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태평 천하

"윤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 오릅니다.
<……그런 쳐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 서장 하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오―사 육시를 할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한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 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끊지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오,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가고 오……, 자― 부아라, 거리거기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 으응? ……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하게 살 세상, 이걸 태평 천하라구 하는 것이여, 태평 천하! …… 그런데 이런 태평 천하에 태어난 부잣집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땅땅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參涉)을 헌담 말이여, 으응?>"

- 채만식, <태평 천하> 중

 

전체예산 중 0.3%를 무상급식에 지원하라고

대의 기관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의결했더니만

시장이란 자가 '망국적 포퓰리즘'이란 말을 내다 뱉을뿐더러

여론의 뭇매를 맞아 정치 생명이 끝나기는커녕

도리어 그걸로 대선을 돌파하겠다는 발상이 이루어지는 나라.

여기가 자본가의 태평 천하가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 태평 천하가 있겠는가?

 

자본가의 태평 천하니만큼 이 곳에 헤아릴 수 없는 악한이 있지만

곰곰이 생각한 후 현 시점에서는 오세훈이 최고 악한 중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순히 태평 천하에 안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자당의 동료의원들마저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그런 반동적인 기획을 가장 의식적이고 능동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그 죄질은 가히 이 시대의 윤직원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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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3 16:39 2010/12/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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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법

권리를 말한다면, 언젠가는, 법과 마주치는 것을 회피할 수 없다.

권리의 성격을 '봉기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사법적 틀을 초과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더라도

마주침을 지연시키는 데 그칠 뿐, 마주침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시민권'을 말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홀스턴을 읽으면서, 그를 통해 브라질 빈민운동을 만나면서,

결국 법 앞에 서게 된 느낌이다.

법이라는 말이 여전히 껄끄럽다면,

'정당성이 부여된 강제력' 또는 '강제력을 동반한 정당성'이라고 해도 좋다.

도덕이나 본성적 이타심 따위 관념론으로 뒷걸음치지 않으려면

결국 저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

 

권리를 욕구/필요(need)와 구별시켜 주는 것은

결국 실정적 강제력이다(물론 이것만 있는 건 아닐 게다).

더욱이 그것이 '자연권'이 아니라 '시민권'으로 불릴 수 있으려면.

이에 따르면 권리란,

'권리 요구의 수신자에게 의무를 발생시키고 강제하는 실효적인 힘'

(뭐 엄밀한 정의를 시도하려는 것은 아니고 생각도 부족해 일단 이 정도로만)

따위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실효성, 심지어 '실정성'이 없다면 권리는 욕구/필요나 자연권

과 아무런 차별성도 갖지 못할 것이며

또 강자에 대한 약자의 탄원(petition)과도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실효성 때문에, 법, 제도, 조직, 공적 관계, 혹은 원한다면, 연합

등이 끌려들어올 것이며, 바로 여기에서 관념론과 단절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곳은 맑스주의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일체의 '이론적 아나키즘'이 혐오했던 장소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결국 돌파해야 하는 곳은 여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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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1 22:54 2010/12/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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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존스와 <깃>

가끔 노라 존스를 듣는데

한 곡이 유달리 기억에 남았다.

매번 지나치다가, 제목을 확인했더니

'I've got to see you again'이었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아마 탱고 풍인 것 같은데,

이 노래 도입부를 들을 때마다 송일곤 감독의 <깃> 첫 장면이 떠올랐다.

몹시 안 좋은 화질로 봤는데도

탱고 음악에 맞춰 이소연이 홀로 바닷가에서 춤을 추던

영화의 첫 장면은 정말 강렬했다.

이소연이라는 배우를 이 영화로 알게 되었는데

그때 인상이 워낙 좋아서,

나중에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마다 너무 안타까웠다. ㅠㅠ

 

영화가 너무 아저씨 판타지라는 얘기도 있으나(사실이긴 하다)

뭐 그 점을 에누리해도 꽤 볼 만한 영화다.

노라 존스를 듣다가 문득 기억나서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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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1 20:05 2010/12/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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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레포트 준비차 홀스턴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의 글을 읽고 있는데

인류학이 시의성을 갖는 이유를 또 하나 발견했다.

알다시피 인류학은, 제국주의 식으로 말하자면 '야만인',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이방인'을 연구하는 데 특화한 학문이었다.

 

레비스트로스를 전후한 구조주의 사조는

이방인 연구를 지속하면서도

한때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 인종주의의 무기였던 인류학을

서양 문명 자체를 반성하고 해체하는 것으로 역전시킨다.

