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제가 필요하다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5/03/10 03:26
자본주의가 얼마나 독한지 아는 사람은 안다.
자본주의는 마치 우리의 몸 속에 깊이 퍼져있는 중독과 같아 벗어나려 해도 더욱 깊은 나락으로 우리를 밀어 떨어뜨린다.
그 힘은 광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만약 사람들이 끊임 없이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자본주의는 몰락하게 된다.
소비를 멈추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만드는 제도라는 자동차의 바퀴를 빼버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가장 목숨을 거는 부분이 광고다.
광고는 없던 욕망까지도 슬슬 긁어내 상품의 소비로 연결시키는 마술과도 같은 힘을 갖고 있는데, 나를 비롯해 소위 '진보 활동가'라는 사람들도 순간순간 그 광고의 마술에 빠지게 된다.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꿀 같은 안락함에 깊숙이 몸을 적시게 되는 것이다.
광고는 언제나 유행을 선도한다거나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낸다는 등 이른바 이 시대 진보의 최신 버전을 제공한다며 날뛴다.
그러나 광고가 말하는 진보는 사실 파멸로 가는 지름길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훔쳐가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을 배고픔과 비참함의 절벽으로 몰아세우며, 지구의 모든 자원을 남김 없이 뽑아내고, 생태계를 마음껏 파괴하는 것이 지난 몇 백년 간의 진보가 아니었던가.
내가 생각하는 진보란 우리의 온몸, 뼛속까지 스며든 자본주의라는 독소를 해독하려는 몸부림이다.
해독을 해야한다.
나는 그 독성이 서양의학에서 자주 실시하는 외과수술 같은 방법을 통해 일거에 뽑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 오랜 시간을 살아온 체제가 이미 그 뿌리에 이르기까지 그 독성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츰차츰 그 독성을 풀어내는 수밖에는 없다.
초등학생들까지도 이미 돈의 노예로 삼아버린 광고의 힘이란 매우 강력한 것이다.
그것과 가까이 지내다간 그 자력에 말려 들어가고 만다.
광고의 자기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지내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독성을 풀어내는 길이 아닐까?
광고의 힘이 미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보라는 해독제의 제대로된 작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광고가 조장하는 엉터리 진보를 무시한 채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것, 다른 말로 퇴화하는 것은 몸에 스며든 독소를 차츰 녹여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사람이란 단적으로 말해 광고와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개발도 보상도 필요 없으니 그저 갯벌을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그냥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고 절규하는 새만금 어민들이 그렇다.
아스팔트를 밟고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들이 자본주의에는 훨씬 덜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독성을 없애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곧 지금 세상의 독을 해독해간다는 것인데 나의, 우리의 해독제는 무엇일까?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최대한 구매를 자제하는 것이다.
가능한한 불편해지고 게을러지고 느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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