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위대함은 어디서 오는가

"great authors or discoverers are always accompanied, followed, and sometimes preceded by minor authors who observe the same facts and make the same discoveries. But great authors are historically great because they have understood the historic importance of their discovery, have made it the center of their work, and have made of that work a public act, capable of modifying the theoretical situation."

- Louis Althusser, Letters to D., Writings on psychoanalysis : Freud and Lacan,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6, p. 37.

 

기질상 통이 작고 야심이 없는 편이며

거기에 큰 불만 없이, 많은 경우엔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이지만,

그래도 저런 글을 보면 내가 너무 쪼잔한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나마 저런 문제를 계속 고민케 하는 것이 나에겐 철학이다.

철학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철학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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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22:26 2010/10/2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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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급투쟁을 한다

요샌 통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고 사는데

우연히 지나가다 프랑스 파업 투쟁 얘길 들었다.

거기서 '나는 계급투쟁을 한다'(JE LUTTE DES CLASSES)

라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이 말이 구호로 등장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론가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 공적인 구호로

계급투쟁이 다시 귀환한 것을 환영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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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18:24 2010/10/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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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투브에 갔다가

바에즈가 1972년 싱싱 감옥(Sing Sing Prison)에서

<감옥 3부작>을 부르는 실황 영상을 보았다.

충격적이다! 감옥에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특히 마지막에는 'raze the prison to the ground'

그러니까 감옥을 박살내자는 가사까지 들어 있는데!

 

혹자는 이래서 미국이란 나라가 위대하다고도 얘기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선, 저 거대한 국가 권력을 저기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대중운동의 힘이 쉽게 상상이 안 된다.

어쨌든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Dmsko6oZj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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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22:16 2010/10/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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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1966년(!)에 알튀세르는 "레비스트로스에 관하여"라는 글로

레비스트로스를 비판한다. 그의 사후에 유고로 출간된 이 글은

레비스트로스와 알튀세르의 쟁점,

나아가 당대를 풍미한 구조주의 사조와 알튀세르 사이의 비판적 거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몇 가지 논점이 있겠지만, 지금은 한 가지에만 집중하려 한다.

알튀세르는 레비스트로스가 형식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해서 알튀세르 자신이 형식(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즉각 덧붙인다.

비판 대상은 형식주의 일반이 아니라, 잘못된 종류의 형식주의라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그가 가능성과 실재성의 관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어떤 형식적 가능성이 실재하게 되는 이유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튀세르가 볼 때 진짜 설명해야 하는 문제는 이것이다.

"왜 다른 가능성이 아니라 이 가능성이 실현되게, 따라서 실재적이게 된 것인가?"

("Pourquoi c'est tel possible et pas tel autre, qui est devenu, qui est donc réel?"(p.441)

"Why is it this possibility and not another which has come about, and is therefore real?"(p.26))

 

이는 필연성의 관점에서 가능성의 관점을 비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오히려 이 질문이야말로 알튀세르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과학적 필연성'의 틀에 가두려고 한 것이라고,

결국 알튀세르가 말년에 제기한 '우발성/마주침의 유물론'은

필연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복권시킨 것이다 등등.

 

아직 가설이지만,

나는 이 논쟁을 정확히 가늠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를 우회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상드르 마트롱(Alexandre Matheron, "Essence, Existence and Power in Ethics I: The Foundations of Proposition 16", God and Nature: Spinoza's Metaphysics, E.J.Brill, 1991, p.29.)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은

라이프니츠의 유명한 질문, 곧 "왜 무(無)가 아니라 어떤 것이 실존하는가?"

("Why is there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

라는 질문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마트롱이 볼 때 <윤리학> 1권의 신 증명에서 스피노자가 제기하는 명제는

"그 본질이 인식가능한(즉 모순이 없는) 모든 것은,

외부의 장애물이 그것이 실존하는 것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실존한다."

("Anything whose essence is conceivable (i.e., non-contradictory) exists

if no external obstacle prevents it from so doing.")

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즉 무언가가 실존하지 않으려면,

그것이 실존해야만 할 이유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본질에 내재적이든, 외재적이든,

그것이 실존하지 않아야만 하는 실정적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라이프니츠의 질문을 대체하는 스피노자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모든 것이 아니라, 다만 특정한 사물들이 실존하는가?"

