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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T - 05. 꽃섬 (Featuring 꽃별).mp3 (6.87 MB) 다운받기]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맛있는 라디오에 가보니 안계시네요. ㅠㅠ 사실 다시듣기가 되지 않고부터는 방송듣기가 쉽지 않았었어요. 꽃별님은 물론 건강하시겠지요?
저는 나이먹어 기사공부를 다시 하고 있는데.. 맨날 놀았더니 벌써 낼모레 시험이예요. 음. 포기는 하지 않고 기출문제를 하는데까지 달달 외워서 가려고해요. 뭐 운좋으면 엉터리로 공부하고도 붙겠죠. 저는 다음 공연곡으로 해변의 노래를 연습하다 해금을 놓은지 벌써 3년이 다되어가고 있어요. 해금도 뭐 어떻게 되겠지요? 전에 꽃별님이 해금 갈켜주신다고 했을때 1지를 G음을 잡고 혼자 연습해보겠다고 한걸 후회하고 있어요. 꽃별님이 바쁘실거 같아 그랬던건데... 제 편지에 답장주신것도 놀랬는데 꽃별님이 직접 해금을 갈켜주신다고 해서 엄청 놀랬었어요.
안보면 멀어지고 잊혀져 간다고 속상하게 생각하시진 않으시죠? 국악방송 잘 그만 두셨습니다. 꽃별님의 진심과 언제나 먼저 가가오는 주옥같은 연주들까지 잊혀진건 아니니까요. 방송이 아닌 음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될거라 생각해요.
그럼.. 건강하세요.
ps. 노래도 잘하시네요? ^^
[하종강-정은임아나운서와김주익열사(임을위한행진곡).mp3 (10.51 MB) 다운받기]
[전교죠선생님이 안갈켜주는 공부법]
아저씨는 중핵교때 공고를 가고 싶었습니다. 뭐든 뚝딱뚝딱 맨들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았는데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고등핵교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죠. 가요를 맘껏 부르면 기분이 좋아졌거든요. 그러다 고3즈음 작곡과를 가고 싶다고 했다가 한소릴 들었습니다. '거기 가려면 피아노도 잘 쳐야하고 뭐든 악기하나는 다뤄야할 줄 안다고' 그러나 중요한건 아저씨 학력고사 점수로는 아무데도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벼락치기로 1년을 공부한 끝에 아저씨는 지방에 있는 화학공학과엘 우연히? 들어 가게되었고 졸업후엔 몇년을 놀다가 조그만 본드공장엘 들어갔었죠. 어찌된 이유인지 아저씨 맘같이 되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악몽같은 20대를 그렇게 흘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돌다 30대엔 마트에 눌러앉았습니다.
마트에서의 1년은 마트밖에서의 1달처럼 마치 타임머신을 탄듯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은 분은 마트서 일하시면 됩니다) 아저씨가 마트 창고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고 언제나 도시락을 까먹던 아저씨만 가던 그 창고는 아저씨가 십여년전 박스에 매직으로 뭔가를 써놓은 먼지쌓인 박스가 발밑에서 저를 지켜보고 웃고 있었죠. '이봐 친구 아직 십년밖에 안지났다구.' 그리고는 오히려 회사편을 들며 비난하던 간부들을 뒤로하고는 다시 20대의 본드공장 노동자가 되어 도망치듯 마트를 빠져나왔습니다. 학교로 다시 돌아와 5년이 벌써 지나가고 있습니다. 왜 다시냐면.. 20대에도 우연히 사립대 교직원이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마트서 노동조합 행사서 민중의례에 임을위한행진곡을 불렀지 학교에서처럼 국민의례에 애국가를 불러본 적은 없었습니다.
마트서 15년을 일한 아저씨가 본 학교는 이상한 곳이었습니다. 까대기에 정신없이 바쁠 오전시간에 똑같은 연배의 여성노동자들이 커피를 타서 노닥거리다 일을 시작하고 4시가 조금넘어 퇴근을 하고는 급여가 10년넘게 일한 마트 노동자들보다 많았습니다. 학교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교육이니 우리 아이들이니 어쩌니 해가며 모두들 그들의 코드?를 암암리에 내새우며 번드름한 옷차림에 고상한 척을 하였고 그게 먹히는 조직이었습니다. 사실상 교육이란 허울로 포장하고 우리 아이들 어쩌니 해가며 고상하게 벌어먹고들 계신 것이죠. 여기엔 학생도 그 '교육'도 나발도 다 없어져 버리고 그져 잘 벌어먹는데 그 '교육'을 '학생들'을 이용해 먹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런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그렇지 않은 3%의 소금같은 보이지 않는 참 교육자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할때 '아이들'이란 말은 하지 않습니다. '애들'이란 말을 하죠. 학교서 만난 사람중엔 '애들'을 '아이들'이란 말로 포장하는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었습니다. 일할때 만난 사람중에 '하느님' 찾는 사람이 다 사기꾼인 것처럼요.
