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증후군나의 화분 2006/04/16 00:51이야 신난다.
화면이 정말 맑고 깨끗하게 보인다.
방금 17인치 모니터 한 대를 업어왔다.
이게 아주 잘 나온다.
화면도 밝고, 깨끗하고, 또렷하다.
집에서 쓰던 모니터가 망가졌었다.
전부터 그런 현상이 있었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화면이 어두워지는가 하면 감전이라도 된 듯 막 화면이 떨리기도 해서 도저히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애프터 서비스를 받으려고 전화를 하고 모니터의 증상을 설명했더니, 기사님 왈
"그거 고치려면 한 4-5만원 들겠어요. 차라리 새 모니터를 한 대 사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가뜩이나 돈이 없는 마당에 새 모니터를 사야하나 이죽이며, 인터넷을 둘러보았다.
17인치 CRT 모니터는 중고로 5만원 가량이고, 새거는 10만원 가량이다.
만약에 내 눈을 생각해서 LCD 모니터를 사려고 하면 17인치로는 20만원 또는 그 이상을 줘야 한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중고 17인치를 살까 아니면 새걸 살까.
그런데 기왕 살 바에는 돈을 좀더 주고 LCD를 사는 것이 내 눈을 위해서도 더 좋지 않을까.
어차피 그래픽 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은 CRT 모니터가 필요가 없고, 그 구식 모니터는 크기만 엄청 크고, 무게도 무겁고,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오래 쓰면 눈도 아프고 그런데 아예 차제에 돈을 주고 LCD 모니터를 사버릴까 고민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에 있던, 평소에는 잘 보지도 않던 LCD 모니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제는 다산인권센터에 갔는데, 거기에도 넓고 시원한 LCD 모니터들이 3개나 있었다.
하지만 지름신이 강림할 틈도 없이, 내겐 그런 모니터를 살 돈이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파고들었다.
이제 내게 남은 대안은 별로 없었다.
요즘은 중고 17인치 모니터들이 남아 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 작동되는 CRT 모니터를 내팽겨치고 다들 LCD를 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눈만 크게 뜨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CRT 모니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미 FTA 반대 집회에 갔다가 저녁에 오랜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를 만나고, 늦은 밤 곤을 만나 수다를 떨며 맛있는 차 한 잔을 얻어 먹은 다음 집으로 오는 길에 길 밖에 내놓은 이 17인치 CRT 모니터를 발견했다.
완전평면은 아니지만 그래도 쓰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곤은 '혹시 무겁게 들고 갔다가 고장난 모니터면 어떻게 하느냐, 버리는데 돈이 더 든다'고 우려했지만, 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성한 CRT 모니터를 버리고, LCD 모니터로 바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난 이 업어온 모니터를 보며 글을 쓰고 있다.
17인치 완전평면 모니터에 적응이 되어서 인지 지금 이 친구는 약간 눈이 아프다.
하지만 적응이 되면 곧 괜찮아질 것이다.
좋다.
핸드폰을 평균 1년 반만에 한 번씩 바꾼다는 한국인들의 징글맞은 '업그레이드 증후군' 덕을 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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