대추리에서 본 가을은 확실히 수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기쁜 것인지 알게 해준다. 몇날몇일 사람들은 함께 힘을 모아 벼를 수확하고, 집집마다 80kg씩 나눠 갖는다. 20kg 포대로 네 포대가 집마다 배달이 된다. 난 한 포대 나르기도 힘겨워 하는데, 한꺼번에 세 포대씩 나르고도 끄떡 않는 장사들도 많다. 솔부엉이가 사는 숲에는 커다란 밤나무와 도토리나무도 있어서 사람들은 그 아래에 떨어진 밤송이와 도토리를 줍는다. 바닥에 떨어진 밤과 도토리를 다 주웠으면 그 다음에는 아직 나무에 붙어 있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 밤송이들을 떨어뜨려야 한다. 밤나무를 손으로 흔들어보기도 하는데, 그 나무가 워낙 크고 굵다보니 손으로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민들은 무거운 바위를 들어 밤송이 밑둥을 향해 던진다. 바위를 맞은 밤나무는 밤송이를 투두둑 떨어뜨리고야 만다. 4반뜸에 있다가 집으로 가던 날 보고 이태헌 반장님이 이리 와보라고 한다. 나보고 그 커다란 바위를 들어서 밤나무에 던져넣으란다. 나는 온힘을 다해 그 바위를 들어보려고 하지만 무릎까지도 들어올리지 못하고 내려놓고야 만다. 젊은 놈이 그게 뭐냐고 핀잔을 주길레 다시 도전해 보았으나 이번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작업반장님은 나보고 도대체 나이가 몇이냐고 묻는다. orz 그러더니 그 집채만한 바위를 번쩍 들어서 밤나무 밑둥에 여지없이 맞히고야 만다. 조그맣고 귀여운 밤송이들이 떨어진다. 대추나무에도 대추들이 많이 열렸다. 이것도 따지 않고 내버려두면 벌레가 먹고 썩어버리기 때문에 대부분 따낸다. 대추는 그냥 날것으로 씹어먹어도 향긋하고 좋은데, 가까이서 보면 쬐그만 사과처럼 생겼다. 긴 막대로 대추나무에 알알이 달려 있는 대추들을 툭툭 건드리면 그것들이 '오르르' 떨어져내린다. 바구니로 한가득 수확을 한 뒤 주민들과 나눠먹으면 된다. 대추리에는 여기저기 감나무도 많다. 내가 사는 불판집 뒤뜰에도 감나무가 몇 그루 있고, 거기에 매달린 감도 부지기수다. 키가 낮은 감나무들이 제법 있어서 까치발을 하고 손으로 따기에 어려움이 없다. 달짝지근한 감은 특히 김치찌게 같은 것은 먹은 후 디저트로 제격이다. 감을 잘 모르던 에릭은 감과 토마토를 헷갈려 하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진 감에는 호랑나비들이 몰려와 내려앉아 식사를 한다. 저들도 달콤한 감 안살의 맛을 아는 모양이다. 벼와 밤, 도토리, 대추, 감, 은행 이것 말고도 풍성한 야채들이 대추리 밭에서 제각기 익어간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렇게 색색깔로 느껴본 적이 없다. 대추리가 벼만 많이 나와서 대추리가 아니로구나. 내년에도 이 나무들과 식물들이 계속 자라나기를. 분위기에 맞춰 나도 풍성한 수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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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0 20:59 2006/10/1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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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avi 2006/10/10 22:43 Modify/Delete Reply

    4반뜸에는 감나무가 많아요, 그리고 대추맛이 사과 맛이랑 비슷하다는 것도 이번해에야 알았지 뭐야,
    곧 들소리에서도 배추수확을 하고.. 돕은 어떤 수확을?^^

  2. 넝쿨 2006/10/11 13:15 Modify/Delete Reply

    오로로는 나만의 언어인데-ㅋㅋㅋㅋ
    그래서 이름이 오로로가 될뻔도 했지=ㅅ=ㅋㅋㅋ

  3. outwhale 2006/10/12 22:54 Modify/Delete Reply

    돕은 채집을...ㅎㅎ

  4. 2006/10/13 01:11 Modify/Delete Reply

    들소리가 나름 수확(또는 채집?)이라면 수확이랄까.

  5. 전진 2006/10/15 21:04 Modify/Delete Reply

    ㅎㅎㅎ 이태헌아저씨..
    돕님이 애쓰셨네 ㅋㅋㅋ
    우리밭(?)도 수확할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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