얹은머리를 잘라볼까나의 화분 2006/08/29 14:12머리를 짤라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내 머리는 마치 상투를 틀어 올리듯 말아 올린 모양을 하고 있다.
얹은머리다.
언뜻 보면 가체를 올린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긴 머리를 안 자른지 몇 년이 지났고, 끝이 많이 갈라진 상태다.
머리 끝이 갈라지고 끊어지는 것이 샴푸를 치거나 하는 등 제대로 관리를 해주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그냥 놔두면 원래 이렇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리 편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맹물로만 머리를 감으니까 머리카락들이 뭉치면서 엉키거나 빠진다.
냄새가 나거나 가렵거나 한 것은 아닌데, 그냥 풀어놓고 다니기엔 좀 거시기하다.
게다가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머리를 왜 그렇게 이상하게 하고 다니냐고.
자르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하지는 않으면서 뭔가 재미난 구경거리 대하듯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내 외모는 그리 특이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특히 중, 고등학생들)은 날 볼 때 마치 동물원에 살던 어떤 짐승이 도시로 뛰쳐나온 양 바라보기 일쑤다.
그런 쑥덕거림에 나는 완전히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요즘 내가 하고 다니는 머리모양을 보면서 스모선수 같다느니, 도인 같다느니, 뒷머리가 절벽이라느니 하면서, 마치 논쟁적인 글에 댓글이 우수수 달리듯 한 마디씩 덧붙이곤 한다.
그게 좀 피곤하다.
그래서 그냥 가위로 싹둑 잘라버릴 생각이다.
얹은머리를 하는 것이 더운 여름에는 제일 편하다.
머리를 말아서 얹어놓으면 목도 덮지 않고, 머리가 풀리지도 않는다.
비녀 꽂는 법은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뒤에서 누가 내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불편한데 이렇게 얹은머리를 하면 별 느낌도 없고, 그저 편하다.
샤워를 할 때도 따로 머리를 만져주지 않아도 이대로 좋다.
웃옷을 입거나 벗을 때도 머리모양에 변화가 생기지 않아서 더욱 좋다.
그저 이 머리가 난 제일 편하다.
다만 대추리 마을을 돌아다닐 때 목인사를 하기가 좀 불편하다.
그러니까 고개를 숙일 때 위에 얹어놓은 머리뭉치가 앞으로 훽 기울어지면서 내 시야를 가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얹은머리를 하고 인사를 할 때면 한 손을 들어서 머리를 잡고 인사를 하곤 한다.
나는 보통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좀더 치켜 들면서 말로 인사를 하곤 했는데, 마을 분들에게도 그렇게 인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마을을 돌아다녀야 할 일이 있으면 나는 이 얹은머리를 풀어서 꽁지가 등 아래로 내려오는 일반적인 모양으로 묶고 다닌다.
나는 왜 옛날 조선시대에는 높은 사람들이 이렇게 얹은머리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빳빳하게 들고 다니기 위해서다.
마을 사람들이 나보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걷는다고 뭐라고들 하는데, 실은 가체를 얹듯 머리를 얹고 다니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꽂꽂하게 펴고 다니게 된다.
허리를 숙이면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머리가 앞으로 떨어지려고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은 그래서 얹은머리를 하면서 다시 한번 일상적인 권력관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난 권위적으로 보이지는 않는가.
사람들이 쑥덕거리며 한 마디씩 하는 것으로 보아 21세기 사람들은 얹은머리를 높은 신분의 상징쯤으로 여기는 버릇을 완전히 지워버린 모양이다.
날씨도 점점 서늘해지고 있고, 나도 머리를 내려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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