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휴식이 끝나고 강정으로 돌아왔다
평화가 무엇이냐 2012/05/19 13:16
강정마을에 들어와 10개월을 살았다.
2011년 7월부터 지내면서 참 열심히, 재밌게 살았다.
나는 2012년 4월 총선이 끝나면 해군기지 문제도 깔끔히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2011년 말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았다. 조금만 견디면 미국을 이기고, 삼성을 이기고, 이명박을 이기고, 저 죽음의 무기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 신명나게 싸웠다. 사실은 산화하듯 부서져갔는지도 모른다.
체력이 악화돼갔다. 올해 3월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며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내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명이 심했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청력을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끝까지 버티고 싶었지만, 이미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내 몸으로 강정마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의 아픈 상태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총선의 결과가 내심 산뜻하게 나오길 바랬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마음이 무거웠다. 총선 후 강정마을의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듯 보였다. 나는 마침내 내가 스스로 한계에 다다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쉬고 체력을 회복하자, 그리고 상황을 더욱 길게 보고 끈질기게 싸우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약 한 달을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살았다. 아주 오랜만에 갖는 안식월이었다. 사실 나는 안식년을 가져야 할 때였다. 10년 넘게 투쟁에만 매달리며 살았다. 어쩐지 모든 투쟁이 나에겐 절실했고, 모든 투쟁이 나의 이야기였다. 나에겐 할 일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투쟁이 마무리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현장으로 옮겨갔다. 새로운 현장에서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 강정마을에 처음 왔을 때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들과 하나둘 가까워지면서 내 일을 찾아가는 것도 좋았다. 차츰 마을 주민들의 지지를 얻으며 생활은 안정되었지만 국가권력의 억압은 더욱 심한 강도로 마을을 짓눌렀고, 투쟁은 점점더 힘들어졌다.
이제 나는 다시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잠시 미뤄둔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휴식은 나에겐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그만큼 달콤했다. 강정에 돌아왔다. 모두들 너무나 반갑다. 해군기지를 몰아내고 소중한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아야 할 이곳을 지켜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