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 - 변홍철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을 둘러싸고, 또한번 '반일 열풍'이 불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처럼 하나의 목소리로써, 이 사태를 '도발'로 규정하고 일본정부와 우익을 규탄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이 군국주의화, 팽창주의화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라는 우리사회 전반의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는 물론 정당하다고 본다. 특히나 교과서를 통한 역사왜곡 문제 등 과거사 왜곡의 문제 등과 겹쳐,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각별한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독도 문제'를 두고, 우리사회가 갑자기 좌와 우도, 여와 야도 없이 획일화된 목소리로 '반일'을 외치는 이같은 상황을 결코 건강한 사회적 반응이라고 두고 보기에는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특히 어제(3월 16일) 민주노동당의 소위 '지도부'가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 사태와 관련해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은 평소 관심을 가지고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지켜보던 한 시민으로서,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소위 진보정당다운 신중하고 품격있는 발언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 특히 최근 들어 '천성산 문제'등 주요현안과 관련해 비교적 성실한 태도로 대응하여온 것과 아울러 '2005년 당 사업계획' 등에서 환경 관련 내용을 주요한 사업 목표로 채택하는 등 의미있는 변신의 노력을 민주노동당 스스로 기울이고 있다고 전해 듣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 이번 독도 사태 관련 성명의 내용이 상당히 실망스러울 뿐더러, 매우 위험한 발상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열기(광기에 가까운)의 확산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위 진보정당의 역사적/사회적 책무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팽팽한 긴장 대신, 은근슬쩍 분위기와 시류에 편승, 영합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다른 것은 두고라도, 독도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면서, '독도 국군주둔', '독도 개발' 따위를 주문했다는 것을 읽고는, 차라리 수치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이 다만 민주노동당이라는 한 '진보정당'의 입장이고 그 수준의 반영이라면 우리가 새삼스레 이러한 입장 표명에 대해 우려를 가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진보' 혹은 '좌파'의 관점과 입장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장과 개발 논리, '국익'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와 유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민주노동당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인식과 현재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니 오히려 현재 전반적인 '반일' 분위기는 이러한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어제, 민간인의 독도 입도 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되도록 자유롭게 독도를 방문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국민 여론'에 대한 나름의 수렴과 판단을 거친 것임을 짐작할 때에, 상황전개가 앞으로 상당히 우려스러운 쪽으로 흐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다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성명으로 돌아가서 -- 그 작고 여린 돌섬 위 어디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 섬의 어느 부분을 개발하라는 것인가! 독도를 우리의 '소유'로 다시한번 '확인'하기 위해, 그 작고 여린 섬을 마치 '새만금'이나 '천성산'처럼 메우고 구멍을 뚫어 '개발'함으로써, '경제성장'과 '국익'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라도 하자는 것인가! 독도에 해상 러브호텔이라도 짓고, 요즘 그 악랄하게 진행되는 골프장 열풍을 동해(일본인들이 '일본해'라 부르는) 한복판까지 불어넣어 해상 골프연습장이라도 세우라는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환경, 소위 '국토'를 대하는 우리사회,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의 저열한 인식 수준을 무심결에 드러내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진보정당은 두고라도,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망발'을,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뱉어버린 것에 다름 아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좀더 근원적이고 비판적인 상상력과 언어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러 한 때에 '국익'의 이데올로기적 광기에 합류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차라리 우리는 일본의 시민사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백번 옳다.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풀뿌리 민중들은 그러한 자연의 섬인 독도를 인간의 탐욕과 국가주의적 논리로 '소유(영유)'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리석은 자본과 국가의 개발/팽창 논리로부터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섬인 이 아름다운 섬을 당신네 지도자들과 우익 세력이 굳이 이제와서 차지(소유)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굳이 이런 식으로 우리 평범한 민중의 삶 속에 긴장의 날을 세우려 하는 여러분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획책하려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당신네 일본 정부가 과거, 우리 한국의 민중들에게 어떠한 고통을 끼쳤는지 여기서 새삼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 한국 민중은 이번 독도에 관한 당신들 지도자들의 움직임이, 과거에 그랬듯이 또다시 동북아시아와 세계에 '제국주의적인 힘'으로써 팽창해 나가겠다는 터무니없고 부도덕한 야심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우려는 여러분, 일본 민중들에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팽창과 정복, 전쟁에의 유혹은 어느 나라든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지배세력과 권력엘리트들의 것이지, 하루하루를 노동하여 정직하게 먹고사는 풀뿌리 민중의 이해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는 것을 일본의 형제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민중은 원래 자연은 인간이 '소유'하거나 함부로 훼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다고 우리 조상들로부터 배워왔습니다. 아마 당신들 일본의 풀뿌리 민중도, 당신들 지배자나 탐욕스런 우익들과는 달리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모든 양심적인 시민 여러분! 우리, 제발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양국 풀뿌리 민중의 오랜 지혜와 전통에 입각하여, 독도가 독도로서, 자연이 자연으로서 그냥 아름답게 보존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십시다. 그것은 국가를 뛰어넘어 우리 모든 민중의 의무입니다. 제발 자연을, 독도를,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라는 더러운 명분으로 같이 짓밟는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맙시다. 독도는 독도이기도 하고, 당신들에게는 '다케시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이 붙인 이름일 뿐,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이 정도의 발언으로써, 저들을 '부드럽게 설득 혹은 제압'하는 것이 백번 정당한 처사이다. 우리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전세계 풀뿌리 민중의 국제주의와 평화주의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 원칙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되며, 더구나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인류보편의 비전을 놓쳐서도 안된다.