(물론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큰 추세에서는 이 점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제국주의와 탈식민화, 심지어 세계화까지 경과하여

이제 '신대륙' 따위는 현실로나 상상으로나 실존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세계화는 당연히 인류학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인류학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지금 맥락에서 부각시키고 싶은 것만 말하자면,

이제 이방인이 바로 우리 곁에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 인종주의가 부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특히 구조주의를 경유한, 인류학의 전공 분야가 아니던가.

 

발리바르가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을 말하고

'인간학적 차이'(anthropological difference)을 중요한 쟁점으로 얘기할 때

아무래도 따라가기 어려웠었는데,

이제 그 이유 중 하나가 20세기 인류학, 특히 구조주의 인류학 전통에 대한

나의 총체적 무지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anthropology'를 번역하는 문제 역시

지극히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인류학'이라고 할 때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지배적 표상을 감안할 때

'anthropology'를 '인류학'으로 번역하는 건 좀 곤란한 일이다.

특히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칸트, 그리고 딜타이와 카시러 같은

신칸트주의 철학적 인간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처럼

그가 'anthropology'를 사고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계승하려는 핵심 중 하나가

레비스트로스 이후 구조주의 인류학이라는 점에서

이 전통을 거의 배제하는 '인간학'이라는 번역어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

단순히 번역어를 택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가 말하는 'anthropology'의 계보를 어떻게 만들지가 문제일 텐데

당분간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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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22:40 2010/12/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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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으로서 현재

"Insurgence is not a top-down imposition of an already scripted future. It bubbles up from the past in places where present circumstances seem propitious for an irruption. In this view, the present is like a bog: leaky, full of holes, gaps, contradictions, and misunderstandings. These exist just beneath all the taken-for-granted assumptions that give the present its apparent consistency. I study this ethnographic present historically not to give a historian’s complete account. Rather, I use historical investiga­tion to show how the past always leaks through the present, breaking it up into heterogeneous elements, and permitting it to be recomposed and transformed. I use history to make an argument about the present."

- James Holston, Insurgent Citizenship: Disjunctions of Democracy and Modernity in Brazil,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p.34.

 

늪으로서 현재.

한번 읽은 것이지만, 다시 봐도 새삼 눈을 사로잡는 탁월한 비유다.

겉보기엔 평온하고 매끈한 현재의 표면,

그러나 그 아래서 부글거리다가 빈 틈이 보이면 기포로 솟아올라 현재를 찢어버리는 과거,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새롭게 열리는 미래.

벤야민의 '성좌로서 역사'에 비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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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20:27 2010/12/1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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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대단한 사람이 많다

얼마 전 듣던 발리바르 강연에서

파트리스 마니그리에(Patrice Maniglier)라는 사람 이름이 나왔다.

아주 훌륭한 논문을 썼다고 칭찬하길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찾아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사람 이력서를 발견했다.

일부 경력을 발췌하자면 이렇다.

(더 자세한 경력이 궁금하신 분은,  www.essex.ac.uk/philosophy/people/academic/Maniglier_CV.pdf)
 

1990-1991  Institut d’Etudes Politiques (IEP) de Paris (« Sciences Po ») : admitted in 2nd year
1991-1993 Classes Préparatoires : Lycée Louis Le Grand (Paris)
1993  Admitted to the Ecole Normale Supérieure (ENS) de la rue d’Ulm (rank : 9th)
1993-1996 Student at the ENS / Licence, Maîtrise, Agrégation de Philosophie.
1996-1997  Teaching Assistant at Stanford University (California, USA) 
1997-1998 Fourth and final year at the ENS / DEA in Philosophy at Paris X Nanterre (superviser: E. Balibar ; title : « De la position des problèmes » [Problem raising] ; distinction : Très Bien [highest distinction]).
1998-2002 PhD in Philosophy at Paris X Nanterre University. Dissertation title: « L’être du signe. Linguistique et philosophie dans le projet sémiologique de Ferdinand de Saussure » [The Being of Sign: Linguistics and Philosophy in the semiological project of Ferdinand de Saussure] supervised by Etienne Balibar. Jury : Pr. Sylvain Auroux, Pr. Alain Badiou, Pr. Ali Benmakhlouf, Pr. Simon Bouquet and Pr. Yves Duroux. Received  the highest distinction (« très honorable et les félicitations du jury à l’unanimité »).
2003 Preselected by the French National University Council (CNU) to apply for positions in Philosophy Departments.

