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다리를 건너며나의 화분 2005/03/19 02:07 자전거로 3시간을 달려 임진각에 갔다.
바람이 무척 세게 불었지만 화창한 날 왕복 총 10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게다가 도시의 매연에 찌든 공기 속이 아니라 가끔은 퇴비의 구수한 냄새가 나기도 하는 시골 포장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이다.
물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가끔씩 위협을 느끼기도 하지만.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방북했다는 바로 그 통일대교 입구는 민간인통제선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발걸음을 돌려 임진각으로 가보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저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보일 정도다.
그리고 바로 앞, 개구멍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철조망 너머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던 것이 지난 50년 동안의 구호였다면 이제 철마는 그 임진강을 건너서 북녘으로 가고 있다.
이제 나는 임진각 자유의 다리 앞에서 '자전거는 달리고 싶다'를 되뇌이고 있다.
짧기만한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 역시 민간인통제선 철조망이 기다리고 있다.
그 철조망에 사람들은 온갖 염원을 적어 붙여놓았다.
통일을 염원하는 천조가리들과 종이조가리들이 어지럽게 철조망에 붙어있다.
나는 바로 내 코 앞에 총을 들고 버티고 서있는 군인들, 남녘의 군인들과 북녘의 군인들이 총을 내려놓은 저 지뢰로 가득한 야트막한 산 너머로 자전거를 타고 개성의 송악산까지 훨훨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임진각에 있는 자유의 다리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것은 지난 2000년의 일이라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허름한 이 다리 위로 한국전쟁이 끝나고 국군포로 만 여명이 '자유를 찾아' 남녘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자유의 다리란다.
그동안 자유의 다리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고 철조망 너머에 있다가 김대중과 김정일이 손을 잡고 화해를 이야기 한 후에야 비로소 나 같은 사람들도 발을 디뎌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유를 찾아 넘어왔기 때문에 자유의 다리라니...
그럼 이곳에는 자유가 있을까?
그렇다.
노말헥산에 중독된 상태로 죽도록 일만 하다가 결국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자유가 있다.
빈곤의 나락에 내몰려 자살을 선택할 자유가 최소한 이곳에는 있다.
군대에 끌려 들어가 복종을 할 자유도 있고, 일산 풍동과 새만금과 평택에서 보듯 오래도록 살아온 터전, 땅을 빼앗길 자유도 이곳에는 있다.
그런 자유들이 있지만 없는 자유도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새들의 땅 독도를 가지고 반일로 똘똘 뭉쳐있는 이 나라에 생각의 자유는 없어보인다.
하긴 사상의 자유는 국가보안법으로 빼앗겨 버렸으니 존재할리가 만무하다.
국가라는 체제를 초월해, 민족이라는 관념을 그저 초월해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생각의 자유란 극우화 되어가는 일본의 우익에 동화되어갈 자유에 불과한 요즘이다.
보수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람들까지도 나서서 독도를 인간의 땅으로 전유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해 벌어진 이 비참한 전쟁이 발발 2주년을 맞이하는 요즘 아직도 국익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군대를 파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자유란 국가주의와 개발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다.
자유로워지려면 가진자들이 만들어놓은 체제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몸이든 마음이든 머리든 모두 튼튼해야 한다.
우리는 뿌리부터 독립할 수 있어야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건너서 진정한 자유의 땅에 다다를 자유의 다리 같은 것이 만약 있다면 그것은 국경도 없고, 빈부의 차도 없는 낮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자들의 투쟁 속에서 한 칸 한 칸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tag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