("Why are there only certain things rather than everything?")

 

알튀세르가 레비스트로스에게 제기한 쟁점은

바로 이런 스피노자적 노선 위에 있는 것 아닌가?

'가능성'이라는 모호한 말을 가지고 '필연성' 또는 '인과성'의 문제를 회피하지 말라는 것.

그러나 이는 '모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헤겔적 명제를 보수적으로 전유,

따라서 현재와 같은 실존 형태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움과 변화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실적 가능성이 있는지를 유물론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능성이 현실성/실재성에도 불구하고 실존하지 않는 이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이 실존하는 것을 가로막는 물질적 장애물, 또는 세력관계

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유물론적 요청과 다르지 않다.

 

가능성이라는 개념은,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 공허하기 일쑤다.

가능성을 말할 때 즉각 제기되는 것은, 그렇다면 왜 그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현실이 지배하는가, 왜 그런 가능성은 실현되지 않는가

("신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는가,

왜 신은 우리를 고통 속에서 신음하도록 내버려 두는가?"

마찬가지로 "인간이 역사의 주체라면, 왜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가,

왜 인간은 봉기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지배와 공모하는가?" 등등)

라는 뼈아픈 질문이다. 이와 대결하지 않는 한 가능성 개념은 무력할 뿐이고,

더 이상 가능성을 믿지 않는 냉소주의,

현재의 지배 관계가 유일하게 현실적인 것이라고 믿는 보수적 현실주의,

또는 현실을 거부하고 유토피아로 도피하는 자폐주의

에 대해 의미있는 반작용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나 스피노자를 따라 알튀세르가 말한 것처럼

현실에는 현실을 초과하는 대안적이고 실재적인 반경향들이

항상-이미, 그리고 항상-아직 실존한다.

문제는 관념적 가능성을 되뇌이는 것이 아니라 이 물질적 반경향들을 인식하는 것,

그것들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세력관계를 인식하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현실의 물질적 도래를, 이 경향들과 함께 기획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나는 레비스트로스와 알튀세르 사이의 쟁점은

결국 관념론과 유물론, 정치적 보수주의와 급진주의

사이의 갈등으로 귀착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아직 가설에 불과하고

더 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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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17:16 2010/10/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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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행복해요

요새 자출을 하고 있다.

의외로 학교에서 집까지 대부분 자전거 도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10월 초 언젠가 자출을 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이라

감기에 된통 걸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되어

몸이 회복된 다음에도 망설이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자전거를 탄다.

 

자정을 넘긴 시간, 양화대교를 건너 집을 지척에 둔 자전거 도로에 들어섰을 때

이어폰에서 루시드폴의 "고등어"가 흘러 나왔다.

한밤의 반짝이는 한강 곁에서 그의 노래를 듣자니

특히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라는 가사에서는

정말 깊은 위로를 느꼈다.

 

그의 따뜻한 노래와 위로는 '돈이 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그대'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 일반을 향한 것이 아니다.

(물론 모든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다 가난하다고 말장난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계급을 위한 노래,

어떤 계급('몇만 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을 예사롭게 먹는 자들)은 밀어내는 노래,

그러나 가난하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저기에 속해 저 따뜻한 위로의 수신자가 되고 싶다

는 욕망을 일으킬 정도로 감동적인 노래다.

 

가난은 행복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의 노래의 수신자에 속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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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15:46 2010/10/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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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Baez, Children of the 80's

몇년 전에 듣고 무척 좋아하게 된 곡.

뭐랄까, 나이든 바에즈만이 쓸 수 있는 곡이란 느낌.

특히 'And we don't care if Dylan's gone to Jesus / Jimmy Hendrix is playing on.'
부분이 좋았다. 누군가는 갔지만, 그러나 무언가는 남았고,

또 누군가가 올 거라는, 낙관주의 때문에.

나도 이렇게 늙을 수 있을까.

 

 

 

 

 

CHILDREN OF THE 80'S
(Words and Music by Joan Baez)

 

We're the children of the eighties haven't we grown
We're tender as a Lotus and we're tougher than a stone.
And the age of our innocence is somewhere in the garden.

