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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귤나무 전정과 병충해 방제, 영양제 살포까지 다 마치고 한결 여유로워진 날
아버지 친구 분을 찾아갔습니다.
그 삼춘은 오랫동안 감귤농사를 지어왔고 저희와 같은 품종을 재배하고 있기에
해마다 찾아가서 감귤재배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부터 사소한 것들까지 시시콜콜 물어보면 언제나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기 때문에 저에게는 큰 의지처이자 스승입니다.
나이가 들어 몸 이곳저곳이 아파와 고달픈 삼춘의 현실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은 후
일 년 동안 감귤나무와 씨름해오면서 적어놓았던 문제점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어떤 문제는 심플하게 해결방안을 얘기해주셨고, 어떤 문제는 제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격려를 해주셨고, 어떤 문제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방법을 알려주셨고, 어떤 문제는 저와 접근방법이 많이 달라서 고민만 더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묻고 배우고 하다보면 답답했던 문제들이 풀려서 시원해지고는 했는데
이날은 중요한 문제 하나에서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오히려 고민이 쌓여버렸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면서 나무를 잘 키워오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무의 수세를 키우고, 열매는 많이 맺게 하며, 열매의 맛을 좋게 하는
과수농사의 핵심문제에서 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발견된 겁니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지점이 문제이고 개선책은 무엇인지 하는 점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원리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들을 해주시기는 했지만
제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제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우스로 돌아와 나무들을 바라보며
지난 8년간의 시행착오와 여러 노력들을 떠올려 보니
“나무에게 도움이 됐을까?”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나무를 다 뽑아서 새로 심을 수는 없기에
제 노력이 쌓인 나무들을 상대로 더 세심하고 사려 깊게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할 뿐입니다.
“수 십 년을 해도 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가 ‘이제쯤 알 것 같다’ 싶어지면 죽을 나이가 되었더라”하시던 삼춘의 얘기가 가슴 속에 무겁게 박힙니다.
2
텃밭에 심어놓은 감자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것들을 심어보기는 했지만 감자는 올해 처음입니다.
그래서 주위에 조언도 구해보고 유튜브로 감자재배 노하우도 공부하면서도
지난 2월부터 정성을 들여왔습니다.
이래저래 다양한 재배기술과 꿀팁들이 많았지만
어설프게 따라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위주로만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수확을 한다는데 줄기가 뻗어 나온 상태를 보면 조금 시원찮아 보이기는 하네요.
귀농해서 10년이 되는 동안 많은 경험들이 쌓여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것에서 헤매며 배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혼자서 배워나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들이어서
기간이 오래 걸리고 어떤 거는 아주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좋습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거창한 말을 꺼내들어
슬쩍 잘난 척 해보고 싶어지네요. 헤헤헤
3
사랑이와 같인 산 지 10년이 넘으니 이제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사랑이는 제가 말하는 기본적인 명령어만이 아니라 말의 의미를 상당수 알아듣습니다.
저도 사랑이가 짖을 때 무슨 뜻으로 그러는지 어느 정도 이해를 합니다.
사랑이는 제 행동을 유심히 살피다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얼른 다가오고 심상치 않으면 슬쩍 물러섭니다.
저도 사랑이의 몸짓과 눈빛만으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달라서 밀고 당기기를 할 때가 많기는 하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절친인 것은 분명합니다.
감귤나무와의 소통은 동물과는 조금 다릅니다.
목소리나 행동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파리나 줄기, 열매 등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병충해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제대로 해결하는데 몇 년이 걸리고
물이 부족하거나 과해서 힘들어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해결하는데 또 몇 년이 걸리고
잎사귀들이 너무 많거나 부족해서 성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해결하는데 또 몇 년이 걸리고
어느 시점에 어떤 영양분을 얼마나 줘야하는지 알아내는데 또 몇 년이 걸립니다.
나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고
나무가 겉으로 의사표현을 한다 해도 제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또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다보니 긴 호흡으로 소통을 해야 하고 전체적인 것을 골고루 살펴봐야 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동물과 나무와의 소통방식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아직도 서로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헤매고는 있지만
서로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사람과의 소통도 이런 식으로 해나가면 좋을 텐데 그것이 더 어렵네요.
(김목인,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사려 깊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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