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風露離 님의 [프리드리히 헤벨의 '유디트']를 읽다가 예전에 어떤 수업시간에 발표 준비를 하던게 생각이 났다. 머 대강은 칸트 미학에 대한 반박으로 페미니즘과 미술에 관한 예를 발표한거였는데. 지금은 기억도 안나지만 칸트가 내세운 취미판단의 4계기중 "무관심성" 개념을 비판하고
미적 판단이 정치적 권력관계와 무관계, 혹은 독립적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성과 미술을 살펴본거 였을거다.
그 발표 준비 자료를 준비하면서 "유디트"를 누가 그렸는가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되었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클릭해서 큰그림으로 유디트를 보길바란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두그림은 같은 주제를 그렸는데, 그 유디트를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
첫번째 그림을 그린것은 젠틸레스키라는 이탈리아 여성화가가 그린그림이고,
두번째 그림은 역시 화가 였던 그녀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가 추종하던 카라바조의 그림이다. (아마 내가 발표준비를 할때는 오라치오의 유디트를 구했던것 같은데, 잘못된 기억인지 그림을 찾을수 없었다.)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는 정말 적장의 목을 확실히 벨 큰육과 강인함 그리고 자세를 갖추고 있는 반면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저래가지고 사람목을 딸수 있을지.. 자세 부터가 안되어있다. 홀로페르네스가 놀리는듯한 얼굴이지 않은가. ㅎㅎ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리얼리티가 부족하다. 늙은 노파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기위한 소품일뿐 적장을 죽이는데 하등 도움되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 丹風露離 님이 긍정적으로 해석하신 클림트의 유디트를 보자.
음.유디트를 요부로 표현한것을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한것으로 보시는 것같은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클림트는 유디트를 일종의 팜므파탈로 표현했는데, 그것역시 남성의 시선이고, 판타지이며 여성이라는 타자에 대한 포비아를 드러내는 시선이 아닌지 의심스러운것이다.
적장 홀로페네스는 유디트를 성폭행했고 유디트는 복수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것은 젠틸레스키의 그림뿐이다. 카라바조나 다른 남성화가들은 유디트를 민족을 구하는 순결한 성녀로 표현하거나, 혹은 성폭력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요부로 표현하여 성폭력 피해자에게 성폭력 유발론을 뒤집어 씌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이 힘이 있는이유는 그녀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유디트가 자신의 자화상이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녀는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 오라치오와 아버지의 친구 아고티스노 타시에게 어려서부터 미술을 배웠다. 그리고 그녀는 19살에 타시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녀는 유디트처럼 죽음을 택하지 않고 성폭력에 대해서 오랜 소송을 통해 명예를 찾았다고 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선택은 가해자 타시보다 젠틸레스키에게 더 가혹하고 힘든 일이 었을것임이 분명하다. 성폭력에 관한 최초의 소송이었다고하니 말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출처도 없어 확언할수는 없지만 그녀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를 발표했을때, 재판이 진행중이었고, 타시는 얼굴이 새파래졌다는 야사 스러운, 그러나 그럴듯한 글을 본적이 있다.(내 기억이 조작된 것일지라도 상상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하지 않은가..)홀로페네스는 타시이고 유디트는 젠틸레스키 자신이었을 테니 말이다.
어떤 누가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정반대가되고,
어떤 누가 그리는가에 따라 현실은 현실로 표현되거나 거짓으로 포장되곤한다.
음. 인터넷을 뒤져보니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다. 내가 반복할 필요도 없었다.-ㅗ-;
참고 :
+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 http://www.talk2me.co.kr/webboard/board13.html?No=915&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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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그림을 볼 때마다 달군님의 고민도, 제가 했던 고민도 병렬적으로 나타나고는 하는데요. ^^;; 저는 두개 다 일견 타당하다고 봐요. 그게 클림트의 공백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당시의 클림트에게서 영향을 많이 준 '프로이트'라는 인간을 생각해 볼때, 당시의 일종의 '금기'였던, 성욕에 대한 긍정은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endeneu>>음. 그럴지도.. 근데 성욕에 대한긍정을 긍정적으로 봤다고 해서 의심스럽다는 것은 아니었구요.클림트가 성폭력적 상황에서 여성의 성욕, 욕망이라는 모티브만 추출해내어서 에로티시즘으로 미화? 한점을 문제 삼아 본거죠...에 어렵다.
달군~흥미롭네요^^
클림트의 제자 쉴레의 그림은 성을 '소외와 자아'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생각..남녀가 엉켜있지만 왠지 따로인듯한 그 시선들과 포즈들...
클림트 그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모랄까...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음증에 가까운 성적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듯해서 말지. 끈적한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찝찝한 기분..그래서 그의 그림은 장식적인 도형들과 에로티즘이라는 요소들로 인해 인테리어장식으로 오히려 잘 어울리는듯...
전 맨 위의 유디트가 좋아요. 그 안의 언니 팔뚝 보세요. 넘 멋저요. 아무런 망설임 없는 동작도 좋고. 여성이 살아 있단 생각이 들고 그래서 좋아요. 허이허이..짧은 생각이죠?^^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여성화가이죠.그리고 유디트는 구약에 나오는 젊은 과부다. 앗시리아 대군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오자 단신으로 적장의 목을 베고 적군을 물리쳤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몹시 아름다웠고', `보는 이마다 넋을 잃을 만큼' 미모가 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