특히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자칫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광기가 더욱 확산될 수도 있는(이것은 전체 민중과 진보진영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사태에, 부디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을 엄중하게 촉구한다.
특히 오는 20일로 예정한 민주노동당 대표단과 의원단의 독도 방문을 재고하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럴 바에는 일본의 진보세력 및 양심적/평화적 시민단체들과의 긴급 회동을 기획하여, 이번 기회를 통해 동북아시아 평화를 풀뿌리 민중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협력하는 연대의 기회로 삼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필요하다면, 그러한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도모하고 리드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민주노동당이 나름의 구실을 해 줄 것을 충심으로 촉구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팽창주의를 경계하고, 한-일 민중과 평화주의 세력의 연대로 이러한 '도발'에 맞서 싸우는 것은 물론 긴급한 우리의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과제와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대응(처방)'은 전혀 인연이 없는 것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라크 침략전쟁에 우리 군대를 파견해 놓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철군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전범국가의 국민'으로서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지고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일본의 팽창과 군국주의화만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천성산과 새만금 파괴, 골프장과 기업도시 열풍과 같은 반환경적, 반민중적 거대국책사업으로, 우리 땅 전체와 민중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이 참혹한 '일상의 전쟁상황'을 우리가 제지하지도 못하면서, 독도의 영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독도를 '개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사회 진보정당의 수준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본의 파렴치함과 야욕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이즈미가 가당찮게도 양국 정부의 '냉정'을 주문했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분명히 냉정을 찾아야 하며, 문제의 본질을 우리의 변함없는 원칙 속에서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아래는 민주노동당의 성명 전문이다.
-----------------------------------------------------------------
일본 시마네현 ‘다께시마의 날’ 제정은 대한민국 영토와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 행위이다
라종일 주일대사 소환, 다카노 일본대사 추방, 각료회담과 한일교류 중단,
망언·주권침해에 대한 행동 준칙 제정, 독도특별법 제정 등 정부의 강력한 조치 촉구
전국민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께시마의 날’ 조례안을 제정했다.
이미 우리는 ‘일본정부의 방조와 묵인 하에 진행되는 조례안을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행위’로 분명하게 규정한 바 있다. 100년 전 시마네현 고시가 조선침략의 과정이었듯이 오늘의 시마네현 조례안은 대한민국에 대한 명백한 침략행위인 것이다.
올바른 과거사 청산과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요구해온 대한민국 국민들 또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일본대사의 망언에 이은 시마네현의 조례안 제정에 대해 분노하고 있으며, 단순한 독도영유권 문제를 뛰어넘은 영토와 주권 침해임을 성토하고 있다.
정부의 ‘조용한 외교’는 일본의 망언과 주권침해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일본 도발의 배경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정부는 일본의 침략적 근성과 도발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행동을 취해야 하며, 대한민국 영토와 주권을 수호하고 한일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요구", "라종일 주일한국대사 즉각 소환",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일본대사 즉각 추방", "한일 우정의 해 재고 및 한일 각료회담과 교류 중단", "일본의 망언과 주권침해 행위에 대한 행동준칙 제정", "독도 입도제한조치 철회 및 자유왕래 실현을 위한 제반 조치 등의 독도특별법 제정", "독도 국군주둔과 독도개발" 등을 포함한 정부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한다.
민주노동당은 3월 20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해 항의하고 독도수비대원을 격려하기 위한 당 지도부 독도 방문,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일본대사관 앞 촛불집회 개최 등 대한민국 영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 할 것이며, 일본내 양심세력과 연대하여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미래지향적 외교를 펼치고, 을사조약 체결 100년, 일제해방 60년이 되는 올해를 한일 과거사 완전 청산과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의 첫 해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밝힌다.
2005년 3월 16일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