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곳을 되찾자, 스쿼팅!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6/03/02 22:40이글은 제가 2000년 12월에 쓴 글이에요. 원래 컬티즌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가 살 곳을 되찾자, squatting !
노숙자들은 주로 역이나 터미널 또는 지하도 등 바람을 막을 수 있고, 비교적 따뜻한 곳에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다. 정부 측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은 여간 골치 아픈 존재들이 아니다. 영양 및 위생 상태가 엉망인 이들에게서 각종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으며,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또한 모든 구성원이 최저 수준 이상으로 살아가는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 각국 정부가 선전해 마지않는 통치 목표라고 할 때 이들 부랑자들의 존재 자체는 치정자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소위 공무를 담당한다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들 노숙자들을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거나 사회와 격리된 특수 교육 시설에 수용하여 강제 노역을 시키곤 했다. 한국 정부도 이와는 크게 다르지 않아 일찌기 이들 부랑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삼청교육대로 보낸 적이 있다. 물론 최근 들어서 한국 정부는 군대에 버금가는 각종 규율을 지켜야 하는 구호시설 등을 만들어 노숙자들이 얼어죽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많은 노숙자들은 '통제를 받기 싫다'는 지극히 실존적인 이유를 들어 그곳에 수용되는 것을 거부한 채 길바닥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재화가 쌓여갈수록 이것은 소수에게 집중되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에서 낙오되고 궁핍한 하층계급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더욱이 물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많은 도시들의 경우 집세마저 턱없이 높아 이들 하층계급이 거리에 내몰리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하층민의 생활은 어디나 비슷하지만 이들 서양의 도시거주 최하층민과 한국의 최하층민이 다른 한가지 점은 스퀏팅(squatting)에 있다. 스퀏팅이란 빈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하여 사용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로서 서양의 대도시에서는 거의 매일 각종 스퀏팅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각종 뉴스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스퀏팅이 이뤄지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물론 빈 건물 또는 버려진 건물이다. 이 빈 건물은 어떤 것들인가. 불이 난 뒤 사용이 힘들어진 건물, 지어진 지 너무 오래되어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 건축이 중단된 건물, 재건축을 위해 헐리기 전까지 잠시 비워진 건물, 무자비한 건축으로 임대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건물 등이 주로 스퀏팅의 대상이 되는 건물들이다. 또한 폭력과 마약 등으로 얼룩져 주위 환경이 나쁜 동네에 있는 건물도 어느날 갑자기 스쿼터들의 차지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건물이 토종 스쿼터들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버려진 건물은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인구밀도가 높고 숨을 곳이 별로 없는 도시에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훌륭한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최근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브래드 피트는 전기가 끊기고 물이 차오르는 허름한 버려진 건물에 사는데 이런 공간은 에드워드 노튼이 사는 최신 빌라 즉 각종 현란한 디자인의 비싼 가구가 진열되어 있는 곳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밖에도 [정글 피버]에 보면 어느 버려진 건물에서 떼지어 마약을 흡입하는 마약 중독 정키들의 충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뉴 잭 시티]에서는 아예 마약 제조 공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듯 버려진 건물 또는 빈 건물을 불법으로 차지하고서 가까스로 부랑자의 신세를 면한 빈민, 하층민들은 사회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따가운 눈총을 받기 일쑤다. 그리고 소위 소유권 보호라는 미명 하에 경찰을 앞세운 공권력은 이들 무단 점유자들을 다시 무자비하게 거리로 내몬다. 하지만 서양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스쿼터들은 경찰의 제지를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점거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빈 공간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사는 가난한 스쿼터들에게만 모든 잘못을 전가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1998년 4월 영국 전역에서는 80만 4천 개의 버려진 건물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만 명이 채 되지 않는 홈리스들이 이들 빈 집에 들어가 지친 몸을 뉘게 하는 것을 막는 것은 법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인도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을 듯하다.
