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서 일하다가 우연히 모니터 하단의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어마, 실감이 나지 않아. 아직 여덟시쯤 일줄알았는데? '
오랜만에 집중이 되었던 터라 왠지 집에 들어가기 싫었는데, 일요일날도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가야만한다고 몸을 일으켰다. 가려고 마음먹으니까 왜이리도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대는지. 결국 11시 반이 넘어서 차를 탔고 핸드폰도 사무실에 두고 왔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12시가 넘었길래 아파트 현관까지 옆구리가 결리도록 사력을 다해 걸었다. 아파트 현관유리문에 들어서니 저 멀리서 누가 온다."술먹은" 아빠다.-_-;
"몇신데 인제 들어와?" 술탓인지 화난목소리는 아닌데 ,아니 상냥하기 까지 하다. 그것이 더 안좋은 예감...
집에 들어와서 엄마한테 이러저러 이야기를 하더니,
결국 나를 부른다.나를 부른다...
"ㄱㅁㄴ, 이리와서 앉아봐" <-- 설교 시작을 알리는 멘트 (모든 '가정'의 공용어 일껄?)
바로 좀전까지 아빠와 결국 대화를 했고.
내용은 언제나와 같이 "가족이니까" 로 시작해서 "가족이니까"로 끝났다.
아빠도 자신의 말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왜 꼭 그래야해? 하고 묻는 다면 할말은 없어.그/렇/지/만 가족이니까" 라는 말을 계속 반복한다.
"그래 너가 사회를 위해서 희생하는거, 좋다.
돈 적게 받는거 좋다이거야. 다 인정한다.
사회에 그런 사람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내 자식은 아니었으면 하는게 부모야.
그래도 다 인정한다.
그런데 사회를 위해서 그렇게 희생하는데
가족을 위해서도 희생을 해야 하지 않겠냐?
안그러면 가족이 의미가 없어.
가족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하라는거야.
희생을 해야지.
봐도 보기 싫고 반갑지도 않고,
대화도 점점 없고,
벽이 두꺼워 지는거야.
난 뭐 그렇다.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이면 월요일 다같이 밥도 먹고
대화도 하고, 얼굴도 보고 같이 웃고.
너만큼 나이 됐으면 동생이랑 부모한테 색다른것도 먹자고 하고
그래야지.
너때문에 ㅈㅎ이 자식도 맨날 밤패고 다녀. 원래 안그랬어.
일주일에 한번이면 한번 어렵지 않아.
무슨일이 있어도 그날은 가족과 함꼐 보내는거지."
내가 아빠랑 이야기를 안한지 굉장히 오래된건 사실이긴하다. 아빠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어쩌고 해도, 좋은 아빠가 되려고 나름 노력한다는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빠라면, 자식인 내가 자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기분이 어떨까. 음 알고 있다. " 가족도 설득시키지 못하면서 뭘하려고 하냐 이런 얕은 산도 못넘는데 히말라야고 도봉산이고 어떻게 넘냐 "고 아빠는 말하지만, 나는 내내 생각한다
' 이러니까 못넘지. 1주일에 한번? 나를 죽여주시오..ㅡㅜ
1주일에 한번 놀지도 못하는데...
지방이 집인 사람들은 몇년에 한번 보는데..
그사람들 가정은 파탄지경인가?
억지로 가족끼리 모여서 웃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가족이니까?
자발적으로 모인것도 아니고 억지로 모여라 하는게 뭐가 좋다는 거지?
아빠 말마따나 희생해서 모여서 거짓웃음을 짓고
가족연극을 하는게 뭐가 그리 즐거워?
너무 홈드라마를 많이 본거 아냐?
어차피 요즘은 드라마에서도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웃는다고. '
그래도 희생으로 보건 뭘로보건 내가 하는일을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아빠가
고맙지 않은것은 아니다.
고마운데 말이지..
아이고..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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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웃으면 안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저의 경우와도 너무 비슷해서...^^;; 부모세대의 공통적인 정신상태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박정희 시대 교육이 참 잘 이루어졌는지도 모르죠. ㅡㅡ;;
저도 한참을 그런 상태였는데...최근에는 많이 바뀌었어요. 자식들과 이야기하고, 뭐라도 같이 하려는 부모님이 어쩐지 안쓰럽기도 해서...집에 갈 때마다 같이 산에 가서 이야기도 하고...보드게임 같은 것도 가르쳐 드리면서 함께 하고...뭐...그렇답니다. 물론 따로 떨어져 살아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죠^^
조르바/ 웃어도 되요.ㅎㅎ 다그렇죠뭐.
아즈라엘/ 그생각 저도 했어요. 차라리 나가살면 서로 좀더 자주 보고 자주 이야기 하게 될텐데.. 그나저나 보드게임이라니. 상상도 안되는 풍경이군요!
저도 예전에 비슷한 풍경을 많이 겪었더랬지요. 그땐 저도 '아이고 지겨워'했었는데, 이제 분가(?)란걸 하고나니 그때 부모님 심정도 이해가 가고, 왜 가족들하고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못했을까 후회도 많이 되던걸요. ^^
나가살면 좋아지긴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나가 산 이후로(사실 일주일에 3-4일은 집에 가지만) 밥도 더 자주 같이 먹고 얘기도 전보다 많이 하고 그래요. 그런데 가족은, 적당히 서로 무관심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부모님을 그냥 나이많은 친구-_- 쯤으로 생각하고 대하니까 (부모님보다 친구를 더 잘 이해하듯이) 이해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 전보다 마음도 더 쓰게 되더라구요.
prozac/ 저는 엄마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마음은 굴뚝같은데 아빠랑은..-_-; 사실 모른척 하고 싶어요(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민영/ 친구.글쵸.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아빠한테 설교들은걸 투덜대면서 엄마 아빠도 친구랑 노는게 더 좋잖아? 하니까 엄마도 동의하면서 아빠가 뭘몰라도 한참 모른다는둥 할머니 아들이라 어쩔수 없다는 둥(우리 할머니댁에 아직도 부모님은 1주일에 한번 가거든요. 아빠는 좋겠지만 엄마는 일하러 가는거라..-ㅠ-) .. 흉보기로 끝났어요.-_-;
아악. 예전에 저도 1주일에 한 번씩 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엄마한테 미안한 게, 아주 어릴 때 할머니가 뭐 먹으려냐고 물어보면 먹고 싶은 거 다 부르고 그랬는데, 결국은 그게 다 엄마의 고생ㅜ.ㅜ
저희집도 엄마가 할머니와 안 좋았고(정확히 말하면 엄마 혼자만 속으로.) 아빠도 심하진 않았지만 가끔 이상한 생각을 드러냈는데, 다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졌어요. 아..근데 저는 저희 할머니를 보면 참 복잡하고 괴로워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한 번 뵈면 기분이 팍 상하고.웅.
나는 일찍이 드라마용 가족 환상을 버렸더랬죠. 우리 가족은 절대로, 뭔 일이 일어나도 그렇게 될 수 없어요. 그런데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들더군요. 지금도 역시 진행중 ^^
ㅎㅎ 그래도 엄마랑 사이가 좋은거 같아서 엄청 부럽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