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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요, 이젠>

2000년 첫 작업을 하던 중 알게된 장애인센터 여성 회원 H 의 사연. 습관적인 가출, 여지없는 성폭력. 부모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돌아온 딸의 안전을 위해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것 뿐. 모두가 무력했던 그 시간. 결국 그녀는 다시 시설로 떠나버렸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의 끔찍함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중. 그동안의 내 영화들은 친밀함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수많은 비밀들을 털어놓았으며 밤이 되면 나는 편집실에 앉아 화면 안에서 빛나는 비밀들을 들여다보며 끙끙댔다. 두 개의 영화를 만들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계가 두터워질수록 비밀의 무게는 더해갔으며 이제 나는 그 비밀들을 재료로 영화를 만드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2000년 이후 내내 내 가슴에 남아있는 H, 그리고 심포지엄 영상물을 만들면서 만났던 또다른 H들……. 그녀들의 이야기에 눈물 흘리고, 때론 슬픔으로 때론 분노로 잠을 못 이룰 만큼 고민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장애여성 공감' 언니들 덕분에 나는 좀 더 예리하고 섬세한 인권감수성을 얻었고 그것은 내 지나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그리고 난 오랫동안 멈춰있다. 미디어교육을 진행하며 카메라라는 게 누구나에게 있는 볼펜 같은 거라고 말해보기도 했고 <엄마…>를 만들며 나의 이야기를 풀어 보기도 했지만 ‘장애는 내 평생의 화두’라고 어떤 기자에게 했던 말이 등짐처럼 남아있는 지금, 난 그 등짐을 벗어버리지도,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멈춰있다. 그리고 2008년 반다감독이 <잘 있어요, 이젠>을 보았다.

 

당신이 떨어뜨린 치유의 열쇠

영상으로 전하는 스피크아웃 <잘 있어요, 이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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