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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말한다는 게 갈수록 힘이 든다.
SBS뉴스를 보는데 '세입자들이 화염병을 던졌다'는 부상당한 경찰의 인터뷰는
차분히 보여주고 "우리 죽는데 우리가 왜 그랬겠어요?" 하는 주민의 인터뷰는
모자이크 처리에 음성변조해서 들려준다. '미디어읽기' 시간에 쓰면 좋을 화면이다.
며칠 전부터 TV플러그를 뽑고 지냈다.
애들은 버릇처럼 몇 번 눌러보다가 TV 안보고 딱지치기며 공차기 하며 잘 놀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냈는데 남편이 <돌아온 일지매> 보자고 해서 다시 플러그를 꼽았다.
<쾌도 홍길동>은 도심을 내려다보는 홍길동으로 끝냈는데
<돌아온 일지매>는 도심을 내려다보는 일지매로 시작했다.
세상이 썩으면 사람들은 영웅을 기다린다,라는 나레이션이 흘렀다.
일지매가 사는 세상이나 내가 사는 세상이나 거기서 거기다.
매관매직을 하고 나라에서는 기업형 도둑들은 모른 척한다.
사실 지금 이 나라는 도둑놈들 세상이다.
..........
MB욕은 안하려고 한다.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망스러워지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MB를 욕하다보면
그냥 욕만 하고 말 것같아서.
현실에서, 내가 숨쉬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할까, 자꾸 생각한다.
매삼화에서 <샘터분식>을 보았는데 충격적이었다.
<샘터분식>이 충격적이었던 게 아니라 뒷풀이 자리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태감독이 변신을 시도하려고 한 것같은데 이런 변신이라면 안하는게 낫다고 말하는
태감독의 팬이라고 하는 분의 이야기도 그랬고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와글와글 끓었던 것같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갔던 나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충격적이었다.
참 무섭구나. 영화 만드는 일은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구나.....
만들기로한 영화를 세 해째 미뤘고 올해에는 꼭 만들어야할 것같다.
묵힌 시간은 짐이 되어 나를 짓누르는데
나는 해놓은 게 없다.
그런데 만화가들의 릴레이카툰을 보면서 생각한다.
사실 나는, 최초에 내가 다큐멘터리를 생각하고 카메라를 들었던 건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첫 마음에서 떠나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열심히 찍어서 함께 나누고 싶다.
작품 하자고 몸피 불리며 시간 깔고 앉아 뭉개는 것이 아니라
날렵한 몸으로 카메라가 비춰지지 않은 곳을 바라보고 싶다.
사무실에 갔다가 감독님께 <네가 뭔데>라는 책을 빌려 읽으며 다시 생각했다.
인권운동가 고상만씨가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가
또 첫 마음을 생각했다.
<김종태의 꿈> 시사회 자리에서 유가협 어머니들을 만났었다.
어머니들은 김종태열사의 어머니를 부러워하는 것같았다.
그 때 생각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잘 만들면 좋겠지만 잘 만들려는 욕심에 작품하자고 뭉개지 말고
기억하고 있다고, 죽음을 기억하며 그분들의 삶을 나눠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또 며칠 전에는 관악구 지역의 노점상분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었었고
그래, 세상의 중요한 질서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혼자만 변해버렸구나
자책하고 반성하면서, 그 이야기도 잊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한지 한 달도 안되었는데 그랬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내가 더이상 작업을 하지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만들면서 평범한 삶이라는 것의 실체를 해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제 첫 마음을 생각한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정해져있지 않다.
여섯시면 퇴근해야하고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그런 그런 생활에 매여
미리 선을 긋고 미리 벽을 쳤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안으로만 가라앉았던 그 시간들에게
이제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이젠 안녕.
나는 감독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나는 작품이라는 말도 싫어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첫마음을 떠올린다.
새로운 시작.
그것을 준비하며.
가벼워질테다. 날렵해질테다. 나는 그럴 것이다.
댓글 목록
새벽의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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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할게요! 화이팅! ^.^부가 정보
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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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삶과 사람에 대해 치열한 엄마를 보면서, 아이들도 함께 잘 자랄 꺼에요. 하루님, 화이팅!!부가 정보
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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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신작 기대할게염 글고 보니 지난 두 작품 참 좋아했는데~부가 정보
az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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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아요..그래도 하루는 잘 할거라 믿고 있음...홧팅!!부가 정보
sc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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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참 무섭다. 근데...가끔 사람들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봐서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심난한 마음에 기회가 안되서 못 봤던 '천막'을 봤는데 전 참 좋았어요. 감독의 호흡도 좋고 사람들의 일상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 뭐 그런 생각이 막막 들었어요. 우리가 투쟁하면 참 가열차단 생각이 들었는데 지난한 투쟁에 대해서 말은 하지만 그게 뭔지 참 전달이 안되는데 그런 게 보여서 전 참 좋았어요. 그래서 이런 작품이 많이 회자되지 못한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맘은 이렇게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것을 담아낸 고난함에 대한 박수가 아닐까 싶어요. 우좌지간 하루의 작품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멋지게 '나는 그럴 것이다' 되세요. 홧팅.부가 정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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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달리/고맙습니다. 저도 화이팅! ^^강이/요즘에 아이들이 저의 안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나름 열심히 놀고 열심히 챙기는데도 너무 저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들을..
밥 먹다가 "내 친구가 말이야.."라고 했더니 둘째아이가 "엄마 친구도 있어?" 하며 깜짝 놀라게 하더니 상 차리다 뭘 놓쳤더니 첫째 아이가 "또 사고치는군" 하더군요.
요즘 애들이 왜 그러는지 참... 애들은 첫 1~2년 동안에 하는 예쁜 짓으로 평생의 공을 다 갚는다더니 정말 그런가...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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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앞의 두 작품을 좋아했다니 감사... ^^ 오랜만에 듣는 말이네요. 그 두개 때만 하더라도 "난 열심히는 하잖아..."하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이젠 열심히도 못해서 참 걱정이예요. 어쨌든 이제 2월, 열심히 하루하루 지낼께요~야옹이/고마워요.식당에서의 그 걱정은 다 사그라들었는지... 나처럼 소심하다니 은근 반가웠다오. ^^
슈아/<천막> 참 좋지요. 그거하고 <길> 보면서 내가 돌아갈 곳에 그들이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그런데 어제 사무실 갔더니 너무너무.....충격. 쓰레기장이던데. 지내기 괜찮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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