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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쿠릴, 센카쿠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기원과 현재
동아시아는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약 70년만에 다시 영토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독도(일본명: 타케시마)를 비롯하여 극동(러시아)의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지시마 열도), 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댜오)까지 분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영토분쟁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이를 살펴보자.
영토분쟁의 시발- 일본의 침략과 점령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영토분쟁 당사국들은 일본의 침략을 경험하거나 점령당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과거 동북·동남아시아에서는 영토갈등은 육지에서만 존재했다. 아시아에서 섬들은 사실 거주가 불가능할 정도로 작고,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영토 기능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섬들에 대해 영유권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 침략이 개시되고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치루며 일본은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자신의 영토로 귀속시켰다. 전쟁이 연합국의 승리로 이어지면서, 전후 처리과정에서 이 섬들에게 처음으로 근대 영토 개념이 제시되었다. 미·영·중 3국의 카이로 회담과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합의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맺는 과정에서부터 영토갈등의 씨앗이 만들어진다. 카이로 선언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는 일본 패망 이후 아시아-태평양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대한 큰 원칙을 결정한다. “일본이 탈취한 지역에서 일본을 쫓아낸다”는 원칙 아래 일본의 영토를 현재의 일본 영토와 이에 더해 “연합국이 결정하는 여러 섬”으로 결정하고 일본에게 침략당한 지역들에 대한 영토구분을 시작한다.
전후 미국의 개입, 영토분쟁의 씨앗을 남겨
현재의 영토분쟁은 여기에서 발생했다. 특히, 당시 동서냉전에 돌입하면서 미국은 일본을 반공진영에 편입시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개입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도와 쿠릴열도이다. 샌프란시스코 협의 초기에는 독도가 한국영토로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해로 한국영토에서 독도가 삭제되었다. 현재 갈등 중인 쿠릴열도 중 일본 홋가이도 쪽 4개 섬의 귀속권을 명확히 하지 않는 등, 일본에게 관대하게 고려되었다.
1954년 말 일본과 소련의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일본과 소련은 현재 분쟁 중인 쿠릴열도 중 훗가이도 쪽 4개 섬 가운데 홋가이도와 가까운 2개 섬을 일본이 돌려받는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이 소련과 합의로 두 개 섬을 얻게 된다면, 당시 미국의 신탁통치하에 있던 오키나와에 영원히 머물 것이라고 압박함으로써, 양국 협상이 깨지게 하였다.
이는 당시 냉전 상황에서 일본과 소련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아시아에 영토분쟁을 내재화시킴으로써, 미국이 동아시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동아시아 영토분쟁은 일본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역사가 배태하고, 전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개입전략이 낳은 결과물이다.
동남아 섬들도 분쟁지역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의 계기는 위와 같지만 현재 양상은 조금 다르다. 우선, 동남아시아 4개국(베트남, 필리핀, 부르나이, 말레이시아), 중국, 대만의 영토분쟁 지역인 스플래틀리군도를 살펴보자. 이 곳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이 포기했으나, 귀속권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이다. 대표적 분쟁지역인 스카버러섬의 경우, 현재 필리핀이 이 섬을 실효지배 중인데, 중국의 순시선과 필리핀의 해군함정이 맞부딪치는 긴장상태에 처해 있다. 미국이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적극 개입을 천명한 가운데, 필리핀과 공동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베트남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면서 중국 봉쇄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이 섬을 매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의 집약체가 바로 센카쿠 열도이다. 센카쿠 열도는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5년에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에 편입한 이후부터 일본에 의해 실효지배되고 있는 섬이다. 따라서 일본이 사실상 ‘탈취’한 것으로, 중국입장에서 보면 센카쿠 열도는 일본 침략의 상징이다. 사실 센카쿠 열도의 분쟁주체는 대만과 일본이다. 그런데 중국이 대만에 일본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왜인가?
센카쿠 열도, 그리고 미중 간 경쟁
중국 입장에서 대만과 센카쿠 열도는 일본에게 강탈당한 지역이다. 그리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중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대만을 자신들의 고유영토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중국이 현재 대만과 일본 간의 갈등에 개입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1978년 중국이 일본과 평화우호조약을 맺을 때까지도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는 중심문제로 부각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표적인 분쟁지역으로 떠올랐다. 여기서 센카쿠 열도 분쟁이 상징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이곳은 말라카 해협을 지나 동아시아와 미국으로 향하는 중요한 오일루트이자 통상경로이며, 센카쿠 열도 중 두 개 섬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사격훈련장이다. 반대로 중국입장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에 대항한 교두보이다. 즉 센카쿠 열도 분쟁은 대만-일본, 또는 중국-일본만이 아니라, 중국-미국 간 분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미국에게 2개의 딜레마를 던져주고 있다. 미국이 대만을 지원했으나 한번도 ‘하나의 중국’정책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적이 없다는 점이 하나다. 두 번째는 이곳이 미국영토가 아니라는 점이다. 센카쿠 분쟁에 미국이 직접 나서기 곤란한 처지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일본 간 분쟁이라는 센카쿠 분쟁의 이면엔 미국-중국 간의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한
모색이 필요한 때
현재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토분쟁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역사와 전후 처리과정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개입전략이 낳은 부산물이자, 분쟁 지역을 둘러싼 양국간, 다자간 역사적·경제적 이해가 부딪히면서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미국과 일본의 헤게모니 약화와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역내 힘관계의 변화가 놓여져 있다. 즉 G2 시대라는 미국-중국간의 패권경쟁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토분쟁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동아시아 곳곳이 분쟁지역화되는 것은 각국 민족주의 고양과 함께 동아시아 역내 평화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가 적극 고민되고 모색되어야 한다.
이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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