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소리들나의 화분 2005/09/24 02:07
요며칠 유난히 비명소리를 많이 들었다.
다행인 건 사람의 비명소리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는 버섯을 좋아한다.
자주 먹는 버섯으로는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표고버섯을 난 제일 좋아한다.
우선 그 구수하고 그윽한 향기가 좋다.
향기를 맡기 위해 요리할 때 나는 보통 생표고버섯을 쓴다.
말린 표고는 국에 넣을 때나 쓰는 편이다.
먼저 생표고를 구워먹기 위해 프라이팬에 불을 켜고 기름을 얇게 두른다.
알맞게 불이 올랐을 즈음 미리 꼭지의 약간 딱딱한 부분을 다듬어놓은 생표고들을 등이 아래로 가게 해서 그대로 팬 위에 얹는다.
이렇게 센불에서 그대로 굽는 것이다.
이것을 '볶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쩐지 나는 굽는 것 같다.
하여간 간장을 약간만 뿌려 간을 하고 다시 표고를 뒤집어 꼭지들을 익힌다.
그저께 무렵도 이렇게 하려고 있을 즈음이었다.
치이익~ 하는 강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표고버섯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였다.
생표고들이 뜨겁다고 화상을 입을 것 같다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어쩌면 생표고에 있는 수분이 뜨거운 불과 만나 기화되면서 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표고버섯의 비명소리로 들렸다는 거다.
나는 괴로웠다.
표고의 비명에 마음이 아파서--이기도 했지만--라기 보다는 이제 표고버섯도 먹지 못하면 대체 난 무엇을 먹고 견딘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표고의 비명에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돼, 굳은 결심을 한다.
채식을 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그것을 삼가기 시작하면 대체 무엇을 먹을 수 있냐는 말이다.
사실 이런 질문은 내가 채식을 시작한 2003년 무렵에 자주 들었던 말이다.
즉 생명을 존중해서 채식을 한다면 죽어가는 식물의 고통은 외면한 채 어떻게 당근을, 양파를, 오이를, 상추를 씹어먹을 수 있냐는 것이다.
동물의 생명은 중요하면서 식물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냐는 식의 반박을 걸어보기 위한 반박 말이다.
이런 반박에 새삼 내가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채식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이런 반박은 그저 채식이 못마땅해서 말꼬리 잡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새 느끼게 될테니까 말이다.
물론 나름대로 준비한 논리적인 대응도 있지만, 오늘은 그만.
그나저나 버섯의 비명을 앞으로도 계속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버섯 말고도 컴퓨터와 자전거들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9월 24일 반전공동행동이 열리는데, 이 컴퓨터와 자전거들도 공동행동에 돌입하자고 의견을 모으기라도 했는지 요 며칠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는 '파업'에 돌입한 것 같다.
어제부터 피자매연대 컴퓨터는 비명을 지르고는 갑자기 인터넷 접속을 거부해버렸다.
이 때문에 오늘 하루를 꼬박 보내면서 고쳐보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나와 컴퓨터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래서 도대체 이 녀석이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문제인지, 왜 파업을 하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최대한 자상하게 그리고 꼼꼼하고 성실하게 이곳저곳을 확인해보지만 나의 한계를 넘어서버린다.
피자매연대 홈페이지도 말썽이다.
자유게시판이 어제부터인가 갑자기 접속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겨우 해결방안을 알아냈지만 PHP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내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마치 초등학생에게 대학교 철학 문제를 풀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난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자상하게 설명해놓은 사이트를 찾아 그대로 해보려고 했지만 이것도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연락해 고치긴 했지만 역시 그 게시판의 비명소리가 귀에서 맴돌아 밤에는 편히 잠을 자지도 못했다.
새로 윈도 XP를 깐 부모님 컴퓨터도 말썽을 부린다.
이것은 반전집회가 있는 토요일, 공개워크샵이 있는 일요일이 지나고 시간이 좀 나면 직접 해결을 해야 할 것 같다.
그 때까지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그놈의 비명소리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것 같다.
가람의 자전거도 말썽을 부려 오늘은 아예 바퀴를 완전히 분해해서 타이어를 벗겨내고 튜브도 떼어 내고 림테잎도 벗겨낸 다음에 바퀴살이 붙는 바퀴테 부분을 사포로 하나하나 갈아버렸다.
바퀴살과 바퀴테가 만나는 부분에 끝처리를 말끔하게 하지 못해서인지 그 울퉁불퉁한 부분 때문에 빵꾸가 자꾸 나는 것이었다.
내 자전거도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비비가 말썽을 또 부리기 시작해서, 오늘은 새로운 자전거를 사버리고 말았다.
RCT 5.5인데, 본격 사이클이다.
이런 자질구레한 비명소리들은 그저 무시해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난 마음이 약해서인지 그냥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수리공, 기능공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원래 나는 기계 만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잘 모르기도 했지만 손에 기름때 묻는 것이 왠지 싫었다.
그랬던 내가 이런 정도라도 기계 다루고 고치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순전히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을 내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전문가들, 자전거 전문가들, 그리고 의학 전문가들, 법률 전문가들...
별것도 아닌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런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로 특권을 누리는 전문가들이 이 체제에 넘쳐난다.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온갖 전문용어를 써가면서 민중들을 현혹하고 돈을 뜯어낸다.
난 이런 것들이 싫었고, 전문가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무엇보다 역겨워했다.
치, 그놈들에게 맡기느니 내가 배워서 스스로 해결해버리고 말지.
이런 생각을 나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이는 사실은 돈을 쓰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난 고장난 컴퓨터를 고치기 위해 매번 몇 만원을 부담하고 싶지 않다.
간단한 자전거 수리를 위해 매번 5천원을 납부하기 싫은 것이다.
병원을 찾지 않기 위해서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돈을 쓰게 된다면 다시 돈을 버는 생활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나는 이 자본주의 체제 바깥으로 기어나올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바깥으로 기어나오려면 일단 모든 소비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엘리트주의로 똘똘 뭉쳐진 체제에 살아가면서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잡다한 지식을 갖출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이런 지식은 내가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아 쌓인 것도 아니고, 현안에 따라 즉각 대응하면서 불규칙하게 쌓여온 것들이기에 '야메' 성격이 짙다.
다 야메다.
그러하기에 비명소리들이 끊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아픔들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치유해나가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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