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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8회 – 여유롭게 늙어가는 삶

 

 

 

1

 

지난 달부터 시력에 약간 문제가 생겨서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병원을 가야하는데 바쁘기도 하고 돈도 없고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동생에게 돈을 빌려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간단한 상담과 시력검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병원에서는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각종 검사를 권유하더군요.

권유하는 검사를 거절하고 시력검사만 하는데 의사가 아닌 직원이 조금 서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시간 대기 후에 의사와의 상담이 있었지만 의사는 앞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노인성 질환에 대한 우려를 늘어놓으며 정기적인 검사만 권유하고는 별다른 진단이나 처방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금의 안경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만 확인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안경을 새로 맞추기 위해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안경점에서 다시 시력검사를 요구했지만 거절하고 예전에 사용하던 안경에 맞춰 렌즈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1년 전과 비교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와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이용했던 안경점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더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무 황당하고 어의가 없어서 항의를 했더니 고민하는 척 하다가 가격을 낮췄는데 그 마저도 이전 안경점보다 높아서 나오려고 하니까 더 낮춰서 부르더군요.

괘씸해서 다른 안경점으로 가려고 하다가 또 비슷한 과정을 반복할 것 같아서 그냥 그곳에서 주문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그곳을 나왔습니다.

 

몸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이나 관련 시설들을 찾을 때마다 대부분 그렇지만

속 시원한 대답보다는 애매한 불안감만을 심어주면서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려고만 해서 불쾌했던 적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불쾌하게 돈만 뜯긴 것 같아서 찝찝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왔더니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사랑이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습니다.

사랑이를 쓰다듬으며 불쾌했던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마을에 사시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오전에 텃밭에 있는 각종 채소들을 넉넉하게 드렸더니 고맙다고 답례를 갖고 오신 거였습니다.

부추전, 샌드위치, 오이김치를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가져오셨는데 마음이 아주 환해지더군요.

시내에 나가서 쌓였던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데

제가 사는 이곳이 얼마나 정겨운 곳인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날카로운 사람들, 이기적인 사람들, 계산적인 사람들 속에서 부딪히지 않으려다보면

몸은 움츠러들고 마음은 예민해져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몸과 마음을 다시 펴내려고 가만히 제 자신을 살펴보면

저 역시 날카롭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됩니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해보지만

괴물 같은 세상에서는 그런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샌드위치, 부추전, 오이김치로 저녁상을 차리고 밥을 먹으려고 하니

사랑이도 슬금슬금 방에서 나와 맑고 선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사랑이 밥그릇에 사료를 넣어주고는 같이 밥을 먹으며 다짐을 또 해봤습니다.

 

“사랑이처럼 단순하고 느긋하게 살도록 해봐야겠다.”

 

“불안을 키우는 병원은 멀리 하고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함으로 채워 넣자.”

 

“내가 본받아야 할 사람들은 내 주변의 소중한 이웃임을 잊지 말자.”

 

“많은 사람들과의 풍부함보다는 단 몇 사람과의 소중함에 집중하자.”

 

“지금의 이 편안한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3

 

새벽에 일어나서 명상과 요가를 해온지 10년이 됐습니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유튜브로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이지만

매일 따라하다 보니 조금씩 몸에 익어갔습니다.

 

처음 2~3년 동안은 굳었던 몸과 마음이 풀리면서 집중과 이완을 배워가는 맛이 괜찮았습니다.

어느 정도 기초를 다진 이후부터는 몸과 마음이 익숙해져서 매일 하게 되기는 했지만 기초단계 이상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되면서 삶이 한결 편안하고 여유로워지더군요.

그런 기간이 좀 더 쌓이니까 실력이 정체된 상태에서 더 늘지를 못하면서 집중과 이완이 조금씩 흐트러져갔습니다.

그래도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고 계속 하다보니까 이제는 그 정도 수준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가 됐습니다.

 

그런 일과를 욕심 없이 이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몸과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실력이 늘지 못하면서 흐트러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왜 그런가하고 몸과 마음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보겠다고 명상과 요가를 해오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어설픈 명상과 요가를 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사랑이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노라니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피크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매일 매일 인생의 피크를 찍으면서 여유롭게 늙어가야겠네요.

 

 

 

(오열과 레마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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