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을 지워야 한다평화가 무엇이냐 2005/08/11 00:33 왜 우리는 1등만을 기억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기껏해야 2등, 3등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1등만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에 가려진 수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겠다는 것이다.
승자만이 가치있고, 경쟁에서 패한 자는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
우리가 1등만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 사회가 승자를 열망하고 패자를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1등을 지워야 한다.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이 2005 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에서 7년 연속 우승을 했다고 한다.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대회에 참가한 백 명 이상의 사이클 선수들은 하나같이 정말 대단한 사이클 선수들이다.
랜스 암스트롱이 그중 제일 좋은 성적을 보이긴 했지만 그 나머지 백몇십명의 선수들 역시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랜스 암스트롱과 나머지 참가선수들 사이의 실력의 차이란 나와 그 사람들의 실력의 차이와 비교해 본다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루에 150km 이상을 자전거를 타면서 이것을 3주간 매일 반복하면서 평균속도가 40km 나온다니 이는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7년간 연속 1위를 한 랜스 암스트롱의 능력이 놀랍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백몇십명의 참가선수들이 모두 나로서는 꿈조차도 꿔볼 수 없는 실력을 가졌다는 것이 내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들 모두를 기억하지 않는 한 랜스 암스트롱만을 기억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선수들 역시 랜스 암스트롱에 버금가는 뛰어난 실력을 가졌고, 까마득하게 높아보이는 이들의 실력의 차이는 나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달에 20만원 이하를 벌며 생활을 유지하는 나의 입장에서 삼성회장 이건희라는 놈이 1조원 이상의 개인 재산을 가진 것과 재계 2위 재벌회장이 그보다 예를 들어 천억원 못미치는 재산을 가졌다고 할 때 재계 3위 재벌회장이 그보다 삼천억원 적은 재산을 갖고 있다고 할 때 그 세 재벌 사이의 재산의 차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백 명들 사이에 재산의 차이가 약간 난다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설령 재산 차이가 5천억원이 될 지라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의 차이가 없다.
똑같이 나에게는 노동자를 착취해 엄청난 부를 거머쥔 자본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등을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더러 1등을 기억하라는 것은 1등이 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1등에 대한 열등감을 갖으라는 것이며, 1등 또는 최소한 3등이라도 언젠가는 될 수 있다는 꿈을 먹으며 억압과 차별 그리고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는 현실을 애써 잊으라는 말과 같다.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 눈을 뜨기 위해 1등을 지워야 한다.
뛰어난 100미터 육상선수들은 10초 이내에 주파한다.
어떤이가 9초90으로 달리든 9초 89로 달리든 15초로 달리는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42.195km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 선수들이 2시간 10분 이내에 골인하든 2시간 11분대에 완주를 하든 그 차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1등의 이름을 기억하기에 바쁘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스포츠라는 것은 어차피 1등만을 기억하도록 짜여져있다.
그래서 스포츠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버릴 수 없다면 먼저 1등만이라도 지워야 한다.
모든 선수들의 이름을 골고루 기억할 수 없다면 1등이라도 먼저 지워나가야 한다.
2005년 한국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전체 토지의 50%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상위 5%에 속하는 부유층이 전체 토지의 80%를 차지하고 있단다.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절대 오지 않을 1등의 꿈을 꾸며 고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데, 꼭대기에 올라 앉아있는 소수의 부유층과 권력층의 욕망과 탐욕은 끝이 없다.
1등만을 기억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우울하고 씁쓸한 현실이 이렇다.
이들을 지워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먼저 1등을 지워야 한다.
1등 이외에도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할 것들은 많다.
국가라는 것도 지워버려야 한다.
민족이라는 것도 지워버려야 한다.
이윤이라는 것도 지워버려야 한다.
개발이 가져다준다는 장밋빛 미래도 지워버려야 한다.
경쟁이라는 것도 지워버려야 한다.
전 세계에 전쟁의 광풍을 몰고오는 미국의 군대라는 것을 지워버릴 때 이라크 민중들의 처절한 아픔을 느끼게 되고, 평택 주민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순수한 혈통이라는 민족적 거짓말을 완전히 지워버릴 때 비로소 배제와 차별이 어디서 나오는지 보이게 된다.
민족을 지워버릴 때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이주노동자의 고달픈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여성과 남성의 고정된 성역할을 지워버릴 때 비로소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
새만금 갯벌에 살고있는 뭇생명과 어민들의 파괴되는 삶을 느껴보려면 막무가내로 땅을 개발해 이윤을 얻으려는 저들의 구라를 지워버려야 한다.
천성산의 생명들을 기억하려면 먼저 속도경쟁을 지워버려야 하고,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을 받아들이려면 징병제가 남겨놓은 군사주의 찌꺼기들을 지워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둘씩 지워갈 때 우리는 비로소 순수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1등을 지워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1등을 지워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에겐 진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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