그럼.. 아저씨는 학교서 일하는 교육에 함께하는 사람일까요? 천만에요. 아저씨는 그저 학교서 벌어먹는 사람입니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학교 노동자입니다. 천만에라고 한 까닭은 그 '교육'이란 망상으로 우리 친구들을 감히 팔아먹고 싶지 않은 까닭이구요. 어짜피 노동자로 살아갈거면 친구들 곁에 노동자로서 벌어먹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지요. 아저씨가 다른 직장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어쩌면 친구들이 소중히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아저씨는 여기저기 구르다 다시 학교에 돌아왔고 친구들이 없을때 교실에 들어가 몰래? 뚝딱뚝딱 고치고는 다시 몰래 나오는 친구들에게 아저씨라 불리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럴때마다 '아저씨가 아녀.. 주무관이여 주무관' 하지만 '주부관이요? 그게 뭐에요?' 하는 친구들 대답이 돌아곤 하지요? ^^
우석훈 아저씨가 수십년전 88만원세대 라는 책을 쓰고는 세대라는 개념이 생겨났는데.. 그 책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책을 덮고 짱돌을 들라고 얘기했었죠? 살기위해 몸부림치라는 얘긴데.. 근데 젊은 친구들이 짱돌을 들지는 않았습니다. 죽어라 공부하다 대학가서는 다시 죽어라 4년을 취업공부를 합니다. 마지막 남은 의자하나를 차지하려 고시원으로 숨어들었다가.. 결국 우울증 약을 먹게 되지요. 아저씨에게 이생에 지옥을 보여달라면.. 노량진 고시원들을 고시생의 일상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길을 택한 것이지요. 오늘 시사직격이란 KBS 프로그램에서 고독사를 얘기하며 고시원 젊은 친구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솔직히 보여줘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낮에 한밤중처럼 어둡더니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덥쳤습니다. 집에 화분 하나 키우시고.
그럼.. 건강하세요.
ps 아저씨는 고딩때 꿈이 우리같은 청소년들 와서 쉬고 놀 수있는 그런 공간을 맨드는 꿈도 있었습니다. 친구들 놀러갈때 어디 있나요? PC방? 친구들이 놀러갈데가 없는건 30여년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그런 꿈 때문에 아마 이렇게 끄적끄적 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저시는 내일 어머니랑 싸우고는 10여년만에 찾아오는 친형과 점심을 차려 먹고는.. 지방이라 보도되진 않았지만 요양원에 계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6일만에 돌아가신 선배형 아버님 산소에 심을 영산홍과 회양목을 이원옥천 묘목시장으로 사러가려 합니다.
전교죠선생님들이 얼마전에 노동교육을 하신다고 팔을 걷어부치신건 늦었지만 정말로 다행이라 생각하고 웅원하겠습니다. 그러다보면 교사도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시겠지요. 그것도 지독한 감정노동자라는 사실을요.
