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과 에너지 자립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5/09/14 04:23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 한국 언론들은 그 지역의 석유 시설이 완전 파괴되었다면서 행여 석유가격이 오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 만명이 죽어나가는 순간에도 그 빌어먹을 석유 가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경제체제이다.
자동차의 천국 미국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본따 '후진적인' 한국을 개량해보고 싶어하는 사대주의자들 덕분에 식량과 에너지 자립은 꿈같은 소리가 된다.
지금 우리는 엄청난 석유 소비 체제, 즉 철저히 대외 종속적인 경제 체제에 살고 있다.
이런 체제에서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박탈되어 있는 것이다.
석유를 소비해 움직이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과 그것에 기반한 대외 의존적 경제체제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식량 자립, 에너지 자립 없이 우리가 원하는 자립적이고,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경제체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간단하게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지금 당장이라도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는 일이다.
자전거를 타면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우리의 도로 환경, 즉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의 환경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흔히들 미국 사회가 가장 폭력적인 사회라고들 한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사람들은 헐리웃 영화와 총기 휴대의 자유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마이클 무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이런 것이였을텐데, 내가 보기에 원인은 보다 근원적인 곳에 있는 것 같다.
바로 자동차다.
사람들이 폭력적인 영화를 보면 폭력을 쓰고 싶어지고, 포르노 영화를 보면 강간을 하고 싶어진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를 나는 별로 믿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 동기는 훨씬 복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 통계조사들이 제시하는 바, 미국인들의 성향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폭력적이라고 한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인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는 자동차에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바로 곁에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 내는 소리와 배기가스 그리고 그 느낌만 종합해보더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나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폭력적일 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라고 본다.
그런데 만약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자동차를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접하게 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위협감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그 폭력성만은 그대로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자동차의 진짜 폭력성은 그것이 에너지 자립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생활권역을 축소하는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나타내는 미국식 생활체제에서는 아침은 런던에서 먹고, 점심은 뉴욕에서 먹는 등 생활권역이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어 버린다.
한국은 KTX의 개통을 계기로 생활권역을 전국으로 확대해버렸다.
아침을 서울에서 먹고 부산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체제가 들어서버린 것이다.
어쩌면 아침은 베이징에서, 점심은 서울에서 그리고 저녁은 도쿄에서 먹는 동아시아 사업가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세계화된 경제란 이렇게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생활권역을 확대시켜버린 체제다.
그 결과 '행동반경'이라는 울타리는 해체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이땅의 경제는 국제유가의 변동에 따라 좌지우지될 정도로 종속되었다.
행동반경을 넓혀 자유를 줄 것 같던 자동차와 비행기가 가져온 것은 자유가 아니라 끔찍한 의존이며, 그에 따른 엄청난 억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안에 폭력성까지 심어주었다.
행동반경을 좁히는 것에서 우리의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우리에게 들어오는 각종 먹거리들과 석유를 물리치는 길이기도 하다.
자립적이고,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삶이란 다름아닌 부산과 서울 사이의 거리가 3시간이 아니라 3일이 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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