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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의 [정치성향 테스트] 에 관련된 글.
말걸기의 정치성향을 테스트해 보았더니,
○ Economic Left/Right: -9.88
○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9.08
로 나왔다. 1년 전 쯤에 한 테스트이니 지금 다시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결과는 말걸기 내면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럼 내면 말고 외면은 뭐냐?
말걸기가 사회를 사유하는 기본적인 관점, 정치철학의 근원은 크리스트교에 있다. 말걸기로 말하자면 외가계로 5대째 가톨릭 신자이다. 6대째인가? 외가로는 아무리 촌수가 멀어도 죄다 가톨릭 신자들이다. 조상이 한국초기교회 시절부터 신자였던 것이다. 신실한 신앙심의 소유자이신 어머니 태중에 있을 적부터 말걸기는 성당엘 나갔다. 피도 안 마른 채로 세례를 받았다. 말걸기의 세례명은 '파비아노'이다. 3세기에 교황이었던 파비아노는 로마 황제의 핍박으로 순교를 한 성인이다. 신념과 삶의 일치!
중학교 한 때, 다들 말하는 사춘기 한 때 성당 나가기를 거부했었다. 뭐가 그리 괴로웠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 그 심각한 시절을 보내고 난 후에는 진지하고 성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국에서 선교하는 사제를 양성하는 외방선교회를 예비신학생자격으로 드나들었다. 세상 모르고 사제가 되는 건 좀 손해보는 듯해서인지 신학교 준비는 접고 보통 사람들이 가는 대학을 준비했다.
모차르트나 헨델의 미사곡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기도를 했던 열혈 가톨릭 신자는 어쩌다가 무신론자가 되었을꼬.
말걸기가 가톨릭 신자로 배운 가치는 '사랑'과 '정의'이다.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의'는 대단히 구체적이었다. 지랄같은 학교가 지랄같다고 얘기하는 전교조 선생들 죄다 목을 치는 건 '정의'가 아니었다. 할 말 좀 하겠다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눌러버리는 저 경찰들도 '정의'가 아니었다. 그런 사건들이 연속이었던 시절에 '정의'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였다. 그런데, 교회는 '정의'에 침묵하였다.
말걸기는 재수하던 시절 부활대축일 미사에 갔다가, 불의에는 눈을 감고서 하느님의 나라를 설파하는 교회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분명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2천년 전 예수는 그러하지 않았지만 교회가 성립된 후에는 교회가 세상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바꾸었다고. 그러니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데 일조하려면 교회에서 도모할 게 아니라고. 그래, '빨갱이'가 되는거야.
지금은 '말걸기 인생 돌리도'라고 외치고 싶은 청소년 시절에는 말걸기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어차피 점수로 가는 대학, 손해나 보지 말고 대학 가자는 맘을 먹고 재수 끝에, 그것도 제2지망으로 모대학 모학과에 진학했다. 학과 공부에 대한 목표의식이 있을 수 없었다. 열심히(정말?) '빨갱이'가 되기 위해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학과 공부에 재미도 붙이고 등등, 이런 저런 다양한 삶의 가치도 알게 되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빨갱이'로서의 자세였다.
주체사상 기초 학습도 받았고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주사파를 선택하지 않았다. 학생운동의 계보로 따지자면 AIAMCPDR(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AMC의 조직원이 되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공개적인 학생정치조직으로 재편되는 과정이었고, 어느 누구도 말걸기더러 조직원이 되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믿을 만한 놈이 못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진보운동한답시고 깝죽대는 건 말걸기밖에 없으니까.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에 다시 돌아오니 개거품 물며 화염병 던지던 새끼들은 다 도망가고, 아직도 87년인 줄 알고 사는 놈들만 어둡고 좁은 구석에서 득시글거렸다. 그 와중에 새로운 학생운동을 모색하는 모임이 생겨서 그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이 모임은 후에 민주노동당 서대문마포은평지부로서 지역당을 창당하는 씨앗이 되었다). 이 모임을 하면서 진보정당에 대한 생각도 정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정치권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당시 말걸기의 사적인 생활은 예술활동이었는데 이 또한 새로운 내면의 감수성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시절, '모든 권력은 아작내자!'라는 슬로건이 말걸기의 정신적-육체적 일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싸, 아나키스트! 그런데... 파비아노의 가르침에 따라 '신념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려다 보니 큰 벽에 부딪혔다. 신념을 실현하려면 현실의 조건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나키즘은 현실 개조에 가장 무능한 신념 체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살아 생전에 사회주의 사회가 올랑가는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빨갱이'로 살기로 했다.
'빨갱이'로서 '빨갱이 정당'을 만드는 데에 비천한 일조를 하고선 그 정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게 '빨갱이 정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걸기가 민주노동당을 '빨갱이 정당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보통의 운동권들이 개량주의니 의회주의니 따위라며 얘기할 때의 그 뜻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객.관.적.으.로. '빨갱이 정당'이다. 말걸기가 민주노동당이 '빨갱이'답지 못하다고 한 이유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적 절차도 잘 모르고, 일을 일답게 풀어나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똑바로 말할 줄도 모를 정도로 무능해 빠진 정당이다. 일군의 무리들은 주사파들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개떡! 원래부터 그랬다. 6여년 쯤 당에서 일하고 보니 이걸 깨달았다. 어떤 사회주의(사민주의에서부터 장군님 세상까지)가 되었건, 사회주의 하겠다고 나선 '빨갱이'들처럼 살았다가는 현실 개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빨갱이 노선'을 버리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할까 생각 중이다. 요만큼 투여하면 그만큼보다는 조금 많은 결과를 얻는 활동. 길게 보고 꾸준하게 많이 투자해서 왕창 벌어들일 것과 찔끔찔끔 단맛만 짜낼 것을 구별하는 안목. 자기의 이해 타산을 잘 계산하는 태도. 실제로 쓸모가 있는 사업만 하자는 노선.
Economic Left -9.88, Social Libertarian -9.08이라는 극좌 중의 극좌, 아나키스트의 심성을 갖고 있는 말걸기가 반평생 운동판에 있으면서 얻은 점정 결론이 '실용주의'라니 참 어이가 없다. '실용주의'라도 짭짤한 성과를 얻지 못하면 진짜로 확 우익이 되어버릴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부여받은 '신념에 따라 살다가 뒈지거라!'라는 말씀을 끝내 따를수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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