[Il vizietto.mp3 (4.44 MB) 다운받기]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신 덕분에 아저씨 몸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제가 전 직장에서 시설소장님 가슴통증을 보고 빨리 큰병원가서 심혈관 검진을 받으라 알려드렸더니 동네병원에 심전도를 하고 이상이 없다고 배기다가 통증이 다시 생겨 큰병원가서 스텐트라는 시술을 하고 건강히 돌아오셨었습니다. 이번엔 일주일에 한번 오시는 전기안전관리자님이 지난 12월 황달이(눈 흰자가 눈에 띄게 노랗게 되는) 와서 간이 안좋아진거 같으니 병원가보시라고 말씀드렸습더니 며칠후 서울 삼성병원 응급실까지 가서 수술 받으시고는 건강한 모습으로 오늘 돌아오셨습니다. 제가 황달왔다고 한 다음날 오줌 색이 변해서 바로 병원갔다가 삼성병원 응급실 까지 가셨다합니다. 초기보다 더 초기라했다하고.. 간에 어디가 맥혀서 조금만 늦으면 돌아가시는 큰병이었답니다. 오늘 전기시설을 둘러보시고는 고맙단 인사를 거듭하고는 가셨습니다. 그분께는 약산물과 싹틔우는 보리, 밀을 살 수 있는 시장안에 가게를 알려드렸습니다. 건강연구소장님께 아저씨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친구들 오늘 졸업했지요? 친구들과 선생님들 모습이 담긴 졸업앨범도 하나씩 받았고요. 그런데 아저씨 사진은 없어요.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로 곱게 양복입고 어색히 웃으며 앨범사진 찍었던 아저씨 사진은 없습니다. 친구들 깜빡하고 뭘 놓고가서 어머니께서 가져오시면 갖다주시고 잃어버린 신주머니를 교실까지 가져다 주시던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 사진도 졸업앨범 속엔 없어요 친구들 매일 맛있는 점심을 해주시던 급식소 조리원 아주머님들도 앨범엔 나와있지 않고요.. 방과후 돌봄교실에 지도를 해주시던 돌봄선생님도 모두 졸업앨범에는 나와있지 않아요. 친구들이 화장실을 어질러놓으면 깨끗히 치워주시던 청소원님도 물론 빠졌습니다. 친구들 교실 손잡이를 일일히 소독해주시던 방역도우미들은 이미 아주 사라져버린지 오랩니다. 교사들이 볼때 그들은 모두 교원도 직원도 아닌 그저 유령일 뿐이죠.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들같이 폼나는 옷을 입지 않았었고요.
오늘 화가나서 졸업앨범 담당 선생한테 전화하니 다른 학교 물어봐서 다 뺏다고 합니다. 더 기가찼습니다.
"행정실 사진에 실무사님도 모두 있는데 왜 내사진은 없습니까? 도대체 뭘 검토하셨다는거예요?"
"죄송합니다.."
"아니 뭘 어떻게 검토했다는거예요? 왜 조리원님들은 한명도 없어요?
"다른 학교 물어보니 다 뺀다고 해서.."
"아니 지금까지 밥 얻어먹었으면 졸업앨범에 사진 한장이라도 넣어야할거 아니예요?"
"사진이 없어서.."
"사진이 없으면 달래서라도 넣어야 하는거 아니예요? 도대체 뭘 검토했어요? 인쇄전에 행정실에 물어봤어야하는거 아니예요? 이거 교장까지 오케이 한건가요?"
"교감선생님께만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내려가 말씀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교감이요? 앞으로 이런 업무 맡지마시고 인수인계 똑바로 하세요." 뚝.
더 말하다간 욕이라도 튀어나올거 같아 전화를 내던지듯 끊어버렸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평소 저를 투명인간처럼 지나치던 선생이라 화가 더 났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선생이 아니었다면 저는 실수라고 생각을 하였을 겁니다. 어찌된 이유인지 약 10여분후에 교장선생님이 다급히 행정실에 찾아와 거듭 죄송하다고 진정성 있게 사과를 대신하였습니다.
영화 한편을 찍어도 스텝들을 일일히 자막에 넣어 주고 사람이 아닌 장소협찬까지 빼곡히 적어주는데 이놈의 학교라는 곳은 교원, 학생 외엔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왜냐면 교원이 생각할때 그외 나머지는 교육의 3주체도 아닐뿐더러 천한 일을 하는 돈만주면 다 써먹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니까요. 노동자를 이렇게 천시 여기는 선생들에게 배우는 학생들은 아마도 '나는 노동자가 절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사회나가면 모두가 노동자로 불행히?들 살아가게 되겠지요
아저씨가 졸업앨범에 빠져서 화가 났던 이유는 친구들에게 아저씨가 사진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예요.
이자리를 빌어 대신 하겠습니다.
'친구들~ 졸업 축하해요! 앞으로 살아가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길을 잃게 된다면 친구들이 삽치기,땅따먹기,팔방하며 뛰놀던 학교 운동장과 시원한 나무그늘, 시소와 그네, 화단의 회향목 향기와 햇볕아래 잉잉거리던 벌들을 생각해주세요. 우리는 뭐가 옳은 일인지 이미 마음 속에 알고 있어요. 우리 친구들과 아저씨 모두 자랑스런 노동자로서 잼있게 살아가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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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에 졸업생과 선생님만 들어가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왔었는데...아, 그렇군요. 학교에는 그외에도 더 많은 분들이 있었는데...
오늘 소중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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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기울여 들어주셔서 언제나 고맙습니다.사랑이한테도 안부전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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