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정태춘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6/03/30 23:45지금도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정태춘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그가 음반 사전 검열제도를 없애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던 모습을 먼 발치서 지켜 보면서 '예술가는 저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작년 8월부터 10월까지 박은옥과 정태춘은 광화문에서 황새울을 지키기 위해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평화, 그 먼 길을 가다'는 제목으로 거리 공연을 했었다.
나는 정태춘과 박은옥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의 노래는 확신과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노래들은 평화로웠고, 굳센 힘이 느껴졌었다.
그때 9월 어느날이었던 것 같은데, 광화문 길거리 공연에서 노래를 하고 중간중간에 이야기를 하면서 정태춘은 자신을 '반자본주의자'라고 불렀다.
당당하게 그는 스스로 반자본주의자라고 수백명의 관객들 앞에서 또렷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가수는 거의 없는데.
노래만큼이나 그가 좋아졌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정태춘은 아마도 많은 시련과 고뇌를 겪었고, 투쟁을 했었으리라.
말하지 않아도 그의 태도에서 나는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2006년 3월 29일 나는 광화문에서 정태춘을 다시 한번 보았다.
어제는 광화문에서 영화노동자들이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조그만 촛불집회를 열고 있었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시간은 저녁 7시 30분 무렵이었다.
서울 길바닥평화행동이 있어서 기타를 매고 자전거를 타고 거기 가던 나는 길바닥에 촛불을 들고 서있던 최민식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영화노동자들 그리고 박은옥과 정태춘의 모습을 보았다.
멈춰섰다.
집회는 막 시작되고 있었고, 사회자는 확성기를 정태춘에게 넘겼다.
그날은 박래군과 조백기가 황새울을 지키다 구속되어 보름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석방된 날이다.
나는 오후 6시 무렵 석방 소식을 듣고 바로 여기저기 알리고, 피자매연대에 짧게 석방 환영 성명을 쓰고, 바로 길바닥으로 나갔던 참이었다.
석방 소식의 감격과 흥분이 채 가시지 않던 상황이었다.
정태춘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감격에 겨워 방금 전달된 조백기와 박래군의 석방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도두2리가 고향인 정태춘이 바로 자신의 고향들녘을 지키다 목이 졸린 채 폭력적으로 연행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정태춘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평택투쟁에 대해서, 문화운동에 대해서, 그리고 FTA에 대해서 발언을 했다.
모두가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가 참 가깝게 느껴졌다.
일종의 유대감이었다.
참, 신기했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박래군과 조백기의 석방 소식을, 평택의 투쟁을, 문화주권의 중요성을 그리고 민중들의 저항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깊이 몰입되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지칭했다.
'아나키스트인 내가 보기에...'
반가웠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고, 그가 누구보다 열심히 이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구속도 두려워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다가가 말이라도 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언젠가는 다시 볼테니 말이다.
나는 교보문고 앞으로 가 오랜만에 다시 시작된 서울 길바닥평화행동을 하고, 조백기와 박래군 석방환영회 장소로 갔다.
전날 밤 내내 박래군, 조백기가 석방되는 꿈을 꾼 터였다.
호프집 문을 열고 마침내 박래군이 들어설 때, 조백기가 들어설 때 참 행복했다.
밝게 웃는 모습이 좋았고, 그들과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좋았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참으로 정겨워서 좋았다.
그날은 퍽 행복한 하루였다. ta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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