We like the music of the sixties
It's The Rolling Stones The Beatles and The Doors.
Flower children Woodstock and the war.
Ah but it's getting harder to deceive us.
And we don't care if Dylan's gone to Jesus
Jimmy Hendrix is playing on.
We know Janis Joplin was the Rose
ah but all the stuff she put in her arm.
We are not alone.
 

We're the children of the eighties haven't we grown
We're tender as a Lotus and we're tougher than a stone.
And the age of our innocence is somewhere in the garden.

Some of us are the sisters and the brothers
We take a leatherjacket and a single golden earring.
Hang out at Discos Rock shows lose our hearing
Take uppers downers blues and reds and yellows.
Our brains are turning to jello
We are looking forward to the days when we live inside of a purple haze.
And the salvation of the soul is Rock and Roll

We are the children of the eighties haven't we grown
We're tender as a Lotus and we're tougher than a stone.
And the age of our innocence is somewhere in the garden.

Recently have you looked in our eyes
Maybe with your conscience in disguise.
We're well informed and we are wise
please stop telling us lies.
We know Afganistan's invaded and we know El Salvador's dictated
Ah but our lives have just begun
we are the warriors of the sun.
We're the golden boys and the golden girls
For a better world.


We are the children of the eighties haven't we grown

We're tender as a Lotus and we're tougher than a stone.
And the age of our innocence is somewhere in th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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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20:23 2010/10/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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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관한 발리바르의 또 다른 글

어제 아는 분께

발리바르가 공산주의에 관한 쓴 글이 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새 발리바르가 '맑스, 그리고 맑스주의에 관한 11 테제'(!)를 구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중 6 테제와 7 테제를 발췌하여 <국제 맑스 총회>에서 발표한 것이 아래 글이다.

(http://actuelmarx.u-paris10.fr/cm6/com/MI6_Plenum3_%20Balibar.doc)

 

이것 말고도 Rethinking Marxism Volume 22 Issue 3 2010

에도 공산주의를 비롯한 여러 문제에 관한 발리바르와 네그리의 대담이 실렸다.

(http://www.khukuritheory.net/equaliberty-the-common-and-communism/)

아무래도 발리바르가 공산주의에 관한 책을 한 권 쓸 모양이다.

기대 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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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20:11 2010/10/1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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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Baez, Prison Trilogy(감옥 3부작)

얼마 전부터 조앤  바에즈 노래를 듣고 있는데

유독 흥겨운 노래가 있어 가사를 찾아 봤다가

잠깐 멈칫했다.

 

어디에서 태어났든

이 정도로 위대한 사람이라면

세계 사람 모두에게 알려질 만할 것이다.

 

 

 

 

 

 

 

 

 

PRISON TRILOGY
(Words and Music by Joan Baez)

Billy Rose was a low rider, Billy Rose was a night fighter
Billy Rose knew trouble like the sound of his own name
Busted on a drunken charge
Driving someone else's car
The local midnight sheriff's claim to fame

In an Arizona jail there are some who tell the tale how
Billy fought the sergeant for some milk that he demanded
Knowing they'd remain the boss
Knowing he would pay the cost
They saw he was severely reprimanded

In the blackest cell on "A" Block
He hanged himself at dawn
With a note stuck to the bunk head
Don't mess with me, just take me home

Come and lay, help us lay
young Billy down

 

Luna was a Mexican the law called an alien
For coming across the border with a baby and a wife
Though the clothes upon his back were wet
Still he thought that he could get
Some money and things to start a life

It hadn't been too very long when it seemed like everything went wrong
They didn't even have the time to find themselves a home
This foreigner, a brown-skin male
Thrown into a Texas jail
It left the wife and baby quite alone

He eased the pain inside him
With a needle in his arm
But the dope just crucified him
He died to no one's great alarm

Come and lay, help us lay
Young Luna down
And we're gonna raze, raze the prisons
To the ground

 

Kilowatt was an aging con of 65 who stood a chance to stay alive
And leave the joint and walk the streets again
As the time he was to leave drew near
He suffered all the joy and fear
Of leaving 35 years in the pen

And on the day of his release he was approached by the police
Who took him to the warden walking slowly by his side
The warden said "You won't remain here
But it seems a state retainer
Claims another 10 years of your life."

