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와 법

권리를 말한다면, 언젠가는, 법과 마주치는 것을 회피할 수 없다.

권리의 성격을 '봉기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사법적 틀을 초과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더라도

마주침을 지연시키는 데 그칠 뿐, 마주침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시민권'을 말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홀스턴을 읽으면서, 그를 통해 브라질 빈민운동을 만나면서,

결국 법 앞에 서게 된 느낌이다.

법이라는 말이 여전히 껄끄럽다면,

'정당성이 부여된 강제력' 또는 '강제력을 동반한 정당성'이라고 해도 좋다.

도덕이나 본성적 이타심 따위 관념론으로 뒷걸음치지 않으려면

결국 저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

 

권리를 욕구/필요(need)와 구별시켜 주는 것은

결국 실정적 강제력이다(물론 이것만 있는 건 아닐 게다).

더욱이 그것이 '자연권'이 아니라 '시민권'으로 불릴 수 있으려면.

이에 따르면 권리란,

'권리 요구의 수신자에게 의무를 발생시키고 강제하는 실효적인 힘'

(뭐 엄밀한 정의를 시도하려는 것은 아니고 생각도 부족해 일단 이 정도로만)

따위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실효성, 심지어 '실정성'이 없다면 권리는 욕구/필요나 자연권

과 아무런 차별성도 갖지 못할 것이며

또 강자에 대한 약자의 탄원(petition)과도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실효성 때문에, 법, 제도, 조직, 공적 관계, 혹은 원한다면, 연합

등이 끌려들어올 것이며, 바로 여기에서 관념론과 단절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곳은 맑스주의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일체의 '이론적 아나키즘'이 혐오했던 장소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결국 돌파해야 하는 곳은 여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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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12/11 22:54 2010/12/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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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존스와 <깃>

가끔 노라 존스를 듣는데

한 곡이 유달리 기억에 남았다.

매번 지나치다가, 제목을 확인했더니

'I've got to see you again'이었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아마 탱고 풍인 것 같은데,

이 노래 도입부를 들을 때마다 송일곤 감독의 <깃> 첫 장면이 떠올랐다.

몹시 안 좋은 화질로 봤는데도

탱고 음악에 맞춰 이소연이 홀로 바닷가에서 춤을 추던

영화의 첫 장면은 정말 강렬했다.

이소연이라는 배우를 이 영화로 알게 되었는데

그때 인상이 워낙 좋아서,

나중에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마다 너무 안타까웠다. ㅠㅠ

 

영화가 너무 아저씨 판타지라는 얘기도 있으나(사실이긴 하다)

뭐 그 점을 에누리해도 꽤 볼 만한 영화다.

노라 존스를 듣다가 문득 기억나서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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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12/11 20:05 2010/12/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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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잖아 비가 오면 바다 정도는 생긴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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