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갖혀있는 크리스티앙경계를 넘어 2005/07/22 17:44
크리스티앙이 감옥에 갖혀있다.
그의 블로그는 지난 6월 29일 이후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고 있다.
크리스티앙의 블로그에 그가 마지막으로 올린 글은 지난 2005년 6월 26일 일요일에 열렸던 반전집회 풍경이다.
생생한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제일 첫번째 사진에 적혀 있는 세 가지 구호
전쟁반대!
신자유주의반대!
자본주의반대!
이는 크리스티앙이 집회 현장에서 항상 외쳤던 구호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구호를 적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매직펜을 들고 골판지에 구호를 적어내려가는 손은 한국인의 손이지만 그 뜨거운 가슴은 크리스티앙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항상 집회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크리스티앙.
그는 이주노동자 집회든 철거민 집회든 노점상 집회든 반전평화 집회든 가리지 않고 투쟁의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사진으로, 영어로 한국 진보운동권의 소식을 세계로 알리고,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연대의 손길을 뻗어왔던 크리스티앙이 이제는 창살 너머에 갖혀있다.
그저께 면회를 다녀왔다.
집회 현장에서 만나면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인사 대신 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처럼 '투쟁!'이라고 말했다.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라고들 말을 하는데, 실제로 우리들이 그랬다.
우리는 투쟁으로 인사했다.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소 5층 보호소라는 이름의 감옥에 갖혀있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손을 치켜들고 투쟁으로 인사했다.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혁명의 순간에는 민중들이 폭풍처럼 들고 일어나 감옥을 부숴버리겠지.
그러면 크리스티앙 같은 사람도 풀려나 이제는 강제추방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집회와 시위 현장을 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
난 비폭력직접행동과 아나키 그리고 혁명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혁명이란 피지배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나 기존의 권위를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기존의 권위가 무너진 다음 그 빈자리에 새로운 권위가 들어설 수도 있고, 아예 권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나는 권위가 들어설 자리를 없애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해서 새로운 권위로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가리들을 잘라버리는 것.
사실 권력을 차지하기는 쉽다.
억눌렸던 사람들이 지배자의 위치에 오르기는 쉽다.
지배자가 없는 혁명을 만들어내기란 더욱 어렵다.
난 이것이 가능할까 생각하는 대신 이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답은 비폭력직접행동에 있다.
기존의 권위를 모두 부정해버리고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 권력을 잡는 것이 혁명이라면 이는 대개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
직업적 혁명가들, 직업 군인들, 직업 정치인 등의 소수 엘리트들이 새로운 지배자로 나타나는 그런 혁명 말이다.
이들은 치밀하게 전략과 전술을 짠 뒤 민중들을 인도해 혁명을 이끌어낸다.
이 엘리트들은 민중들에게 총을 쥐어 준다.
그리고 이 총을 들고 일어난 민중의 힘으로 전쟁을 벌여 기존 지배계급을 일소해버린다.
난 이런 혁명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보지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혁명은 혁명이지만 나의 혁명은 아니라고 본다.
또다른 혁명으로 선거 혁명이 있다.
이것 역시 나의 혁명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혁명이란 보다 본질적인 것인데, 권위라는 것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위계질서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총이나 쇠파이프가 아니다.
비폭력의 방식으로 꾸준히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사실 폭풍같은 혁명의 순간을 열망한다.
그래서 크리스티앙이 부서진 감옥 문을 박차고 당당히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싶다.
하지만 나의 혁명으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격변의 순간에, 폭력 혁명의 순간에 아나키의 원칙들은 무의미해진다.
서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서 자발적으로 돕고 살자는 이상과 원칙은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무력 전쟁이 시작되면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무수한 아나키스트들이 혁명의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새로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해왔다.
전 사회적인 격변의 시기에 아나키스트들은 이상과 원칙을 지키며 용감히 투쟁하지만 새로운 권력이 태동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라고 놀림을 당하면서도 아나키즘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는 순간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혁명이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앙과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싶다.
http://blog.jinbo.net/CINA/
그의 블로그에 아름다운 사진들이 다시 가득 올라오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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