He stepped out in the Texas sunlight
The cops all stood around
Old Kilowatt ran 50 yards
Then threw himself down on the ground

They might as well just have laid
The old man down
And we're gonna raze, raze the prisons
To the ground
Help us raze, raze the prisons
To the ground

© 1971, 1972 Chandos Music (AS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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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5 17:11 2010/10/1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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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상적인 말

'먹는 입'과 '말하는 입'.

말 참 기가 막히게 만든다.

(넓은 의미의) 경제와 정치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더욱이 보편주의를

'먹는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가능성, 즉 함께 먹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능성'

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니.

이게 문학의 힘일까.

굳이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대립시키려는 것에는 찬성하기 어렵지만

문학과 철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정도로 이해한다면, 뭐.

 

진은영은 랑시에르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을 가지고

한국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보여주는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19448.html)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0826)

 

‘절차에 갇힌 소통’ 인문학으로 구출을

공동체 위계·폐쇄성 둔 채
규범 따져봐야 ‘불통’ 못깨
현실 뛰어넘는 상상력 필요

 

이대 학술대회 진은영 연구교수 제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갈등이 다양하게 분출할수록 누구나 ‘소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진짜 소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정책을 집행한다지만, 사람들은 ‘소통 없는 정부’를 비판하며 촛불집회에 나선다. 그들에게는 소통 대신 ‘불법 집회 참가자’ 딱지가 돌아온다. 소통만 있으면 어떤 문제든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 같지만, 단지 서로의 입장과 의사를 주고받는다고 해서 소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 연구단은 지난달 30일 ‘소통을 위한 인문적 상상’이라는 제목의 학술대회를 열었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진은영(40)씨는 ‘소통, 그 불가능성 안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여는 발표를 통해 진정한 소통의 어려움과 그 가능성에 대해 철학적인 정리를 시도했다.

진씨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편견 등 방해 요소들만 제거하면 왜곡 없는 투명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일반적인 관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소통은 어떤 공식처럼 규범화할 수 없는 행위이며, 각자의 입장 속에서는 이미 보내야 할 메시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메시지를 주고받는 ‘절차’에 대해 따져봐도 ‘소통의 불가능성’만 더해간다는 것이다.

그는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이 시도한 ‘소통의 규범화’에 비판을 들이댄다. 아렌트는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는 경제적 사안들이 아닌, 오직 공동의 문제만 다루는 정치적 영역에서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봤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을 통해 진실성·진리·정당성 등이 모두 충족되는 말하기만이 보편적인 소통이 가능하다고 봤다. 진씨는 이들의 시도가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의 구분을 통해 소통을 보편적 규범으로 만들려 했던 것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진씨는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의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는 다양한 모습의 현실적인 불평등·불균형이 존재하며, 이는 어떤 종류의 규범화를 통하더라도 끊임없이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한다. 게다가 경제적인 조건은 말하는 이의 자리를 결정해주는 핵심적인 구실을 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안과 관련된 문제야말로 소통의 핵심적인 주제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 몸’ 이미지를 통해 소통이 일어나는 공동체의 위계화와 폐쇄성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공동체 내부 주체들은 소통 주체들이 각자 서 있는 입장이 모두 다르더라도 ‘전체 공동체를 위한 것’을 내세우며, 공동체 내부의 위계질서를 타고 전해져오는 메시지는 별다른 소통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또 공동체 밖에 있다고 여겨지는 ‘절대적 타자’와는 소통하는 방법 자체가 없다. 어떤 공동체가 ‘관용’에 근거해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난민 스스로는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소통의 불가능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절차로 굳어져버린 소통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씨는 ‘두 주체 사이에 확정된 의미를 서로 전달·교환하는 방식의 소통’을 벗어나기 위해선 소통의 당사자들이 아예 기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평등한 현실을 외면하는 대가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용자와의 협상에서 자신들의 몫을 챙기며 경제적 투쟁에 몰두할 때 그들은 오직 ‘먹는 입’으로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기존 경제적 재분배 방식에 균열을 일으키며 여성·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의 ‘먹는 입’과 함께 말하기 시작할 때, 그들의 입은 ‘먹기도 하면서 말하는 입’이 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나에게 낯설기만 했던 ‘절대적 타자’로부터 나와 함께할 수 있는 근접성을 발견하는 ‘탈경계적 보편주의’다. 진씨는 이를 “어떤 이들이 우리를 향해 자신들의 고통과 현실에 대해 호소할 때, 바로 그 순간 그 문제가 우리들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공동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내게 주어진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날 때에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회과학으로 대표되는 ‘소통의 과학’과 다르게 ‘소통의 시학’으로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새로운 주체를 만드는 작업에 대해 사회과학이 여러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과 연구를 이뤄낸다면, 인문학은 현실적 조건들을 뛰어넘는 다양한 상상력을 발명해낼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주체를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진씨는 “새로운 주체는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부단한 실천 속에서 만들어지며, 그것은 당연히 기성 질서와의 ‘불화’를 겪는다”며 “그렇지만 이런 불화의 과정이야말로 소통의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것으로 이를 절차라는 이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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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4 22:23 2010/10/1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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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놀라운 무식