 

73년 생인 이 사람은, 대학에 입학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박사 학위를 땄을 뿐더러, 발리바르가 지도한 석박사 논문 모두에서

'Très Bien'(우리로 하자면 A+ 정도 될 것이다)을 받았다.

박사 논문의 경우 알랭 바디우나 이브 뒤루(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튀세르 자신, 그리고 발리바르를 비롯한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가 알튀세르의 제자 중 가장 탁월한 사람이었다는 게 공식적 평가다)

등 쟁쟁한 심사위원들에게

만장일치로 최고 등급(« très honorable avec félicitations ». 말 그대로 하자면, '찬사를 동반한 최우수'라는 뜻인데,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는 프랑스 박사학위 최고 등급을 나타내는 관용어다)을 받았다. 화룡점정으로 2003년에는,

프랑스 국립대학 위원회의 사전 선발로 철학과 지원 자격을 획득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어느 대학이든 임용 지원만 하면 자동 선발이라는 것 같다.

이런 대우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는데, 관행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특급 대우가 틀림없을 것 같다.

 

나랑 워낙 급이 다른 사람이라, 부럽다거나 질투가 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냥 세상에는 정말 천재가 있구나 감탄하는 정도?

사실은 기쁜 마음이 몹시 큰데, 알튀세르의 의발을 이을 사람이 나온 것 같아서다.

게다가 나이가 아직 마흔도 안 되었으니, 앞날이 얼마나 창창한가?

이런 사람 글을 앞으로 계속 읽을 수 있다는 게, 진심으로 기쁘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 친구도 됐다! ㅋ 페이스북 정말 신기하다.)

위 이력서를 보자마자, 책으로 출간된 그의 불어 박사 논문 제본을 지르고

그의 책 대부분을 도서관에 신청했다. 이것도 들어오는 대로 제본할 생각이다.

 

그의 전공 분야가 구조주의인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뭔가 마음이 든든하다.

뭐 이것도 일종의 우상이라면 우상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평가를 받은 사람이라면 뭔가 있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구조주의 공부를 하고 싶은 참이었고

그 비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에 관해서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막막하던 차였는데

뭐랄까 정말 복권 맞은 기분이다.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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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8 19:46 2010/12/0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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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와 인간학/인류학

"Both demonstrates, one, that the hyperbolic extension was always already the condition for the construction of the structural models of the constitution of the subjectivities in particular, and second, that the frontiers of the boundaries of the disciplines within the field of the human sciences are totally, and completely arbitrary, or in Foucauldian terms, results from pure power-knowledge structures. They reflect themselves metaphysical or quasi-transcendental representations of the human. The only discipline that corresponds to the structuralist point of view is, I believe, a critical anthropology related to the multiplicity, and the historicity of the anthropological differences, therefore, permanently challenging the opposition of psychology and sociology or politics, individualistic and communitarian societies itself."

- Etienne Balibar, "From Structure to Rhizome - Transdisciplinarity in French thought, 1945 to the present: histories, concepts, constructions - STRUCTURE", 2010 (강연 녹취, 강조는 인용자)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론이 필요한지 한창 고민 중인 나에게

위의 언급은 희미하지만 어딘가 출구가 있음을 보여주는 빛이다.

(녹취니만큼 정확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 인류학과로 전과할 수도 없고(^^a), 어쨌거나 사회학을 선택했으니

뒤르켐-모스-레비스트로스-구조주의라는, 사회학 안의 인간학/인류학적 흐름

(물론 이건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곳곳에 도사린 이단점들에 가까울 것이다)

을 추적해 보고 싶다.

다행히 뭔가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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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7 19:17 2010/12/0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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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함?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게 붙잡던 일 하나를, 아직도 끝맺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는 일단락지었다. 어제 밤 10시쯤 글을 넘겼는데

아직까지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그것 말고도 남은 일이 산더미인데!

 

그러다가 방금 음악을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하던 일은 나름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으며 작업했는데

앞으로 할 일은,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음악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니 좀 낫다.

 

한 친구처럼, 나도 뒤늦게 '브로콜리 너마저' 1집을 듣고 있는데

음악 전반에 흐르는 소심함(한발 더 나가면 찌질함이 되겠지만)이 나랑 잘 맞는다.

요새 특히 즐겨 듣는, '유자차'나 한잔들 드시길.

(근데 이 노래는 1집을 다 듣고 마지막에,

적어도 '보편적인 노래' 다음에 들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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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12/07 15:25 2010/12/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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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잖아 비가 오면 바다 정도는 생긴다구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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