이렇게 버려진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홈리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스쿼팅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즉 소유권 이전 등 복잡한 서류 절차를 밟지 않고도 즉시 건물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정으로 필요하며 사용을 하는 자가 그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사상은 서양을 비롯해 '耕者有田 工者有機' 등에서 나타나듯 동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 이해되어왔다. 스쿼팅은 바로 절박하게 건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 건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치열하고도 너무나 인간적인 열망에서 비롯된 행위인 것이다. 즉 불필요하게 지어진 건물은 건축업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그냥 방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있도록 용도가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 쫓겨난 사람들이 갈 곳이라는 결국 빈 건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아나키스트들을 비롯한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스쿼팅을 지지하는 여러 활동을 펴기도 한다. 스쿼팅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알려주고, 스쿼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Homes Not Jails'를 비롯한 각종 조직을 만들어 법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스쿼터들을 지원하고 있다. 보통 빈 건물들은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기 마련이다. 이에 스쿼터들은 서로 빈 건물을 판별하는 방법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실제로 빈 건물 리스트를 지지운동가들과 함께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기도 한다.
이들은 무단 점유를 시작하기 전에 그 건물이 빈 건물이라는 점을 확인해둘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당부한다. 최소 2개월에서 3개월 이상 비어 있어야 스쿼팅을 해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이 찾아올 경우에 대비에 여러 가지 수칙을 제시해놓은 곳도 있다. 이런 정보에 따르면 경찰에게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 것과 자신은 도둑이 아니며 갈 곳이 없어 임시로 거처하는 스쿼터임을 당당히 밝히라고 되어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문을 부수고 침투했다고 말하면 안 되며 문이 열려 있어서 그냥 걸어 들어왔으며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그냥 살고 있노라고 대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스쿼팅을 한 후 그 주소로 자신의 이름을 수신인으로 한 편지를 보낸 후 이것을 각종 증거물로 활용하라는 팁도 성실히 제시하는 사이트도 있다. 물론 이러한 수칙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스쿼터들을 위한 지지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아직 건물의 소유권에 대한 관념이 비교적 철저한 한국과 같은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놀랄만한 일이다. 런던에만 알려진 스쿼터 구호 센터가 5개에 이른다.
법적으로 소유권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무단으로 점유하는 스쿼팅은 사이버 세계에서도 '사이버스쿼팅'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즉 유명 도메인 네임을 선점하려는 사이버스쿼터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주로 대기업의 이름과 기억하기 쉬운 단어들을 미리 등록해두고서 나중에 되파는 수법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챙기기도 하는 이들은 최근에는 한국말 도메인 등록이 시작됨에 따라 이를 미리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절박한 처지에 놓인 무숙자, 부랑자들이 생존의 차원에서 벌이는 스쿼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이버스쿼팅은 사이버 세계의 재산(property)을 미리 점거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스쿼팅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 마크'에 대한 각국의 규정이 달라 이 사이버스쿼팅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많은 골치아픈 문제점들이 있다고 한다.
스쿼팅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 곳을 찾아들어간 것으로서 단순히 법을 수호하기 위해 이들의 절박한 행동을 제지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 안락하고 편안한 도시생활의 이면에는 이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스쿼터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1. 성공적인 스쿼팅을 위하여! Squatting 101
스쿼팅을 시작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실제적인 정보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아나키스트가 운영하는 사이트로서 스쿼팅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다른 스쿼터들 및 스쿼팅 운동가들과의 접촉이 성공적인 스쿼팅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2. 영국 런던에 있는 스쿼팅 구호 센터 ASS
경찰에 잡혀간 스쿼터들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스쿼팅 구호 센터로서 여러 귀중한 조언들과 실제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영국에서 스쿼팅 운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는 단체 중 하나다. 특히 스쿼터들이 모르는 각종 법적 사항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3. 보스턴에 있는 Homes Not Jails, 감옥이 아니라 거주할 집을 달라!
민권운동을 전개하는 유명한 단체로서 특히 전세계의 스쿼팅 관련 소식들이 모아져 있으며, 각 도시에서 스쿼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생생히 알려준다. 많은 정보들이 있으나 1999년 이후 업데이트가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이전까지는 각종 캠페인과 시위 등을 통해 스쿼팅을 지원하는 활동을 펴오던 곳.
4. 독일 스쿼팅의 중심지 Squat.net
독일은 유럽에서도 스쿼팅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는 국가 중 하나다. 많은 양의 정보가 독일어로 되어 있지만 영어로 되어 있는 정보도 있다. 최근에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이트로서 각종 소식과 뉴스를 발빠르게 전달하면서 전세계 활동가들과 교류를 진행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