어떤 글을 번역하고 있는데

나름 꼼꼼하게 하자는 생각에서

저자가 인용한 책들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대조하고 있다.

그런데 쪽수가 맞지 않는 인용문도 있고

원문에는 나오지 않은 단어(물론 진짜 원문은 불어이기 때문에 그걸 보긴 해야겠지만

본인이 달아 놓은 참고문헌 자체가 영역본이고, 거기에는 틀림없이 나와 있지 않다)

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뭐 그런 거야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대개 큰 흐름 면에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는데

오늘 발견한 대목은 좀 심각하다.

그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In Structural Anthropology Levi-Strauss argues that kinship systems could not be 'the arbitrary product of a convergence of several heterogeneous institutions..., yet nevertheless function with some sort of regularity and effectiveness.'"

 

그런데 인터넷(책을 잘못 빌려서. ㅋ)에 등록된 원문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No one asks how kinship systems, regarded as synchronic wholes, could be the arbitrary product of a convergence of several heterogeneous institutions (most of which are hypothetical), yet nevertheless function with some sort of regularity and effectiveness."

 

보다시피 원문에는 'could be'라고 되어 있다.

저자는 앞의 'No one'의 'no'를 'could' 쪽으로 당겨온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원문의 뜻과 정반대가 된다.

원문은, 친족체계가 어떻게 이질적 제도들이 수렴한 자의적 산물일 수 있으면서(긍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규칙성과 실효성을 가지고 기능하느냐라는 이야기인데,

저자의 해석은, 자의적 산물일 수 없고(부정), 오히려 규칙성과 실효성을 갖는다는 식이다.

 

내가 레비스트로스를 잘 모르지만

레비스트로스에 관해 최소한의 소양만 있으면 하기 어려운 오독이고

게다가 문맥상으로도 앞뒤 내용이 'nevertheless'로 연결된다고 보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자의적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성과 실효성을 갖는다?)

다른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자가 'not'을 잘못 삽입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몇 문장 아래에서 저자는 레비스트로스와 알튀세르를

다음과 같이 싸잡아 비판한다.

"In neither case is any attempt made to justify the belief that all the components of a social system must be necessary and functional elements of that system."

 

그러니까 저자는 레비스트로스(와 알튀세르. 알튀세르 문제는 일단 논외로 치자)를

일종의 기능주의로, 적어도 변이가능성에 대한 부정으로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위 인용문을 들고 있는 것이니 이건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즉 레비스트로스가 자의성을 부정했다는 게 일단 가장 중요한 근거인 셈인데,

아니 레비스트로스가 받아들인 소쉬르의 가장 중요한 명제가 '기호의 자의성'라는 건

약간 ABC 아닌가? 혹여 얼핏 그렇게 봤더라도 이 정도 내용이면

일단 자기 눈을 한번 의심하고 혹시 잘못 읽은 게 아닌지 다시 한번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

 

비단 이 부분만 문제는 아니지만

이건 약간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이라 적어둔다.

원어민도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니, 역시 문제는 단지 어학 실력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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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0/10/14 19:55 2010/10/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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