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러그드의 매력나의 화분 2006/04/30 01:23오랜만에 토요일다운 토요일을 맞이한 것 같았다.
왠지 여유로웠다.
난 월요일이나 화요일이나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별 차이가 없다.
항상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놀기 때문에 요일이 바뀐다는 것은 그저 하루가 간다는 것과 같을 뿐이다.
아, 차이가 있긴 하다.
주말에는 집회가 많다.
나에게 주말은 보통 집회나 시위에 나가는 날 정도로 인식되어져 있다.
오늘은 달랐다.
금요일에 자전거를 타고 수원에 가면서 대추리가 다시 위험해지고 있다는 긴급 메시지를 받았다.
바로 대추리로 내려갈까 하다가 상황을 보니 당장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돌아왔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길게 돌아서 왔다.
그래서 오랜만에 한 100km 정도 장거리 자전거를 타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자동차 가득한 서울 도로들만 헤집고 다니다가 숲속으로 들어가니 기분이 새로웠다.
오늘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다음주면 다시 황새울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전에 여유를 부려보고 싶었던 것일까?
한강을 따라 달리며 어제와 오늘 총 200km 정도를 달렸다.
해가 기울며 CGA 사무실에 가서 새만금 운동을 같이 해온 갯살림 친구들을 만났다.
은식이형도 오랜만에 올라오고, 상용이도 오고, 보리언니도 오고, 고철도 오고, 수진도 오고 반가운 얼굴들이 참 많았다.
이들과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지만 오늘은 또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1주년 기념 파티가 열리는 날이고, 거기서 노래를 하기로 해서 일찍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자 운동을 함께 해온 많은 반가운 얼굴들이 1주년 파티에 있었다.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고 하면서 문득 '나도 참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구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 마붑이 나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준 방글라데시식 채식볶음밥과 국수와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또 맛이 독특하고 새로운 반찬을 마음껏 먹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붕 떠오른다.
기타를 들고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몇몇 친구들이 생음악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전기에 연결되어 스피커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직접 몸으로 부르는 소리와 통기타 소리를 듣고 싶어했다.
나도 실은 그런 소리가 좋아서 길거리에서,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앰프에 연결하지 않으면 크게 들리지 않지만 그렇게 오손도손 모인 한 두 명이 내겐 더 소중했다.
내 노래를 좋아하는 세 명 앞에서 두 시간 동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제꼈다.
노래를 부르고, 곡 설명을 하고, 즉흥연주를 하고,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다가 다시 내 노래들을 부르면서 밤이 깊어갔다.
전기에 연결되지 않은 소리가 내는 울림에 다들 빠져들었다.
그게 언플러그드의 매력일텐데, 진짜 언플러그드는 마이크 같은 전기선을 꽂은 무대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불러야 그 감칠맛이 살아난다.
20곡이 넘는 노래들을 부르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빵빵한 드럼과 베이스와 그밖의 각종 전자악기 반주에 내 목소리를 묻혀온 것은 아닌가 반성해보았다.
기타와 내 목소리 만으로는 뭔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그 부족분을 메우려 나는 샘플을 쓰고, 더 많은 컴퓨터 악기들을 채워넣으려 했던 것 같다.
부족한 실력을 감추려고 일부러 두껍게 화장을 하는 꼴 같았다.
부족한 부분은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일부러 채우려고 하지 말라.
허전한 대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영혼에 생긴 상처도 가끔은 치유될 때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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